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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a]"힘겨운 삶 왜 사나" 현실 앞 끝없는 자기검열
최종수정 2019.03.15 11:15기사입력 2019.03.15 11:15

송수진 '을의 철학'




질 들뢰즈는 1995년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평소 스피노자와 니체를 선망한 그였다. 실천과 생성, 실험정신을 중요하게 여기고서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저서인 '차이와 반복'에 자살을 언급하는 대목이 있다. "죽음은 안으로부터 의지되지만, 언제나 바깥으로부터 오고, 수동적이고 우연한 어떤 다른 형태를 통해 온다. 자살은 모습을 감추고 있는 그 두 얼굴을 일치, 합치시키려는 어떤 시도이다." 들뢰즈는 말년에 지병이 많아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고 한다. 자유의지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다시 말해 타자에 의해 움직이는 삶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몸을 움직일 수 있었고, 창가까지 갈 힘이 생겼다. 그는 있는 힘껏 창가로 기어갔을 거다. 잠시나마 움직일 수 있었던 시간을 죽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여겼을 테니. 자살은 자신의 철학을 지키는 하나의 시도였을 수 있다.


배우 로빈 윌리엄스의 죽음도 자살이었다. 세간에 알려진 원인은 우울증. 하지만 그의 측근에 따르면, 치매를 앓고 있었다. 그리고 죽기 직전 온전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고 증언한다. 점점 기억을 잃어가다 잠시 기억이 돌아왔다면 그 또한 온전한 상태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이유는 그만이 알 거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영화 '캐스트 어웨이(2000년)'에는 그런 처지를 대변하는 대사가 나온다. 우연히 탄 비행기가 표류한다. 주인공 척 놀랜드(톰 행크스)는 무인도에서 4년을 살다가 기적적으로 탈출에 성공한다. 다시 도시로 돌아온 그는 말한다.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건 언제 어디서 죽을지를 결정하는 거였어." 놀랜드는 미치도록 살고 싶었다. 어떻게든 무인도에서 나가고 싶은데 도저히 방법이 없을 때, 그는 생각했을 거다. '그래, 그럼 나를 죽이는 건 이 상황이 아닌 내가 하겠다. 내 스스로 하겠다.' 그때는 이것이 선택지의 전부였을 수 있다.


영화 '굿 윌 헌팅' 속 로빈 윌리엄스


'을의 철학'은 '왜 이토록 힘겨운 삶을 살아내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절망적인 현실을 마주하고 이뤄지는 끝없는 자기 검열이다. 저자는 철학에서 해답을 얻는다. 칼 마르크스와 니체, 루이 알튀세르, 들뢰즈 등의 생각을 이해하며 세상을 향한 그만의 관점을 형성한다. 스스로를 향한 검열과 증오를 멈추게 하는 것도, 나를 둘러싼 세상을 해석하고 나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도 결국 나의 철학이다. 그렇게 나의 '존재'를 깨닫는 순간, 비로소 주변의 타인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내 곁을 스쳐 가는 모든 이들의 삶 역시 그들의 철학 안에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좌절은 모두 사실이다. 적용하는 철학은 매우 구체적이다. 저자는 도서관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그래서 학문적 계보를 이어야 할 의무도, 그럴만한 스승이나 선후배도 없었다. 그 덕에 철학을 형이상학적 접근이나 학문적 독해가 아닌 '을의 언어'로 해석할 수 있었다. 철학이 밥이자 물이고 목숨이었던 다급함이 만들어낸 삶의 언어다. 어찌하지 못하는 자유의 민얼굴도 그 틀에 기대어 설명한다. 저자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를 가리킨다.

"수용소에는 남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있었다. 수용소에서 그들이 했던 행동, 그들이 겪었던 시련과 죽음은 하나의 사실, 즉 마지막 남은 내면의 자유는 결코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언해주고 있다. 그들의 시련은 가치 있는 것이었고, 그들이 고통을 참고 견뎌낸 것은 순수한 내적 성취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 스틸 컷


유대인들에게 자유가 있었을까 싶지만, 그들에겐 언제 죽을지를 선택할 자유가 있었다. 지급받은 물이나 커피 가루를 마시고 씻지 않으면 몰골이 이상해져 더는 노동할 가치가 없는 자로 낙인찍혔다. 그렇게 해서 가스실로 갈 건가. 아니면 반은 마시고 반은 씻어 노동을 할 수 있다고 어필할 건가. 저자는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을 떠올린다. "우리는 자유롭도록 저주받은 존재다." 그의 철학은 존재와 실존을 구분한다. 의자나 책상처럼 본질이 이미 정해진 사물들은 자유가 없는 '존재'다. 본질이 미리 정해지지 않은 인간은 자신의 본질을 스스로 만드는 '실존'이다. 저자는 묻는다. "결국 우리는 자유를 갈망할 수밖에 없는 실존이 아닐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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