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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부랴트족 건국신화인 '선녀와 나무꾼'이 성폭행 동화?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37초

바이칼호 인근에 사는 부랴트족 건국신화에서 비롯
수천년전 전승문학에 현대적 잣대 들이댈 수 있을까?


몽골 부랴트족 건국신화인 '선녀와 나무꾼'이 성폭행 동화? (사진=청와대 어린이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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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에 등장하는 나무꾼을 "성폭행범이자 여성 납치범"이라고 한 발언이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여성을 억압하는 내용의 구전동화들이 아이들에게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는 현실이 바뀌어야한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고 해도 워마드의 성체(聖體) 훼손사건 이후 페미니즘 전반에 대한 논란이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 여가부 장관으로서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은 상황이다. 더구나 해당 동화는 단순한 전래동화가 아니라 현재도 바이칼호 인근에 살고 있는 몽골 부랴트족의 건국신화에서 비롯된 이야기란 점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무시한 발언이라는 비난을 피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 14일 정 장관은 거버넌스센터 주최로 열린 '성평등 사회 비전과 거버넌스' 포럼에서 "성평등을 위해 관점을 바꿔나가야한다"고 강조하면서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언급했다. 정 장관은 "선녀와 나무꾼 예를 들어보겠다. 저는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나무꾼이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관점을 바꿔보면 선녀 입장, 아이들 입장, 선녀 부모님 입장을 비교해 보면 나무꾼은 성폭행범입니다. 여성 납치범이고요. 이제까지 왜 제가 그렇게 생각했을까요?"라며 "보편적으로 여겨지는 지식, 윤리, 상식들이 실제로는 누군가의 관점에 따라 형성된 것일 수 있기 때문에 남성 중심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에서 보는 성평등 정책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여성억압적인 전래동화 내용이 이를 배우는 어린아이들 입장에서 무비판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 지적한 것.

해당 발언은 곧바로 논란에 휩싸였다. 지금과 문화, 사회적 가치관이 전혀 다른 전 근대시대 내려오는 전래동화에까지 현대적 잣대를 들이대 제단하는 것은 전승문학들이 가진 역사성에 대한 몰이해며, 남성을 잠재적 성폭행범으로 만드는 편향적 발언이라는 반발이 주를 이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정 장관 해임과 여가부 폐지 등을 청원하는 게시글이 수백건에 달했다.


몽골 부랴트족 건국신화인 '선녀와 나무꾼'이 성폭행 동화? 러시아 연방의 일원인 부랴티야 공화국의 위치(빨간선). 바이칼호 인근에 사는 부랴트족의 나라로 부랴트족은 이 근방에 퍼져 살고 있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이들 종족의 설화 중 하나로 동아시아 문화 및 교류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지도=구글맵)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원래 몽골의 '부랴트(Buryat)'족의 건국 신화와 과거 청나라 만주족의 건국신화 등 동북아시아 여러 유목민족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동아시아 문화 및 교류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는 전승 중 하나다. 부랴트족 설화에는 천신의 딸이 목욕을 하는 동안 사냥꾼이 그녀의 깃옷을 훔쳐 그녀와 살게 됐으며, 여섯아이를 낳은 후 깃옷을 되찾아 다섯아이를 데리고 하늘로 올라갔으며, 남은 한 아이가 부랴트족의 건국시조가 됐다는 내용이다. 유목민들의 약탈혼 문화와 천신강림 신화 내용 등이 다른 유목민족들과 주변국가들의 전승문학에도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역사적 가치가 높은 신화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도 부랴트족은 러시아의 부랴티야공화국, 치타주, 몽골, 중국 북동부 일대에 살고 있다. 이처럼 타 민족의 건국신화에서 비롯된 전승을 두고 현대적 잣대로 여성억압적이라며 평가하는 것은 역으로 '문화의 다양성'을 해치는 행위거나 '역사성의 몰이해'란 비판을 받기 쉽다.


발언의 취지 자체와 별개로 카톨릭이 남성중심적이란 이유만으로 워마드의 성체훼손사건이 불거진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여가부 장관의 해당 발언은 신중치 못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남성혐오 논란에 휩싸인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에 지난 10일 성체에 모욕적인 글을 쓰고 불태운 사진이 게재되면서 신성모독 및 무차별적 남성혐오 논란이 일어났다. 해당 사진에 대해 워마드 회원들은 "여성을 억압하는 종교에 대한 보복"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들은 여성사제를 받아들이지 않고, 낙태죄를 반대하며 성경 속 내용도 상당히 남성중심적이라는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따른 논란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여가부 장관이 편향적 발언을 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앞서 정 장관은 지난 7일 혜화역에서 열린 '불법 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 비공식적으로 다녀온 사실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인격모독성 발언들이 나온 시위에 장관이 참여, "여러분이 혜화역에서 외친 생생한 목소리를 절대 잊지 않겠다"고 한 발언은 장관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이었다는 비판이 이어졌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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