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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기관 경고에도 한은"환율 조작국 지정 가능성 낮다"

시계아이콘읽는 시간3분 48초

KIEP·LG연 등 선제 예방책 세우라 주문에도 이주열 총재 "조건 부합않는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4월 위기설의 근거가 되는 미국이 우리나라를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이 낮다고 밝혔다. LG경제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흥국증권 등 연구기관과 금융사들이 환율 조작국 지정 가능성이 있다며 대응책을 세울 것을 주문한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이들은 미국이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기 위해선 ‘지정 기준’을 완화해야 하는데 이 경우 한국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될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거대한 중국에 앞서 경제규모가 작은 국가를 먼저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해 중국이 알아서 위안화 절상에 나서도록 하는 전략을 쓸 수도 있다는 관측도 있다. 정부나 한은은 미국의 환율 조작국 지정 기준에 한국이 부합하지 않는다며 낙관론을 펼 게 아니라 돌다리도 두드리고 가듯 세심하고 정밀한 대응책을 미리미리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주열 총재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 낮다"=이주열 한은 총재는 23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4월 위기설'의 근거로 언급되는 미국의 환율 조작국 지정 가능성, 대우조선해양 회사채 상환 부담 등에 대해 "이미 알려진 리스크"라면서 "4월 위기설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특히 환율 조작국 지정 가능성에 대해 "결론적으로 말하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단언했다. 그는 지난해 2월에 발효된 교역촉진법을 들면서 지정기준을 보면 우리나라는 걸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미국이 세부요건을 바꾸거나 1988년 종합무역법을 활용,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이 있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덧붙였다.

영국의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3일 "환율을 관리하는 분명한 아시아 국가는 중국과 일본이 아니다. 국가경제에서 무역 비중이 큰 한국과 대만, 싱가포르의 환율조작이 의심된다"고 보도했다. 한국이 환율 조작국이라는 주장을 대놓고 한 셈이다.


기획재정부와 한은은 15일 공동명의로 FT본사와 일본 지사에 보도 내용이 사실과 다르니 신중을 기해달라는 내용의 항의 서한을 보냈다. 정부는 서한에서 한국이 원화 절하를 위해 일방으로 시장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은 국제통화기금(IMF)의 한국 경제 보고서와 미국 환율 보고서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다음날 기자들을 만나 "우리가 경상수지 흑자를 내기 위해서 환율을 조작하는 것처럼 기사를 썼는데 그렇지 않다"면서 "우리는 대미 경상수지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는지 고민하는 나라"라고 반박했다.


◆KIEP·LG硏 등 "환율 조작국 지정 가능성" 경고음=연구기관들과 금융회사 리서치 센터들의 생각은 정부나 한은과는 다르다. 환율 조작국 지정 가능성이 있다며 대비책을 세울 것을 주문해왔다.


LG경제연구원은 21일 '트럼프 정책과 달러화의 향방'이란 보고서에서 "환율 조작국 지정의 실효성 저하가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대상 국가의 실질적인 후보군도 제한적일 가능성이 있다"면서 "지난 10월 환율보고서의 관찰 대상국 중에는 대만과 한국이, 그 밖에는 싱가포르 등이 지정될 우려가 있다"고 전망했다.


LG연은 정부 개입에 따른 통제력을 감안할 때 통화가 국제화돼 있거나 외환거래 규모가 큰 통화는 제재의 실효성이 낮을 수 있다면서 미국의 협상력 측면에서 과거 일본과 독일과 같이 경제와 경제 외적으로 미국 의존도가 높은 국가를 대상으로 할 수 있으며, 미국의 제재가 명분을 가지는 동시에 제재의 충격이 금융 불안으로 번지지 않을 수 있도록 상대국 경제여건이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문박 책임연구원은 "미국 무역수지 개선효과는 적더라도 정책적 의지를 보여주는 차원에서 환율 조작국 지정이 단행될 수 있다"면서 "그 가능성은 아주 높다고 보지는 않지만 낮지도 않다"고 말했다.


흥국증권 리서치센터는 앞서 지난 14일 '환율 조작국: 신흥국과 선진국의 다른 점'이란 보고서에서 "1가지 요건을 충족한 중국이 환율 조작국 명단이 올라간다면 2가지 요건을 충족한 한국도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KIEP는 이미 지난달 초 우리나라가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KIEP는 '미국의 중국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과 영향'이란 보고서에서 KIEP는 "미국이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경우 우리나라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KIEP는 "미국이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기 위해서는 기존 기준(지정 요건)을 완화하거나 새로운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 데 그럴 경우 한국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미국이 중국과 극단적 대결 상황을 피하면서도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서나, 미국 우선 정책 추진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상대적으로 작은 국가를 우선 지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KIEP는 미국이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중국보다 경제규모가 작은 한국, 대만 등을 환율 조작국으로 우선 지정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대만을 중국(1992년)보다 먼저 1988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했다.


◆환율 조작국 지정 기준가= 미국은 종합무역법(1988년)에 따라 환율 조작국을 지정해 무역제재를 통한 압박을 했지만 최근에는 교역촉진법을 근거로 환율 조작국을 지정하고 있다. 환율 조작국이라는 용어는 종합무역법에 따른 것이며 교역촉진법에 따른 용어는 '심층분석국'이다.



종합무역법의 환율 조작국 지정 기준은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국, 유의미한 대미 무역수지 흑자국 등 2가지다. 이 법과 기준에 따라 한국과 대만은 1988~89년, 대만은 1988~89, 1992년, 중국은 1992~94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됐다.


교역촉진법의 기준은 대미 무역흑자 200억달러 이상, 경상수지 흑자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상, GDP 대비 2% 초과한 달러 순매수 개입 등 3가지다. 미국은 이 법에 따라 지난해 10월 중국, 독일, 대만, 한국, 스위스, 일본을 관찰 대상으로 지정했다. 중국은 6월에 이어 10월에도 관찰 대상국으로 재지정됐다.


미국은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국가를 심층분석 대상으로 지정, 1년간 양자 협의를 벌여 개선이 미비하다고 판단할 경우 무역제재에 들어간다.


지난해 10월 발표한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1개 항목(대미 무역수지 흑자 200억달러 초과)을 충족하고 한국은 2개 항목(대미 무역수지 흑자 200억 달러 초과,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3% 상회)을 충족했다. 한국의 대미 흑자는 302억달러, GDP 대비 경상흑자 비율은 7.9%다. 달러 순매수액은 -1.8%다.


중국은 대미 흑자는 무려 3561억달러지만 경제규모가 큰 탓에 GDP 대비 경상흑자 비율은 2.4%에 불과하다.



교역촉진법을 기준으로 할 경우 한국은 중국에 비해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한 가지 요건을 충족한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한다면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한 한국은 당연히 들어갈 것으로 보는 게 자연스런 추론이다.


LG연은 특히 교역촉진법에 따른 환율제재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종합무역법에 의거해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은과 미국 중앙은행격인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방향이 상반된 데서 생기는 원화 약세를 미국이 "원화 약세를 유도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그 역시 환율 조작국 지정에 상당 부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원화 저평가에 대한 분석도 우리나라에 불리한 여건이다. KIEP는 보고서 발표 당시 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원화 저평가는 7~8%로 나타난다고 밝혔다.


종합해보면 대규모 경상수지, 대미 무역흑자, 해외 기관의 원화 저평가 분석 등 미국이 한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명분은 충분하다.


◆무역 불균형 완화 등 예방위한 전방위 노력 필요=정부와 한국은행은 미국이 우리나라와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데 동시에 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중국이 우리의 최대 교역국인 만큼 미국의 중국 환율 조작국 지정 자체보다는 이에 따른 파장, 간접적인 영향에 대비할 필요가 크다. 중국이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되면 위안화가 절상압력을 받아 대미 수출이 둔화되고 이 경우 한국의 대중 수출도 둔화되게 마련이다.위안화와 함께 원화도 동반 절상 압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우리 제품의 수출 가격경쟁력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한국이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될 경우는 어떨까? LG연은 "원화 절상 압력이 커질 수 있다"면서 "과거 미국의 환율 압박으로 통화가치가 절상된 국가들의 경우 6개월간 평균 10% 가량 절상된 점은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145원에서 1000원대 중반까지 하락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LG연은 환율 및 자본시장 여건은 당분간 경기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대외충격이 국내 경제로 파급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안을 사전에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원은 금융시장의 변동이 아닌 미국의 정책적 압력에 기인하는 부분이 크다는 점에서 문제 해결이 더욱 어렵다면서 모니터링이나 스무딩과 같은 수준의 수동적이고 사후적인 대응을 넘어 대외 압박을 완화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 무역불균형 완화를 위한 선제적 방안 마련 등 사전 예방을 위한 전방위적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최문박 책임연구원은 "미국과 우리에게 경제적 이익이 되는 방안을 제안하는 것도 충격이 가시화하기 전이어야 가능할 것"이라면서 "미국에 경제적 실익을 제공함으로써 대외 압박의 가능성을 줄이는 한편, 국내 기업에도 기회가 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KIEP 역시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우선 한국의 대규모 경상 수지 흑자가 환율 요인보다는 저유가와 인구 고령화, 기술경쟁력의 차이 등 비환율 요인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는 객관적인 수치와 분석 결과를 제시하고 한시적으로 미국 물자 구매 확대 등을 통한 통해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것을 검토할 것을 제안했다. KIEP는 외환시장 안정화 노력이 환율흐름을 바꾸기보다는 변동성을 낮추는 데 있음을 수치로 보여주는 한편, 중장기로는 외환시장 개입의 투명을 제고할 것 등을 권고했다.




박희준 편집위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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