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게임이론으로 본 갑질문화
최종수정 2017.07.17 11:26기사입력 2017.07.17 11:26
이내찬 한성대 교수
[아시아경제]우리 사회는 가족은 물론 직장 내 모임에서조차 위계 의식이 강하다. 모르는 사람과 통성명을 한 후 나이로 형, 아우를 구분 해야 직성이 풀린다. 유교의 삼강오륜 문화가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권력이 위에 편중된 것을 용인하는 '권력 거리(power distance)'가 강한 사회이다. 지도자는 자신의 철학이나 의지와 욕망에 따라 제도는 물론 운영 방식을 언제라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통령 또는 단체장이 바뀌면 그간 추진해온 정책과 사업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 변화에 민첩하게 대처할 수는 있지만 축적과 연속성이 결여된다. 그러다 보니 일본처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고 교육 정책은 짜깁기로 누더기가 된다. 최상위 조직의 정점에서 추진되는 정책은 옳고 그름을 떠나 밑으로 낙수 되면서 모든 사회 구성원을 압박한다. 이래서야 행복 지수가 높을 수가 없다.

구성원들에게 제대로 몫이 돌아가게 하는 것을 정의(正義)라 한다. 권력 거리가 약한 프랑스 파리만 하더라도 웬만한 고급 레스토랑이 아니고서는 내 돈 내고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웨이터가 주문을 늦게 받는 것은 다반사이고 손님 얼굴에 불만이라도 잔뜩 껴있는 것을 감지하면 오다가도 되돌아간다. 그래서 관광객들은 커피 한 잔도 못 마시고 카페에서 나오는 불편한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손님은 지출의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비용을 떠안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고 위풍당당한 종업원은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다. 종업원을 꿇어 앉히고 사과를 받는 동영상이 수도 없이 올라오는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이다.

'갑질'이란 갑의 위치에 있는 자가 많은 몫을 챙기고 나머지를 을에게 전가시키는 부당함을 의미한다. 최근 수년간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박봉의 알바를 부려먹은 '열정 페이', 밀어내기식 판매 할당을 강요한 '남양유업 사원 욕설' 사건 등이 있었다. 자신의 권력을 현시하려 한 '포스코 계열사 왕 상무, 라면', '프라임베이커리 회장 욕설'과 '마카다미안 넛, 대한항공 회황' 사건도 떠오른다.

이런 사회에서는 직원들의 태도도 문제다. 눈치로 위의 생각을 미루어 짐작해 따르려 한다. 위에서 시키는 일이 이상하다고 수군거리면서도 직언하면 찍힐 것을 우려해 모두가 함구하고 지시를 따르는 죄인의 딜레마에 빠진다. 그래서 나중에 문제가 발생할 것임을 알지만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폭탄을 위로 떠넘긴다.
갑질은 갑이 몫의 분배 권한을 남용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게임이론에서는 이 같은 상황 하에서 갑이 대부분의 몫을 차지한다고 예측하지만 실제 실험에서는 전체 몫의 20% 정도가 을에게 간다. 을이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3자가 개입하게 되면 그만큼 몫이 늘어나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

우리 사회가 권력 거리를 약화시키고 정의를 구현하려면 수평 문화를 추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IT 기업에서 사원들이 영어 닉네임으로 부른다든지 최근 대기업이 직급을 없애고 매니저로 통일한 사례는 주목할만 하다. 기업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제안과 집단 지성의 구현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집단적인 묵인과 담합을 깨고 내부의 잘못된 관행을 고발할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하다. 서울시 교육감에 출마한 아버지를 낙마시킨 고승덕 변호사의 딸 캔디 고는 같은 가족이기에 모든 것을 '우리'라는 이름으로 덮으려는 관습보다 사회적 정의가 중요함을 일깨워줬다. 관피아의 낙하산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 조직의 이너서클을 반성해야 한다. 내부 고발은 장려되고 제보자에 대한 보호는 강화돼야 한다. 투명성 확보도 중요하다. 내부에서 돌아가는 사실이 공개돼 외부에서 감시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보는 눈이 많으면 오류와 부정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수평 문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크고 작은 국정 농단 사건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내찬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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