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tage] 日강점기 조선인 노동자, 그들의 삶은?

연극 '호신술'…자본가·노동자 갈등 해학적으로 풀어

최종수정 2018.12.06 16:23기사입력 2018.12.06 16:23
연극 '호신술'의 한 장면 [사진= 국립극단 제공]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호신술'은 국립극단이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 열 번째로 선택한 작품이다. 연출가 윤한솔은 '무협 코미디'라고 설명한다. 공장을 여러 개 운영하는 자본가 김상룡과 그의 가족들이 노동자 파업에 대비해 호신술을 배우는 과정을 담았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자본가와 노동자 계층의 갈등이라는 주제를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낸다. 윤한솔은 "얼핏 우스꽝스럽고 어색하게 보이는 연극적 장치들로 작품의 해학적인 요소를 최대한 강조했다"고 했다.

1930년대 어느 한가한 토요일 오후. 김상룡은 온 가족을 한데 불러 모은다. 그는 가족들에게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폭력사태가 일어날 수 있으니 거기 대비해 호신술을 익혀야 한다고 가족들에게 말한다. 70대의 아버지부터 소학생인 딸까지 김상룡의 가족들이 온갖 난리법석 속에서 실용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호신술을 진지하게 배워나가는 과정이 관객들로 하여금 웃음을 터트리게 만든다. 이 와중에 공장의 노동자들이 김상룡의 집으로 들이닥쳐 일대 소동이 벌어진다.

희곡을 쓴 송영은 카프(KAPFㆍ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서 활동한 작가다. 1920년대 일본에서 노동자 생활을 경험한 뒤 귀국해 노동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작품들을 연이어 발표했다. 특히 1931년에 발표한 호신술은 아이러니한 설정과 통렬한 풍자를 통해 부패한 자본가들의 모습을 꼬집어 시대적 메시지와 연극적 재미를 모두 놓치지 않는 한국 근대 문학사의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작품이 발표된 1930년대 전반기는 공황으로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던 때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해고하거나 임금을 삭감해 경제적 손실을 메우려 들었고 그 과정에서 노동 보호법이 적용되지 않는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의 절반도 되지 않는 임금을 받으며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았다. 관객들은 호신술을 통해 1930년대 세계공황 당시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대립을 간접적으로 확인하며 자본가들의 부패한 모습과 조선인들의 척박한 노동환경을 짐작할 수 있다.
국립극단은 호신술이 노동자들의 결핍과 애환을 담아낸 작품이라며 '주 52시간 근무제'가 새롭게 도입되면서 노동 환경 개선이라는 이슈가 전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오늘날에 또 다른 의미를 전달해줄 것이라고 설명한다.

재기발랄한 상상력을 주목받아온 윤한솔은 작품의 풍자와 해학을 부각하는 방법으로 무술과 와이어 액션을 선택했다. 등장인물들은 단순한 업어치기 한 판에 반대편으로 나가떨어지는가 하면, 와이어를 타고 허공을 가로지르기도 한다. 노동의 가치에 대한 작품의 메시지 역시 재치 있는 상상력을 활용해 전달된다. 공연 중에 넘어진 세트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실제 극장의 스태프들이 무대 위에 등장하고, 하인 역을 맡은 배우들이 조명 기기를 다루는 등 실제로 극장 안에서 벌어지는 노동의 장면이 극의 일부로 그려진다. 윤한솔은 극단 그린피그의 상임연출이며 제5회 대한민국연극대상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연극계에서 무술감독 및 배우, 연출가 등으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국호는 이번 작품에 무술감독으로 참여해 연극 '이기동 체육관', '강철왕' 등에서 쌓은 노하우를 배우들과 나누었다. 자본가 계층을 상징하는 공장주 가족은 배우 신재환, 박가령 등이 연기하며 대척점에 선 노동자 계층에는 배우 이영석 등이 캐스팅됐다.

2014년부터 이어져오고 있는 국립극단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는 한국 연극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근현대 희곡을 현대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기획 시리즈다. 그동안 <국물 있사옵니다>, <산허구리>, <가족> 등 현대 관객들이 접하기 어려운 우리 희곡을 무대화했다. 호신술은 5~24일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된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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