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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모르는 건 모른다고 남겨두는 闕疑 자세 배워야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14초

[시론]모르는 건 모른다고 남겨두는 闕疑 자세 배워야 명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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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한문으로 된 불교경전을 읽을 때 경전을 그대로 읽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주석서를 참고로 하여 읽는다. 그래서 동아시아 고전을 읽는 사람들은 '화엄경'을 읽는다고 하지 않고 '화엄경 징관소'를 읽는다고 말하거나 '논어'를 읽는다고 하지 않고 '논어집주'를 읽는다고 말한다.


과거의 사유를 비판하면서 새롭고 독창적인 주장을 펼치는 것을 중시하는 현대학문의 경향과 많이 다르지만, 동아시아의 주석 전통에서도 글자 하나를 두고 해석이 달라지기도 하고 서로 다른 해석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기 때문에 경전을 읽을 때는 어떤 주석서를 읽는지 밝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난해부터 '능엄경'을 읽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능엄경 정맥소'를 읽고 있다. 명나라 때 승려 교광진감(交光眞鑑)이 저술한 것이니까 비교적 후대의 주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른 주석서들에 비해 기존의 주석서들을 비판하는 대목이 많다.


그런데 '능엄경 정맥소'에서 이전의 주석가들을 질타할 때 자주 사용하는 말이 있다. '闕疑(궐의)'라는 말로,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해석하지 않고 비워둔다'는 의미이다. 교광진감은 다른 주석가들의 해석을 비판하면서 잘 모르는 것을 해석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지 않았다고 몹시 비판한다. 모르면 모른다고 남겨두었더라면 다음이라도 제대로 해석할 수 있었을텐데 마치 잘 아는 것처럼 잘못 해석해서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게 해놓았다는 것이 그 비판의 이유이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남겨두는 것, 한없이 겸손하며 진중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진리를 탐구하는 '궐의'라는 학문적 태도가 과거 성현의 말씀을 금과옥조로 삼아 조술(祖述)하는 동아시아 학문 전통 속에도 있다니! 서양철학의 전유물로 알려진 엄밀한 사유와 치열한 비판정신이 불교교학의 전통에도 있다는 사실이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아는 체 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교광진감의 지적이 과거 주석가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필요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충분히 사실인지 아닌지 검증하지 않고 쉽게 단정하거나 정황만으로 사태를 판단하거나 중대한 국가적 결정을 몇 가지 단편적 사실만으로 결정하는 일이 너무 쉽게, 너무 흔히 반복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표절이나 모방, 남의 아이디어를 가로채는 등의 파렴치한 행동, 기존의 관행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따라 하거나 윗사람의 지시가 없다고 대충 일하는 습관도 양심의 가책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학자는 물론 정치가, 경제인, 기술자, 교사 등 전문가들뿐 아니라 일반 시민까지도 모르면서 아는 체 하는 일이 너무 많다. 모두 교감진광의 지적처럼 모르는 것도 아는 체하는 거짓된 마음에서 생겨난 문제들이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고승 도안(道安)은 "법고가 다투어 울리는데 누가 먼저고 누가 뒤냐"라면서 당시 유행하던 격의불교를 가차없이 비판했다. 하늘과 같이 존경하는 스승의 말씀일지라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이처럼 과거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비판적으로 사유했던 전통과,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남겨두고 충분한 증거가 나타날 때까지 판단을 보류하는 궐의의 정신이 동아시아 불교를 이끌어온 정신이었다.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이 중대한 시점에서 오래된 지혜를 벼려보자.


명법스님 은유와마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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