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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주한미군 논란이 예고한 한반도 판도라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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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뉴욕 김근철 특파원] 최근 주한미군 철수 논란이 갑자기 불거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측근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 전략가가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가 발단이 됐다.


그는 "중국이 북한의 핵 개발을 동결시키는 대가로 미국은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내용의 협상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물론 이 같은 주장은 워싱턴 정가의 흐름과 상반된 것이었고 결국 그가 백악관에서 쫓겨나는 빌미가 됐다. 배넌의 퇴출로 주한미군 철수론도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다.

주한미군 철수 논란은 한반도 주변 정세가 흔들릴 때마다 고개를 들고 분출했던 이슈다. 1970년대 말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했던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과 이에 반발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충돌은 이미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됐다.


개인적으로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주한미군의 복잡한 함의와 상징성을 실감했던 계기가 있었다. 남북정상회담이 좀 지난 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을 때 통일 후에도 한반도에 미군 주둔이 필요하다고 설득했고 김 위원장도 이에 동의했다고 밝혀 주변을 놀라게 했다. 당시 강경 보수 진영에선 "DJ가 지어낸 말"이라는 반박이 나올 정도였다. '양키 고 홈'을 외쳐왔던 일부 진보단체 역시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논란이 커질 즈음에 김 대통령의 직접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김정일 위원장에게 통일 이후에도 주한 미군이 있어야 '세력균형'을 유지하게 된다는 논리로 설득했다는 얘기였다.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한반도 통일 후 미국이 빠지고 중국이 한반도 전체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북한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첨언이었다. 논리에 대한 찬반은 있겠지만 주한미군이 지닌 함의가 그만큼 간단하지 않고 다층적이란 점을 새삼 곱씹어 보는 기회가 됐다.


얼마 전까지 '핵전쟁 불사'를 외치며 대치했던 미국과 북한은 이제 숨을 고르며 협상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북한은 어느새 미국을 위협할 정도의 핵 탄두 소형화와 장거리 운반체 기술까지 거의 손에 넣은 상태다. 북한 이슈는 이제 전쟁이 아니라면, 어떤 형태로든 협상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 임계치에 다다랐다.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 문제를 미봉해두지 않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갈수록 굳히고 있는 분위기다.


북한도 핵과 미사일을 내세워 미국과의 평화협정 등 항구적 체제보장과 경제 재건의 발판을 동시에 얻어내겠다는 의중을 숨기지 않고 있다. 1953년 휴전 이후 한반도를 구속해왔던 분단체제 지형의 격동이 비로소 시작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불거진 주한미군 철수 논란은 향후 직면하게 될 숱한 난제들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수십 년간 묶여있던 한반도 문제의 봉인이 풀리기 시작하면 주한미군 철수 논란 보다 더 휘발성 강한 문제들이 봇물 터지듯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한반도의 판도라 상자가 열리게 되는 셈이다.


우려되는 점은 이 같은 이슈들이 드러날 때마다 한국 정부와 사회가 제대로 감당해낼 수 있을지다. 그동안 때론 금기시됐고, 때론 적당히 감춰졌던 난제들에 대해 한국이 중심을 못잡고 갈팡질팡한다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자칫 새 틀을 짜는 과정에서 코리아 패싱(한국 무시) 현상을 더욱 자초할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대로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짓는 순간에 한국이 운전대에 앉아 스스로의 운명을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하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라도 한층 더 정교한 대비와 다양한 사회 의견을 수렴해가며 제2, 제3의 주한미군 철수 논란에 대비하는 준비가 시급해 보인다.






뉴욕 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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