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영화지. 내가 주인공인 영화." 1937년생 노배우의 꿈은 아직도 영화다. 한국 영화의 원산지(原産地)인 충무로에서 만난 원로배우 신성일(76)은 백발의 곱슬머리에 줄무늬 셔츠, 청바지를 곁들인 패션으로 나타났다. 어디를 봐도 팔순을 앞둔 나이 같지 않다. 사생활과 관련된 질문에는 날을 세웠지만 영화 얘기가 나올 땐 자문자답(自問自答)을 할 정도로 열성적이다. 인터뷰 내내 '도전', '자유', '영화' 등의 단어가 쉴새없이 튀어나온다.신성일은 25일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홀에서 시네마 토크 콘서트를 연다. 출연영화 514편, 그 중 주연만 506편인 그다. 1년에 30~40편의 영화를 찍던 시절 직접 경험한 에피소드를 그는 콘서트에서 들려준다. '맨발의 청춘' '별들의 고향' '하숙생' '동백아가씨' '초우' 등 그의 출연작들은 패티김·이미자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부른 동명의 영화 주제곡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공식 무대에서 신성일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노래를 잘 부르는 배우는 유흥업소에 서야 했어요. 자존심이 상해서 일부러 노래 연습을 하지 않았죠. 술꾼들 앞에서는 절대 노래 못하겠더라고요. 내가 정말 존경하던 고(故) 최무룡 선배가 밤무대에서 노래하는 걸 보고 울컥했어요. 국회의원에서 떨어지고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던 시절에 한 지방 업소 대표가 백지수표를 들고 온 일도 있죠. 머리는 움직이는데 여기 가슴이 절대 안 움직이더라고. 거절했죠.(웃음)"이랬던 그가 이번에는 영화 '이별'과 '맨발의 청춘'의 주제가를 부른다. '별들의 고향'의 이장호 감독이 색소폰을 불면 신성일은 그 음악에 맞춰 근사한 탱고를 춘다. 재즈보컬 말로가 음악 감독과 편곡자로 참여해 당시 유행했던 영화 주제곡을 색다른 느낌으로 재해석하며, 가수 알리와 뮤지컬 배우 정상훈ㆍ박은미는 영화 주제곡을 편곡해서 부른다. '시네마 콘서트'라는 형식이 낯설 수도 있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대중 문화인이 새로운 도전을 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니냐"고 신성일은 되레 반문한다.콘서트 준비부터 홍보까지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체력적으로 힘들 수도 있지만 그는 '문제 없음'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생긴 피트니스 센터가 남산 하얏트 호텔에 있었어요. 거기 1호 회원이 나에요." 주연 영화 506편을 소화하면서 건강 관리는 철칙으로 삼으며 살아왔다는 얘기다. 그는 "영화 '길소뜸'을 하기 위해서 3개월 동안 쌀밥 설탕은 때려 죽여도 안 먹었어요. 고기 절대 안 먹고 생선과 채소만 먹고 운동했던 나"라며 남다른 체력 관리 비법을 털어놓는다.
한 시대를 풍미한 대 스타답게 원치 않는 일로 구설수에 오르는 일도 잦았다. 최근에 솔직하게 한 말들이 '폭탄발언' '망언'으로 엮여 인터넷에 화제가 됐다. 그런 반응이 당혹스럽지 않았냐고 하자 "연애영화만 500편을 찍은 나인데, 만나는 여자가 없다고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요?"라고 되묻는다. 언론과 관객의 속성을 뻔히 아는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자유인(自由人)이기 때문이다. 경북 영천 한옥집에 살면서 개와 함께 벌거벗고 뛰어 놀기도 하는 '자유인' 신성일은 "내가 나쁜 남자 1위로 올랐대? 어쨌든 화제로 삼아주니 고마워요"라고 말한다.팔순을 바라보는 충무로의 전설 신성일에게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일을 물었다. "이제는 할 거 다해봤으니까 영화, 내가 주인공인 영화를 하고 싶어요.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흑백무성영화 '아티스트 The Artist'가 작품상을 받는걸 보면서 느낌이 왔죠. 그게 바로 1960년대 충무로 이야기거든요. 얼마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은지 몰라요. 잘 만들고 가꿔서 칸에 다녀오고 싶습니다."
구채은 기자 faktum@ㆍ사진제공 충무아트홀<ⓒ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사회문화부 태상준 기자 birdcage@ⓒ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