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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이나바, 도쿄金 전쟁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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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감독 모두 WBC 이후 선임…2006년에 감독-선수로 맞대결
감독 vs 감독 1차전 이나바 승…한일 야구전쟁, 이제 시작일뿐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2020년 도쿄 올림픽 야구 금메달을 향한 한국과 일본의 싸움이 시작됐다. 오랜 라이벌은 16일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개막 경기에서 첫 합을 겨뤘다. 승부치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한국이 7-8로 졌지만 승부는 중요하지 않다. 기나긴 싸움의 막이 이제 막 올랐고, 첫 주먹을 교환했을 뿐이다.

한국 대표팀은 선동열(54) 감독, 일본은 이나바 야쓰노리 감독(45)이 이끈다. 선 감독은 선수 시절 '국보투수'로 불린 슈퍼스타고, 이나바 감독은 일본대표팀의 4번타자를 지냈다. 선 감독은 이나바 감독에게 구원(舊怨)이 있다.


한국, 일본, 대만 프로야구 우승팀이 도쿄돔에서 격돌한 2006년 코나미컵. 선동열 감독은 삼성을 이끌고 참가했다. 일본 대표는 니혼햄 파이터즈였고, 이나바 감독은 그해 일본시리즈 최우수선수(MVP)였다. 코나미컵에서도 맹활약했다.

이나바 감독은 삼성과의 개막경기에서 4회 선제 1점 홈런을 쳤고 1-1 동점인 6회 1사 1, 3루에서 결승 적시타를 쳤다. 니혼햄이 7-1로 이기는 데 공헌했다. 삼성은 대만 라뉴와의 예선 경기에서도 져 결승에서 설욕할 기회도 잡지 못했다.


선동열-이나바, 도쿄金 전쟁의 서막 선동열 감독과 이나바 야쓰노리 감독 [그래픽= 이주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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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은 얽히고설킨다. 당시 니혼햄 감독이 현재 SK를 이끄는 트레이 힐만(54) 감독이었다. 힐만 감독은 "(이나바는) 22년 감독 생활 중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최고의 프로선수였다. 믿을 수 없는 에너지를 가졌고 조용한 리더십이 있었다"고 했다.
스즈키 이치로(44)도 같은 아이치현 출신인 이나바 감독에 대해 존경심을 표현했다. 이치로는 2015년 인터뷰에서 "중학생 때 이나바가 타격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저렇게 하면) 프로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나바 감독은 왼쪽 뺨에 반점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있었고 치료하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에게서 받은 것이어서 소중하게 생각한다. 숨기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한일 대표팀의 감독 선임 과정은 비슷했다. 한국은 지난 6월 6~9일 홈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에서 탈락한 다음 전임 감독제를 도입, 7월 24일 선 감독을 기용했다. 일본은 닷새 후 이나바 감독을 선임했다. 전임 고쿠보 히로키 감독(46)은 WBC 4강 탈락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선동열 감독은 "이나바 감독은 섬세한 스타일"이라고 했다. 이나바 감독은 취임 인터뷰에서 "일본의 국기라 할 수 있는 야구가 정식종목으로 부활한 도쿄 올림픽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따겠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아쉬움을 털어내겠다"고 했다.


일본은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에서 한국에 2-6으로 역전패했다. 2-2 동점이던 8회말 이승엽(41)이 2점 홈런을 쳤다. 당시 이승엽의 타구를 쫓아가다 담장에 막혀 더 이상 쫓지 못하고 쳐다보기만 한 일본의 우익수가 이나바였다. 한국은 결승에서 쿠바를 3-2로 꺾고 금메달을 땄다. 일본은 3~4위전에서 미국에 4-8로 져 동메달도 놓쳤다.


선동열 감독에게 대표팀 사령탑은 명예 회복의 기회다. 그는 2005년 삼성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 팀을 두 차례 우승으로 이끌었다. 2012년 삼성을 떠나 고향 팀 KIA 감독이 됐으나 2013, 2014년 2년 연속 8위에 그치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 뒤 3년 넘게 야인으로 지냈다. 이나바 감독은 2012시즌을 마친 후 현역에서 은퇴, 2013년부터 대표팀 타격코치를 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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