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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윤의 책섶] 니들이 ‘배추적’ 맛을 알아?
최종수정 2019.02.08 14:19기사입력 2019.02.08 14:13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김서령 지음|푸른역사|1만5000원

서른 편의 글 속에 풀어낸 작가의 고향, 그리고 엄마의 음식은 추억을 넘어 자료이자 기억에 가까운 인상을 준다. 그리고 아직 맺지 못한 문장을 남긴 채 작가는 지난해 10월 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속이 썩은 이를 위로하는 따뜻한 맛
그 맛과 같은 김서령의 글, 그리고 추억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설 명절 기간 중, 한 남성이 올린 글이 화제가 됐다. 내용인 즉슨 예비 신부가 고향에 인사드리고 집에 돌아간 뒤 연락이 안 된다는 것. 함께 올라온 사진에는 3~4개의 연결된 상 위로 빼곡하게 들어찬 차례 음식이 담겨있었다. 글의 진위를 떠나 여성의 잠수(?)를 형식에 매몰된 나머지 누구만 즐겁고, 누구는 괴로운 명절을 나는 받아들이지 않겠노라는 현대 여성의 선언으로 해석한 사람이 많았다.


반면 요리가 여성에게 선택 아닌 필수였던 조선 시대엔 “여자는 맵씨, 솜씨, 말씨, 맘씨 네 씨를 갖춰야 부모 흉을 사지 않지만, 그 네 씨의 근본은 음식 솜씨”라는 말은 반가부터 여항까지 예외 없는 정언 명령이었다. 그 솜씨의 정수는 연간 12번에서 15번 치르는 제사, 특히나 더욱 엄정하게 치러지는 종가의 제례에서 꽃을 피웠고, 그 과정에는 일반의 배 이상 품과 공력을 들여야 했던 종부의 피, 땀, 눈물이 어려 있었다.


종부의 딸이자 현대 여성이었던 작가는 철저한 중간자로 부엌에서 보낸 유년의 기억을 살뜰히 톺아낸 뒤 그 레시피를 촘촘하게 기록했다. 떡 반죽의 귀찮은 일은 엄마 몫이나 고명에 올릴 색색 꽃잎 따는 일은 제 몫이고, 집에 온 손님을 위해 동솥에 건진국수 세 종을 끓여 하나는 손님상, 다른 하나는 일꾼상, 나머지는 딸에게 건네는 일은 엄마 몫인데 실컷 자다가 그 국수마저 엄마가 입에 떠 넣어주면 꿀꺽 삼키는 것은 제 몫이었다 털어놓는 작가는 어머니의 부뚜막을 맴돌면서도 시종 사관의 입장을 견지한다.


모친의 갖은 음식 조리과정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줄줄 읊어내던 작가가 정작 어머니와 고모가 돌아가셨으니 집장은 사라졌고 얻어먹을 일 없을 줄 알았다는 대목에선 그 철저한 객체화에 놀라고, 메주를 쑤지 않고도 기상캐스터가 알려주는 일기예보로 겨울을 파악하는 것이 못내 헛헛할 때 제철 무를 자른다는 대목에선 어쩔 수 없는 현대인이 기억을 반추하는 법을 엿본다. 작가는 재현보다 기록에 충실하고 그 배경에는 딸의 삶만큼은 자신의 수고로운 삶과 다르길 바랐던 어머니의 의도적 소격이 있던 것은 아닐까?

나라에서 사당을 하사하면 그 자손은 영구히 제사를 모셔야 했는데 이를 불천위(不遷位)라 했다. 작가가 나고 자란 안동 의성김씨 종가 역시 몇 안 되는 불천위 종가 중 하나였다. 그 중심에 있는 학봉 김성일 종택은 부엌만 세 개, 장독은 서른 한 개에 달하며 지름이 65cm에 이르는 큰 무쇠솥이 아직도 제 소임을 다하고 있다. 30여 권 정도가 전해오는 조선의 조리서 중 으뜸으로 꼽히는 《수운잡방》, 《음식디미방》, 《온주법》이 모두 안동에서 나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영원히 계속되는 제사, 이를 주관하는 종부의 기술이 해를 거듭해 맵짠해진 사이 종손인 작가의 아버지는 달에 한 번 제사 때 ‘잠깐’ 들러 우아하게 삼헌관의 예를 갖추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늘 정갈하나 기괴하게 비어있는 사랑채, 그 부재가 길어질수록 어머니의 외로움 또한 사무쳤을 것이고, 조모 또한 일찍이 지아비를 여읜 터라 ‘사랑이 빈집’의 안주인 위로를 핑계 삼아 자유를 만끽하러 모여든 동네 처녀들과 할매들이 구워낸 소울푸드가 바로 표제에 등장하는 ‘배추적(배추전)’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은 임용고시 낙방 후 수년 만에 돌아온 고향 집에서 배추전을 부쳐 먹는다.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마저 연기처럼 사라진 뒤 오랫동안 비어있던 집에 남은 거라곤 쌀 한주먹, 밀가루 약간, 그리고 마당 텃밭에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배추 몇 포기가 전부. ‘배고파 고향에 내려왔다’는 주인공이 한 포기 배추를 뜯어다 저녁엔 국을 끓여 먹고, 이튿날 아침에 전을 부쳐 먹는 장면을 보며 많은 이들은 겨울 배추가 선사한 달콤하면서도 아린 맛, 얇게 입힌 고소한 반죽이 선사하는 따스한 위로를 함께 느꼈을 것이다.


안동의 유서 깊은 배추적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간다. 무를 깎아 솥뚜껑에 들기름을 칠하고 배추를 끓는 물에 데친 뒤 반죽을 입혀 부쳐내면 잔칫집 부럽지 않은 은성한 분위기 속 대나무 채반에 먹음직스러운 배추적이 척척 쌓였노라고 작가는 기억을 되짚는다. 그 맛은 참으로 ‘깊은 맛’이었는데, 이를 설명하기 위해 애꿎은 갈치가 소환돼 ‘얕은맛’을 대변한다. 밍밍하고 싱거운 배추적을 맛있게 먹을 줄 알면 ‘속이 썩고 내성이 생겨 의젓해져 비로소 세상에 관대해질 수 있다’고 한다. 필경 배추적은 예나 지금이나 상처 입고 속이 썩은 이를 위무하는 정다운 친구임에 틀림없다.


외벌이 가구가 아닌 이상에야 엄마가 부엌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그 가짓수를 하나하나 헤아려가며 글줄로 풀어낼 만큼의 경험을 쌓은 아이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8 한국의 사회동향’에 따르면 어린 자녀를 돌보는 맞벌이 부부는 만성적인 시간 부족을 겪고 있으며, 결혼 5년 미만의 맞벌이 부부일수록 아이가 없는 경향이 뚜렷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행여 아이가 있다 해도 맞벌이에 바쁜 우리 시대의 엄마들은 부엌에 머물 시간도, 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자녀를 살갑게 대할 여력이 없다. 대신 부엌 교육을 대신하는 요리 수업이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행여 된장이 냉이의 향을 지울까 냉잇국에도 날콩가루를 쓰고, 명태 보푸름 하나를 만들어도 형태를 숨길만큼 결이 곱되 젓가락엔 집혀야 했으며, 무 하나를 무쳐도 속까지 익어 부드럽되 탄력 있는 저작감을 유지했던 어머니의 올곧고도 맵짠 솜씨는 작가의 문장을 통해 사진 한 장 없이도 그 맛을 상상하고 그려보다 이내 침을 꿀꺽 삼킬 만큼 푸지게 한 상 펼쳐지지만, 이를 재현해낼 수 없음이 못내 아쉽고, 이를 기록한 작가 또한 홀연히 세상을 떠났음에 예고된 현전의 멸실은 비극에 다름 아니다. 다만 그 슬픔 속 ‘보석처럼 반짝이는 조각글’에 깃든 작가의 정성을 곱씹으며 소담한 조선 여인의 밥상을 설핏 그려볼 뿐이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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