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 강일구, 〈화가의 집〉

힐링 아티스트의 그림 그리며 살아가는 느긋한 오늘

최종수정 2018.03.13 13:56기사입력 2018.03.13 13:56
강일구 일러스트레이터 [사진=강일구 제공]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 심플하고 유머러스한 선으로 유명한 노랑색 화가 강일구의 첫 에세이. 화가는 살면서 여러 권의 카툰집을 냈지만, 글이 주인공이 되어 그간의 작품들을 글 옆으로 모신 책은 처음이다. “글 쓰는 작업은 힘들었지만, 그동안 그림 만을 향해 달려온 인생을 한번 정리해보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고, 스스로 무척 힐링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내면에 꼭꼭 숨어 있던 또 다른 열정이 연극 무대, 영화 판에서 표출되었구요. 그 외도의 출발점에 이 책이 있습니다.” 화가가 사는 집, 화가의 생각의 집, 화가의 작품에 담긴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풀었다. 조금은 은둔자 같은 화가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룬 별난 에세이 〈화가의 집〉이다.

강일구는 궁중화가로 일한 조상의 피를 물려받아 어릴 때부터 남다른 소질을 보였다. 농고 졸업 후 작가가 되겠다고 트렁크 하나 끌고 무작정 상경을 한다. 무모한 듯, 열정적인 듯, 종로구 소격동 첫 월세방에서 출발한 그의 작가의 꿈은 삼청동을 거쳐 불광동에서 연희동까지 아내와 함께 그리는 삶으로 이어진다. ‘집’이 존재한다면 그걸로 족했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리고 꿈을 꾼다. 집은 숨을 쉬고 생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희동 마당 있는 주택에 터를 잡고 살아온 지 13년, 농고출신이지만 손 색깔만 농부. 그동안 저 세상으로 보낸 꽃나무와 텃밭 야채들이 숱하지만 오늘도 화가의 마이너스 손은 정원 가꾸고 반려견 산책시키느라 여행도 못 떠난다. 그래도 그 덕분에 운동을 열심히 할 수 있다고 스스로 위로하는 초긍정 마인드.

완벽한 지점보다는 불완전하면서도 결핍된 지점에서 창작선이 출발하고, 작품은 퍼즐 맞추듯 정답을 찾아간다. 복잡하게 채우는 방법보다는 여백을 살리면서도 결핍된 무언가를 뭉클하게 마음과 함께 담아 오늘도 그의 노란 물감은 온몸 안에서 출렁거린다. 책에는 화가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처음으로 밝히는 일본인 아내에 대한 이야기와 서로 ‘상어’와 ‘붕어’라 부르며 알콩달콩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사랑을 꽃피운 견우직녀 러브스토리도 담겨 있다. 한국어를 배우며 그림공부를 한 화가의 아내도 그림솜씨가 뛰어나 책에 몇 컷 실었다.
초등 1학년을 다니던 중 한 해 재수를 한 이력부터 시작, 학생 때는 앞에서 1등도 해보고 뒤에서도 1등을 해보았다. 군대는 공군방위 합격을 해놓고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병무과에 연락해 육군으로 입대했으며, 충남일보 공채시험 면접 후 국장의 점심 제안(합격의 의미)을 선배와 선약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 자발적 낙방을 했다. 지나고 보니 그 덕분에 나중에 한국일보와 중앙일보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진 것 같다고 그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화가의 집 그렇게 꿈만 같게도 신문사 일러스트레이터로 입사, 일구시대가 시작되면서 한 달에 한 번씩 월급이 쌓이는 기쁨을 맛보았다. 드디어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갤러리’를 운영하지만 월세의 압박으로 3개월 만에 접고 만다. 그러나 후회는 하지 않는다. 이것이 강일구식 화가의 삶이다. 조만간 세를 내는 갤러리가 아닌 자신의 소유건물에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방앗간 갤러리도 좋고 허름하면서도 향수 가득한 공간이라면 그 어떤 곳도 그에게 충분히 매력적일 것이므로. 집 나간 고양이를 찾는 애달픔을 담아 벽보를 붙이고, 한여름 개운하고 시원한 가족목욕도 재밌는 그림으로남길 수 있는 화가의 삶이 아주 정겹다.

그림의 소재, 소품들로는 아기자기한 걸 좋아한다. 그리움 가득한, 정에 사무쳐 추억이 아른거리는 향수의 소품들, 거기에 심플함과 소박함은 화가의 작품이 향하는 길이자 최종 도착지다. 어머니, 담벼락, 몽당연필, 크레용, 도시락, 검정고무신, 삼천리 자전거, 크라운, 삼각자, 교복, 칠판 등…. 엉뚱하면서도 항상 기발한 아이디어 보물창고 같은 털보화가, 그의 행운과 성공 이면에는 항상 노력하는 열정과 다양한 분야를 향한 호기심, 주저하지 않는 실행력이 자리하고 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반드시 하고 마는 그는 타고난 천재라기보다는 노력형 천재다. 연극에도 도전, 영화에도 도전, 앞으로도 하고 싶은 게 무궁무진한 그는 말한다. 몸은 (벌써?) 50대로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마음은 10대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순수한 10대로 살고 싶다고.

끊임없는 노력이 천재를 만든다는 말을 믿는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갖는 순간, 모지와 펜은 반드시 들고 다녀야 한다. 그래야 생각나는 그 순간 기록이 가능하다. 그리하여 ‘이동작업실’이란 말을 꺼낸 털보. 그렇게 돌아다니고 딴짓하며 그림은 언제 그리냐고들 묻지만, 그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돌아다니다 메모하고 아무 때나 막 그린다! 그렇게 틈틈이 그림 그리고, 미술관 나들이와 문화 산책을 하며, 또 자꾸자꾸 다른 분야로 외도하느라 화가 강일구는 오늘도 아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책 속 몇 줄-.
"우리 선조 중에는 궁중화가 출신이 많다. 나도 그 피와 유전자를 물려받아 선천적으로 그림에 끼가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큰 충격을 받았다. 혼자 계시는 시골어머니께 스케치북과 크레용을 보내드렸는데,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진 것이다. 크허억~~!!! 그림에‘ 그’ 자도 모르시고, 미술교육 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신 어머니 손끝에서 피카소 선이 나오다니…. 숨은 고수는 늘 주변에 있다는 말을 또 한번 실감했다. 83년 만에 처음 본 어머니의 그림에서…."
- '어머니의 그림' 중에서(24쪽)

강일구 지음
도서출판 더블:엔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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