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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도시이야기]상암동, 쓰레기장에서 상전벽해한 미디어 중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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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도시이야기]상암동, 쓰레기장에서 상전벽해한 미디어 중심지 상암동 난지도 하늘공원의 억새 모습. 1993년까지 쓰레기 매립지였던 곳이 오늘날에는 공원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사진=아시아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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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오늘날의 서울 마포구 상암동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말이 '디지털미디어시티(DMC)'다. 2000년부터 상암동을 중심으로 '새천년신도시기본계획'이 발표되면서 2002년 한ㆍ일 월드컵과 함께 월드컵 경기장과 월드컵 공원이 들어섰고, 주요 방송국들의 미디어센터가 이전되면서 명실공히 미디어 중심가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암동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첨단 미디어단지가 아니라 쓰레기장이었다. 상암동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난지도(蘭芝島)는 1978년부터 1993년까지 서울시의 쓰레기 매립지로 9200만t)의 폐기물이 매립됐고, 100m 높이의 쓰레기산이 올라가 있었다. 매일 3000대 분량의 쓰레기차가 오고가 세운 거대한 쓰레기산은 이집트 쿠푸왕의 대피라미드보다 30배나 거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쓰레기장이 들어서기 전까지 이 곳은 서울 근교의 휴양지였다. 상암동이란 이름 자체가 이 지역에 있던 자연촌락인 '수상리(水上里)'와 '휴암리(休岩里)'에서 각각 한자씩 따와 만들어졌다. 원래 상암동 주변 동네는 한양에서 10리 떨어진 성저십리(城底十里)에 속해 오늘날로 따지면 그린벨트로 묶여 조선시대 내내 개발이 제한되면서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유명했다.

[두 남자의 도시이야기]상암동, 쓰레기장에서 상전벽해한 미디어 중심지 과거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 시절 난지도의 모습.(사진=연합뉴스)



쓰레기장의 대명사처럼 알려졌던 난지도 역시 원래 난초와 지초 향이 가득하다해서 난지도란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말 대표적인 지도인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그린 주인공으로 유명한 고산자 김정호는 한양 일대를 그린 수선전도(首善全圖)에서 난지도 일대를 꽃이 많다해 '중초도(中草島)'라고 기록했다. 쓰레기장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청정한 동네로 민가에서는 꽃섬, 꽃동네라고 불렸다고 한다. 이 꽃동네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도 큰 변화를 겪진 않았다. 1914년 경기도 고양군에 속했다가 해방이후인 1949년 서울로 편입됐고 1975년에 서대문구에서 마포구로 관할이 변경되면서 현재의 행정체계가 됐고 쓰레기 매립지가 들어섰다.


상암동의 변화는 1993년 수용 한계량에 도달해 난지도 쓰레기 매립지가 폐쇄되면서 시작됐다. 난지도는 생태공원으로 조성됐고 쓰레기산 위에는 공원이 건설됐으며 방벽을 둘러쳐서 오염하수가 한강에 스며드는 것을 방지했다. 쓰레기에서 만들어지는 메탄가스는 인근 월드컵경기장과 월드컵공원의 열에너지원으로 쓰였다. 2002년 한ㆍ일월드컵과 함께 경기장과 공원이 들어서면서 월드컵동네로 불리기도 했다.


월드컵공원 인근의 DMC 개발사업도 2008년부터 1차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올해까지 500여곳의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입주했다. DMC의 배후 지역으로 개발 중인 '수색증산뉴타운' 사업과 양 지역을 연결하기 위한 '수색역세권개발사업' 또한 상암동과 관련된 주요 개발이슈다. 앞으로 2차 개발을 통해 상권이 발전하고 배후지역들과 연결성이 강화되면 서울 서부지역의 새로운 메카가 될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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