북쪽선 청량한 바람 남쪽선 따사로운 햇살을 품다

최재영 기자의 ‘아름다운 집’ 순례 | ②서울 종로구 신영동 ‘청풍헌’

북한산을 바라볼 수 있는 거실. 프레임을 통해 바라본 북한산은 한폭의 그림을 연상케 만들었다.[사진 이코노믹리뷰 박지현기자]

집은 나의 거울이다. 접근 방법이나 해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의미를 담고 본질을 담아야 한다는 얘기다. 집은 바로 ‘삶에서 바라보는 작품’이다. 청풍헌은 그런 공간과 공간이 만난 집이다. 온갖 ‘아리따움’을 끌어들이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마주치게 한 점이 오히려 돋보였다. 공간을 추구하는 것 보다 서로가 서로를 자연스럽게 조우하게 만들었으니 대단하다. 공간과 공간이 자연스레 어우러져 만들어낸 집, 공간의 향연장으로 발을 옮겨보자. 서울 종로구 신영동에 위치한 청풍헌(靑風軒)은 국립공원 북한산 산세에 포함되는 백악산 후면에 위치해 있다. 백악산은 조선을 개창(開創)하고 한양으로 천도(遷都)한 후 정궁인 경복궁을 지을 배산으로 삼은 산봉우리를 말한다. 김석환 건축사는 이 집을 처음 설계할 때 이런 옛것을 담았다. 자연 채광과 바람의 자연스러움을 중시했다. 이 집 이름도 거기서 따왔다. “백악산을 넘어온 푸르름이 베인 듯 맑고 시원한 산바람이 스쳐가는 집”이라는 의미가 청풍헌 세글자에 고스란히 담겼다. 청풍헌은 5층 건물 꼭대기 층에 지어진 집이다. 이 건물은 백악산을 등지고 지하2층에서 3층으로 만들어졌다. 백악산 북사면(북쪽을 향해 비스듬하게 경사진 면)에 건물이 세워졌다. 정면에서 바라보는 1층이 지하층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지하2층은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지하1~2층은 학원이 자리 잡고 있다. 청풍헌은 흔히 말하는 빌딩 옥상 구조가 아니다. 첫 설계부터 옥상구조에 따라 단순하게 건축된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층으로 보고 설계됐다는 뜻이다.

1. 청풍헌은 건물 옥상에 만들어졌다. 3개 층은 점포로 만들어졌다. 좌우로 바람길을 만들어 통풍 효과를 크게 누렸다. 2. 각 방에는 이렇게 채광장을 높여 따뜻한 온기를 전달하도록 했다. 3. 식당은 백안산 꽃내음을 맡을 수 있는 동시에 상단에 나무결 천장으로 마무리 옛스러운 분위기로 만들었다.

다만 옥상 구조를 활용해 주택이 갖고 있는 ‘마당’을 담았다. 마당은 옛 한옥들이 그랬듯 시선에 특히 세심한 신경을 쏟았다. 전면의 시선은 북한산을 바라보도록 했고, 건물 테라스 부위는 옥상 구조와 합쳐져 ‘마당’이 되도록 했다. 마당은 건물 윤곽에 따라 프레임을 짰다. 이 프레임은 새로운 공간감을 느낄수 있도록 지어져 북한산 자락이 펼쳐보이는 조망효과와 함께 뒷산의 녹지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그대로 받아들여 신선함을 선사한다. 이 집을 설계한 김석환 건축사의 말처럼 “건물 윤곽에 따라 프레임을 설치해 비움의 공간”을 만들어 개방감을 휠씬 높인 점도 두드러진다.북사면 구조 인위적이기보다 자연스러움 물씬 이 집은 구조상 북사면이어서 일조 측면에서는 크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북쪽이야 조망이 좋지만 햇볕은 남쪽에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어둡고 습하다. 북사면 구조를 남향 구조로 만들 수 있는 방법들은 분명 있겠지만 청풍헌은 북사면 그대로 자연스러움을 품었다. 이 집은 1976년 처음 지어졌다. 올해로 37세의 장년이 된 셈이다. 청풍헌이 만들어지기 전 당시는 2층 구조였다. 북사면에 습함을 그대로 받았고 햇볕이 잘 들이 않았다.

청풍헌 테라스는 텃밭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만들었고 봄이면 꽃향기를 맡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장마때면 더욱더 심했다. 이 때문에 집을 설계할 때 남향이 더욱 더 중요했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구조를 설계를 하지 않고 백악산 지면을 그대로 이용했다. 북쪽에는 큰 창을 설치했고 햇살을 담을 수 있도록 천장에 채광창을 설치했다. 이 채광창은 직접 햇살을 비추도록 하지 않았다. 채광창과 천장은 ‘기역(ㄱ)’자 공간을 만들었다. 직접적 태양광 보다는 복사광을 통해 은은하게 빛을 받아 집안으로 끌어들였다. 주방은 반대로 천장에 채광창을 만들어 그대로 햇살을 받아들였다. 이 채광창은 기존의 형광등 모양과 똑같아 구분이 어려울 정도다.청풍헌의 또 다른 매력은 방마다 활짝 펼쳐진 개성이다. 서재와 침실로 사용하고 있는 작은 방은 한옥을 그대로 이용했다. 2개의 방에는 한옥의 창호문을 설치해 하나의 방처럼 쓰면서 게스트룸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창호문은 가변형 벽체 역할을 해 시원한 개방감은 물론 은은한 분위기 역할도 톡톡히 한다. 거실에서 북한산을 바라보는 프레임도 이집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병산서원(屛山書院)에서 바라보는 모습을 그대로 응용해 북한산에 경치를 한폭의 그림처럼 느긋하게 볼 수 있도록 했다.

1. 게스트룸 겸 서재로 활용하는 방에서도 북한산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2. 주방에는 상단에 채광창을 만들어 형광등 이상의 조명을 볼 수 있다. 3. 서재겸으로 쓰고 있는 이방은 창호문을 가변형 벽체 형태로 만들어 안방겸 거실로 쓸 수 있도록 했다. 4. 거실 천장에는 한옥 처럼 나무로 만들어져 자연을 더욱더 느낄 수 있다. <br />

청풍헌의 또다른 재미 중 하나는 동선이다. 주방과 식당 그리고 방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여러 갈래로 만들었다. 오솔길의 느낌과 함께 동선을 다양하게 만들어 집의 공간감을 더욱 넓혔다. 청풍헌은 274㎡(약 83평) 규모다. 건축비는 3.3㎡ 당 500여만원이 들었다. 방은 총 다섯 개로 지어졌다. 모든 주택이 그러하듯 규모가 크면 에너지소모율이 크다. 청풍헌은 지어지기 전 집 역시 열손실이 매우 높았다. 이 때문에 청풍헌은 초기비용이 많이 투입됐다. 콘크리트 벽체를 기존 집 보다 두껍게 설계됐다. 채광효과와 함께 통풍이 좋아 습함을 없앴다. 단열효과는 물론 시원함을 함께 오도록 했다. 초기비용은 비싼 편이지만 향후 에너지 비용을 계산했을 때 비싼 비용이 아니라는 것이 건축주의 설명이다.이렇게 설계했다 | 김석환 터울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집은 자연풍광을 담아내는 그릇”
김 대표가 말하는 공간은 다양성을 지닌 가치다. 집은 형태를 드러내는 것 보다 풍기는 맛을 지녀야 한다. 누가 어떻게 사는가도 중요하지만 결국 집은 삶을 영위하는 종합체라는 것이 김 대표의 지론이다. 김 대표가 설계한 청풍헌이 바로 그런 곳이다. 겉모양이 예쁜 집이 아닌 그냥 무덤덤하면서도 집에 대한 본질을 정확히 전달하는 공간이라는 얘기다.“집은 차분함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집은 하나하나의 공간이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치가 있는 것이죠. 그 공간들은 각기 다른 삶이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이죠.”김 대표의 설명처럼 청풍헌은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 하나로 내놓은 것이다. 방마다 독립성을 뒀지만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나타낸다. 한옥처럼 안채와 사랑채를 연결하는 구조가 대표적이다. “안방은 사적인 공간입니다. 옛 선비들은 바로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죠. 항상 의미를 두고 간접적으로 자신을 드러냈는데 창호문을 열면 바로 안방이 나오는 옛 선조의 지혜죠. 청풍헌도 이런 의미를 담았습니다.” 밖에서 드러난 화려함은 결국 빛을 읽는다. 아름다움을 인위적으로 연출하다보면 생기는 결과다. “건축주 분들은 무조건 멋있게 그리고 화려하게 꾸며달라고 이야기 하시는 분들이 많죠. 사람이 살 집은 삶 그대로입니다. 가장 편안하게 느껴야 할 곳이죠.” 김 대표가 생각하는 집은 ‘자연이 만나는 곳'이다. 햇빛과 바람을 느끼고 땅을 밟으면서 집은 더욱더 가치가 높아진다는것이 김 대표의 신념이다. 이 모든 것이 합쳐지면서 집은 풍요로워진다. 사실 도심에서는 이런 이야기는 이국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집들은 자연과 함께 하고 있다. 다만 자연을 품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집을 단편적으로만 바라보죠. 잘 꾸며진 집을 원하고, 그 속에서 화려한 삶을 꿈꾸죠. 자연을 멀리하고 집만 생각하는 거죠. 집은 잘 짜여져 있어야 합니다. 지형을 바꾸지 못한다면 자연 지형 그대로 담아 집을 건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친환경 건축은 결국 자재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얼마나 담아내는 것이냐에 달렸죠.” 김 대표는 풍광을 집안으로 끌어들이기를 좋아한다. 옛 선조의 건축기법을 현대건축물로 만들어낸다. 이 역시 자연과 만나는 하나의 방법이다. 청풍헌 거실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은 한폭의 그림이다. “풍광을 그대로 담기 보다는 이른바 프레임을 만드는 것이죠. 병산서원에서 툇마루에서 바라본 산의 절경을 이곳에도 적용했습니다.”공간을 그대로 열어 풍광을 담는 것 보다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바라보듯 혹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듯 프레임에 한 단계 걸치는 방식이다. 김대표의 건축양식은 ‘무덤덤함’으로 압축된다. 건축은 설비장치의 의존성과 도시와의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건축의 본질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게 그의 철학이다. 건축이란 시대상에 따라 개조하거나 표출하는 것 보다 덕목에 맞게 변화해 나가야간다는 것이다.이코노믹 리뷰 최재영 기자 sometimes@<ⓒ 이코노믹 리뷰(er.asiae.co.kr) - 리더를 위한 고품격 시사경제주간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주간국 최재영 기자 sometimes@ⓒ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