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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도덕 없는 경제와 미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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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도덕 없는 경제와 미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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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과잉(過剩)의 사전적 의미는 '예정하거나 필요한 수량보다 많이 남음'이다. 시장의 불균형을 구조적으로 해석하는 개념으로 자주 활용되는데 주로 공급, 생산, 투자, 소비에 어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장은 이 개념을 매우 불편해하고 무엇인가 줄여야 한다는 신호로 해석한다.


고민은 여기서 시작한다. 무엇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 가장 쉽게 떠올리는 단어는 '구조조정'이다. 여기에 사업을 앞세우면 하던 일을 정리하고, 인력을 앞세우면 직원 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결과는 일단 둘 다 비슷하다. 비용을 줄이니 회계상 효과는 극대화되고 구조조정을 단행한 최고결정자는 위기를 극복한 주역으로 포장된다.

과잉을 해소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이지만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가해자가 추앙받고 되레 피해자를 사지로 내모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사업을 확대한 것도, 함께 일할 직원을 선발한 것도 최고결정자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인데 책임은 온전히 직원의 몫이다. 반대로 이익에 대해서는 몫을 나누지 않으니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한다는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표현이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한 동안 연락이 없어 문제없이 잘 살고 있나 싶었는데 안부 인사 후 돌아온 답변은 "저 회사 잘렸어요"였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최대주주인 사장이 자신의 회사 지분까지 은행에 맡기고 본업과 상관없는 호화 부동산 사업을 시작했는데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그 부담이 고스란히 회사로 돌아왔단다. 사장이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은 급여를 줄이는 일이었고, 그 다음 직원 수를 3분의 1로 줄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억울함이 묻어나는 그의 목소리는 한동안 이어졌다.

시장의 실패든 정부의 실패든 알고 보면 시스템보다 사람이 문제인 경우가 많다. 과잉과 경제 버블을 해석하는 데에도 전통경제학보다 행동경제학 또는 사회심리학이 더 유용하고, 대다수가 목격해왔듯 과잉을 해소하는 과정은 언제나 책임과 권한이 없는 대다수에게 비인간적이었다. 재기의 기회는 전근대적 자기 과신과 착각에 빠진 극소수의 최고결정자에게만 주어졌다.


'유한계급론'을 쓴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근면과 효율을 요구하지만 돈을 벌어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지배계급의 행태를 과거에 약탈을 일삼았던 미개사회의 잔재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마하트마 간디는 '철학 없는 정치'와 '도덕 없는 경제'를 7가지 악덕 중 하나로 꼽았다.


공존과 번영의 담론은 빠르게 바뀌고 있으나 직면한 현실은 여전히 굼뜨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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