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문호남 기자] 시간이 참 빠르다. 2017년의 달력도 이제 한 장만 남았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고 있지만 한 자리에서 꾸준하게 일터를 지키며 바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충무로 인쇄골목 사람들이다.
전깃줄로 뒤엉킨 하늘 아래 좁은 골목. 종이를 실은 삼륜 오토바이가 분주하게 움직인다. 업체 간 분업과 협업이 중요한 이곳에서 오토바이는 최적화된 운송수단이다. 복잡하고 무질서해 보이지만 인쇄골목에는 인쇄업의 모든 과정(기획, 디자인, 편집, 출력, 인쇄, 후가공)이 녹아 있다.
하지만 장기 불황과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의 대중화로 인쇄업은 옛날 같지 않다. 골목 이곳저곳 공장, 사무실 임대 문의 포스터가 빼곡하게 부착돼 있으며 업주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30년째 인쇄소를 운영하고 있는 차모(67)씨는 “매년 줄어드는 주문량과 오르는 원자재 값에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렵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인쇄골목 상인들은 명함, 봉투, 포토북, 스티커지 등 다양한 품목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며 생존을 위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상인들은 ‘세월’을 지키고 있다고 말한다. 시련의 계절을 몇 번이고 버텨낸 만큼 더 굳건해졌다는 것이다. 연말마다 달력을 찾는 단골손님 때문이라도 충무로 인쇄골목을 떠날 수가 없단다.
“달력은 기성품이 아니야. 수제화처럼 딱 맞는 달력이 있어. 개인의 취향에 따라 언제든지 변형할 수 있지. 신발 사이즈 맞추는 것 마냥 달력을 만들어서 쓰나.” 그들은 달력 한 부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충무로 인쇄골목. 그 곳에 가면 풍부한 경험과 섬세한 눈을 가진 장인들이 밤낮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문호남 기자 munona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