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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희의 On Stage] '북간도·경성' 눈물 같은 윤동주의 별
최종수정 2019.03.14 11:19기사입력 2019.03.14 11:19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흥겨운 넘버 '경성경성'+토하듯 읊는 '별 헤는 밤' 인상적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윤동주는 27년 2개월을 살았다. 삶의 공간은 북간도, 경성, 일본이었다. 열아홉 살 때 평양 숭실중학교에 다니기도 했지만 6개월에 불과했다.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해 자퇴했기 때문이다. 20대 초반 4년은 경성에서 보냈다.


소설가 겸 역사학자 송우혜(72)는 '윤동주 평전(푸른역사·2004)'에서 경성 시절을 '윤동주의 삶에서 가장 자유롭고 풍요로웠던 시절'이라고 썼다. 문학적인 면에서 그랬다는 것이다. 윤동주는 고향 2년 후배인 장덕순(전 서울대 교수·윤동주의 광명중학 2년 후배)에게 연희전문을 이렇게 설명했다. "무궁화가 캠퍼스에 만발했고, 도처에 우리 국기의 상징인 태극 마크가 새겨져 있고, 일본말을 쓰지 않고, 강의도 우리말로 하는 '조선문학'이 있는 곳."


연희전문은 외국인 선교사가 설립해 일제가 함부로 할 수 없는 곳이었다. 윤동주가 1938년 4월 연희전문에 입학한 뒤 처음으로 쓴 시는 '새로운 길'이다. '나의 길 새로운 길/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는 극 초반에 압도적인 장면으로 윤동주의 청춘을 담아낸다. 화려하고 경쾌한 장면으로 관객을 들썩이게 한다. 연출을 맡은 권호성 서울예술단 예술감독(56)은 "윤동주의 삶이 워낙 비극적으로 끝나니까 2막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1막에서는 지나치게 비극성을 보이지 않고 청춘을 부각하려 노력했다"고 했다.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의 한 장면 [사진= 서울예술단 제공]


배우들은 충실한 고증을 통해 복원된 윤동주 시대의 종로, 을지로를 배경으로 '경성의 봄이 찾아오면 꽃이 피어나면 보아라, 느껴라, 즐겨라'라고 노래한다. 넘버 제목은 '경성경성'.

흥겨움 속에 고민과 문제의식도 담겼다. 경성경성의 가사가 이어진다. '경성, 어린 기생처럼 서투른 화장을 하는 곳, 순한 촌부처럼 힘겨운 인생을 사는 곳, 풀어야 할 청춘의 숙제, 지켜야 할 조선의 영혼'. 윤동주는 친구 송몽규, 강처중과 함께 경성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어두운 인생 같은 블랙커피 한 잔 손에 들고, 사라질 미래 같은 궐련 담배 하나는 입에 물고, 어디를 향해 우린 걸어가는가, 누구를 위해 우린 살아가는가'라고 고민한다.


극은 마지막에 윤동주가 '별 헤는 밤'을 읊는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혀 645번 수의를 입고 쓰러져있는 윤동주는 친구들이 시를 들려달라고 하자 '별 헤는 밤'을 읊는다. 처절하다. 2막 후반부의 이 장면은 1막 초반의 경성경성 무대와 대비되며 효과를 극대화한다. 연출가는 "서시와 함께 윤동주를 노래할 때 꼭 들려줘야 할 시가 별 헤는 밤인데 생각보다 길다. 긴 호흡 때문에 극의 흐름이 끊어질 수도 있고 2012년 초연 때 굉장히 풀기 어려웠다. 시를 줄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는데 줄이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초연 때부터 다섯 번째에 이른 지금까지 윤동주를 연기하는 배우 박영수가 고민을 덜어줬다. 그는 윤동주가 별 헤는 밤을 읊는 장면을 드라마처럼 재현한다. 토하듯 시를 읊기 시작해 한없이 아련한 목소리로 멀리 북간도에 있는 어머니를 부른다. 다시 한 번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라며 맺을 때 서정적인 단어들로 시를 쓴 윤동주가 왜 저항시인인지 진면목이 드러난다.


이 장면만으로도 이 극을 무대에서 확인해야 할 가치가 있다. 권호성은 "초연을 앞두고 연습할 때 배우들이 모두 울었던 장면"이라고 했다. 그는 "별 헤는 밤은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단어들로 시대적인 아픔을 반어적으로 풀어낸다. 윤동주의 응어리진 억울함과 아픔을 윤동주의 목소리로 시대를 고발하듯이 들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윤동주 달을 쏘다에는 윤동주의 시 여덟 편이 등장한다. '팔복', '간판 없는 거리', '십자가', '아우의 인상화', '서시', '참회록', '이별', '별 헤는 밤'이다. 이 중 팔복과 참회록은 각각 1부와 2부가 시작되는 부분에서 배경으로 활용돼 무대를 가득 채운다. 연출가는 "윤동주의 손글씨가 매우 예쁘다. 한글은 물론 한문도 예쁘게 썼다. 원본을 그대로만 보여줘도 미학적으로 훌륭했다"고 설명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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