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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의 라이브 리뷰]첫 내한공연 앞둔 메조 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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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의 라이브 리뷰]첫 내한공연 앞둔 메조 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 메조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가 지난해 11월 영국 런던의 바비컨 센터에서 열린 '바로크 아리아 쇼-전쟁과 평화' 무대에 올라 헨델과 퍼셀의 아리아를 열창하고 있다. (C) Barbi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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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의 라이브 리뷰]첫 내한공연 앞둔 메조 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 한정호 객원기자

1990년대 초반부터 지난 30 여 년간 메조소프라노는 체칠리아 바르톨리의 세상이었다.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함께 나란히 데카 레이블에서 발매한 신보들로 빌보드 클래식 차트를 수놓던 게 지난 시절 흔한 풍경이었다. 바르톨리는 오페라 전막과 독창회, 실내악단과의 협업을 막론하고 넓은 음역, 풍성한 볼륨, 희극인 뺨치는 연기력으로 세계를 제패했다. 마리아 칼라스를 직접 보지 못한 세대라면 바르톨리만큼 음반과 무대에서 이름값을 위력적으로 체감한 여성 성악가는 없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신예 메조소프라노를 육성할 위치에 놓인 음반사와 매니지먼트 수뇌들은 루키를 발견하면 ‘차별화’와 ‘제2의 바르톨리’ 만들기 사이에서 갈등했다. 구소련 태생의 예카테리나 세멘추크가 바르톨리가 좀처럼 부르지 않는 역할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차별화에 성공했고, 현 런던 심포니 예술 감독 사이먼 래틀의 부인 막달레나 코제나는 바로크 음악에 대한 감수성에서 바르톨리의 관점을 참고했다.

오랫동안 IMG 매니지먼트에서 성악가 관리를 맡은 사이먼 골드스톤은 1998년 플라시도 도밍고의 오디션 콩쿠르, ‘오페랄리아’에서 1969년 캔자스 출신의 조이스 디도나토를 처음 봤다. 그리고 경연 이튿날 디도나토에게 “당신은 나를 모르겠지만, 당신은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될 것이고, 내가 당신의 월드 와이드 매니저가 되고 싶다‘고 전화를 걸었다. 스스로를 그저 집근처의 켄터키나 오클라호마, 애리조나의 오페라 극장을 순회하는 지역 가수면 충분하다고 여긴 디도나토의 오디션 필름을 들고, 골드스톤은 유럽 전역의 오페라 극장의 캐스팅 감독을 만나러 다녔다.


열 두 번의 거절 끝에 겨우 허락을 받은 곳이 파리 오페라였다. 2002년 파리 오페라는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에 새 주역 로지나를 찾고 있었고, 이 곳의 성공이 알려지면서 디도나토는 미국 출신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유럽을 주름잡는 일급 성악가로 발돋움 했다. 이미 오랫동안 바르톨리의 로지나를 지켜본 메이저 극장에서 이제는 새로운 여인을 찾는 수요를 골드스톤은 정확히 읽고 있었다.


직접 극장 관계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야할 시절부터 디도나토는 자신의 계정을 ’양키디바‘(Yankee Diva)로 썼다. 독일과 영국 스태프들이 흔히 ’양키‘ ’아메리칸‘으로 신인을 낮춰 부르는 뉘앙스를, 본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기회이자 수단으로 선용했다. 이제는 조롱을 섞어 ’양키‘로 부르는 관계자는 없고, 르네 플레밍에 이어 미국을 대표하는 클래식 성악가로 변모했다. 2014년 자신의 고향팀 캔자스시티 로열즈가 29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다시 노리던 최종전, 로열즈 홈구장에서 미국 국가를 부른 이도 디도나토다.
프랑스 에라토 레이블에서 정기적으로 앨범을 내면서 유럽에서 인정받는 가수임을 증명했고, 스타일링만 바뀌면 중성적인 바지 역할을 담당해야하는 메조소프라노에 최적화된 캐릭터임을 앨범 재킷과 포토 세션으로 어필했다. 알려지지 않는 바로크 배역을 소화할 땐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적색 실크 의상으로 나갔고, 투어로 방문한 도시에선 시간만 되면 성악도를 위한 마스터클래스를 열어, 어릴 적 꿈인 교사로서의 자질을 나눴다.


2010년대 들어 골드스톤과 함께 IMG를 나와 인터무지카로 이적하고 이제는 서로 갈 길을 달리하면서 디도나토는 상품으로 규격화된 가수가 아닌, 본연의 예술적 욕구와 인문학적 소양을 소신대로 알리는 아티스트로 거듭났다. 오페라 제작에서 남성 지휘자가 범하기 쉬운 권력 남용을 경고하고, ‘미투’ 운동의 지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한다. 직접 대화를 나누면 선량한 시민으로서의 양심이 어투에 그대로 묻어난다.


[한정호의 라이브 리뷰]첫 내한공연 앞둔 메조 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 메조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 (C) ERATO

지휘자와 함께 동반 성장한 수많은 ‘성공한 가수’들과 달리, 디도나토는 로열 오페라 음악감독 안토니오 파파노를 제외하면 후원-수혜 관계로 특정할 지휘자도 마땅치 않다. 극장의 행정 감독, 캐스팅 책임자의 인정과 현지 관객의 성원이 오늘날의 디도나토를 만들었다. 2019년 세계 오페라의 중심, 뉴욕 메트가 자신 있게 내놓는 ‘넘버 원’ 메조소프라노는 조이스 디도나토다.


디도나토를 보고 있으면 훌륭한 가수의 능력이 연기자의 미덕과 상통함을 확인한다. 호흡과 다이내믹, 발성과 전달에서 디도나토는 ‘21세기 보컬 교과서’와 같은 정석을 보인다. 저음역에서 음울함을 담았다가, 고음부에서 콜로라투라로 시원하게 대비시키는 모차르트, 로시니 오페라의 해석은 음반만 들어도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2009년 로열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공연 부상으로 당시 휠체어를 타고 부른 퍼포먼스도, 실은 시원시원한 발성이 부족한 대신, 앉은 자세에서 벽에 표창을 날리는 연기로 분노를 표출한 아이러니가 관객의 뜨거운 갈채를 얻었다. 디도나토의 표정은 실제 공연에서 놓쳐선 안 된다.


기악, 관현악과 달리 성악은 클래식에서 치열한 쇼비즈니스의 논리가 여전히 통하는 세계다. 목소리에는 전성기가 있기 때문이다. 스타가 등장하면 베테랑은 퇴진하고 신예는 다음 기회를 엿보기 마련이다. 이제 쉰으로 접어든 디도나토는 현명한 레퍼토리 관리가 더욱 절실하다. 디도나토와 결별한 매니저 골드스톤은 20년 전에 그랬듯, 1984년생 러시아 소프라노 베네라 지마디에바를 열심히 알리고 있다.


오는 21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시대 악기 앙상블 일 포도 모로 협연으로 갖는 바로크 아리아 퍼레이드 ‘전쟁과 평화’가 디도나토의 첫 내한 공연이다. 헨델과 퍼셀의 주요 곡들이 ‘전쟁’ ‘평화’를 주제로 나뉘어졌고 헨델 오페라 ‘리날도’ 중 유명한 아리아 ‘울게 하소서’도 포함됐다.


한정호 객원기자ㆍ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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