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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이는 빽이 든든하다?"…판소리로 엮은 옛이야기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25초

이청준 판소리동화 5권에 담긴 세상살이의 깊은 이치
옛 이야기 기본구조 위에 우화와 풍자·해학 덧붙여져
남도 사투리와 언어유희로 맛깔스러운 읽는 재미까지


"심청이는 빽이 든든하다?"…판소리로 엮은 옛이야기 이청준 판소리 동화1~5/ 이청준 글/ 최미란 등 그림/ 문학과지성사/ 각 1만~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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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판소리에는 오랜 역사와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한국 문단의 거목이자 유달리 판소리에 애정을 가졌던 이청준 선생은 판소리 이야기를 가리켜 "지난 한 시절 우리 말의 참되고 아름다운 쓰임새 뿐만 아니라 역사와 풍속, 전설, 종교와 예술, 윤리, 산업, 지리 등을 망라한 국민 종합 교과서 노릇을 해왔다"고 정의했다. "사람의 오묘한 됨됨이와 세상살이의 깊은 이치들을 기막히게 재밌고 요령 있게 잘 드러내 보여, 우리 삶에 귀한 지혜와 위안을 주어 왔다"고도 평했다.


그가 생전에 판소리 동화 시리즈를 내놨던 것도 우리 어린이나 어른들이 처음부터 판소리 이야기를 제대로 즐겁게 만나고, 두고두고 삶의 지혜와 위안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절개 굳은 춘양이나 마음씨 착한 흥부, 효성 깊은 심청이를 모르는 이가 없겠지만 재미없고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가 아닌 소박한 우화나 풍자소설 형식으로 다시 써 보고 싶었다는 게 작가의 말이다.

그래서일까? 분명 옛 이야기의 기본적인 구조와 교훈은 그대로인데, 중간중간 미처 몰랐던 새로운 이야기가 들어 있다.


'수궁가(부제: 토끼, 용궁에 벼슬 가자)'에선 자라의 꾀임과 유혹에 넘어가 용궁까지 따라갔다 간신히 육지로 돌아 온 토끼가 여전히 제 주제와 분수를 깨닫지 못하고 까불다 사람들이 몰래 쳐 둔 사냥 그물에 걸려 꼼짝달싹 못하고 다시 죽을 고비에 놓인다.


"아이고, 아이고 내 팔자야… 그 어렵고 위험한 고비 다 넘기고 고생 고생 무사히 고향 산천까지 돌아와서 이 꼴이 되다니… 수궁이고 고향이고 어디 한 곳 마음 놓고 살아갈 곳이 없구나… 어쩔거나, 어쩔거나."


애달프고 원통해 하던 토끼는 숲 속 쇠파리들에게 자신의 볼기짝에 잔뜩 쉬를 슬어달라(알을 낳아달라) 부탁을 하고, 나뭇꾼들에게 잡혀 모닥불에 구워질 신세가 되자 이미 죽어 썩기 시작한 토끼인 양 독한 방귀 냄새까지 풍기며 겨우 위기를 모면한다.


'심청가(심청이는 빽이 든든하다)'에선 눈 먼 아버지에 대한 심청의 지극한 효심 뿐 아니라 뱃사람들에게 팔려가는 심청이의 처지를 안타까워 하는 이웃들의 슬픔, 바닷물에 빠진 심청이를 극진히 보살펴주는 용왕, 안타까운 가족사를 가진 심청의 처지를 헤아려주는 임금의 모습 등이 도드라진다.


그리고 "모든 일이 네 뜻대로 이루어져 다른 시름이 없게 되더라도 어려웠던 네 옛 시절과 이웃들을 잊지 말아라"는 용왕님의 당부대로 심청은 온 나라의 장님들을 위해 큰 잔치를 열게 된다. 부모와 자식 뿐 아니라 이웃과 마을, 임금(나라)까지 나서 서로가 서로를 돕고 베푸는, '효(孝)'를 넘어서는 '경천애인(敬天愛人)' 사상이 담겼다.


심청의 애닯은 효심에 대궐 잔치에 참석한 모든 장님들이 눈을 뜨게 되는 와중에도 심봉사를 속이고 뺑덕이네와 도망쳤던 황봉사만 눈을 뜨지 못한다던지, 그마저 심청이가 간곡히 기도해 눈을 뜨게 되지만 '마음 속에 아직 나쁜 생각이 절반쯤은 남아서' 그랬는지 황봉사가 '꼭 사냥꾼이 총질이나 하기 좋을 만큼 한쪽 눈을 빼꼼 뜨이다 말았다'는 구절은 슬며시 웃음을 짓게 하는 해학의 묘미다.


물질우선 시대의 나눔의 의미('옹고집타령'), 사람 살이의 서로 다른 두 모습('흥부가'), 온갖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신의와 약속을 지키는 사랑('춘향가') 등 모두 5편의 판소리 이야기는 우리네 삶의 희노애락을 남도 사투리의 추임새와 언어유희로 버무려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중간중간 소리 내어 따라 읽어보면 그 맛깔스러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작가는 한 사람인데 각 책의 그림은 모두 다른 이들이 그렸다. 전통적인 색감을 살리면서도 주인공의 표정은 하나 같이 익살스럽고 생동감 넘친다.


"심청이는 빽이 든든하다?"…판소리로 엮은 옛이야기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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