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벽화에는 혁신이 살아 숨쉰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세계

최종수정 2018.07.12 13:18기사입력 2018.07.12 13:18
각저총 널방의 왼쪽 벽화[사진=한성백제박물관 제공]

국립문화재연구소 등 공동 심포지엄 "현무도·사냥도 등 빼어난 예술성 자랑"
단군신화 연상 각저총 벽화 씨름 장면…고구려인과 서역계 인물 구체적 묘사, 일상 장면 넘어 장의 표현
장천1호분 연꽃 기존관념 넘는 재해석, 실물 크기 사람 등 개성적·파격적 묘사…고대적 사고 탈출, 인격 동등성의 표출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커다란 자색나무 가지 사이에 검은 새들이 앉아 있다. 나무 밑동에는 곰과 호랑이가 있다. 단군신화에서 인간이 되기를 빈다. 세상을 다스리는 환웅에게서 쑥 한 심지와 마늘 스무 개를 받는다.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사람이 될 것이다." 곰과 호랑이는 하늘과 소통할 수 있었다. 지상에서 생명의 뜻과 소망을 전하는 존재다. 이들이 기대는 나무는 선 채로 흘러가는 1000년의 강물과 같다. 하늘과 땅의 기운을 소통하게 하는 우주목(宇宙木)이다. 검은 새들은 곰과 호랑이의 꿈을 하늘에 전하고자 귀를 기울이고 있을지 모른다. 각저총 널방의 왼쪽 벽화에 펼쳐진 풍경이다. 나뭇가지 위에 새를 묘사하고, 나무줄기 곁에 여우와 같은 짐승을 배치한 화면은 중국 한대의 화상(畵像)과 위ㆍ진대 고분벽화에서도 발견된다. 대부분 특정한 신화나 전설을 바탕으로 그린 것들이다. 그런데 각저총 벽화에서 나뭇가지 위의 새는 각기 다른 자세로 앉아 있다. 사람처럼 나무에 기대 엉거주춤 선 듯한 곰과 호랑이의 얼굴에도 표정이 있다. 씨름 등 화면 속 다른 제재들과 어우러져 한 편의 풍속화를 형성한다. 고구려에서 5세기 전반에 이룬 독자적인 화면 구성이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대중에게 친숙하다. 2004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한국 문화의 원형을 담은 문화유산이자 역사적 상상력, 문화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러나 대부분은 강서대묘의 현무도나 무용총의 사냥도 정도만 기억한다. 고구려의 역사적 경험이나 한국 고대문화의 빼어난 수준을 담아낸 작품이라는 사실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북한과 중국에 있다 보니 우리나라 학계의 발굴조사나 최신 연구 성과의 공유, 접근성 등에 제한이 있다. 그런 점에서 지난 6일 국립문화재연구소와 한성백제박물관이 공동 개최한 심포지엄 '고구려 고분벽화, 남북의 소중한 세계문화유산'은 큰 주목을 끌었다. 최근 북한과 중국에서 이뤄진 고분벽화 발굴조사와 그 내용, 벽화의 보존문제, 다양한 활용 방안 등을 소개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가치와 의미를 발표한 전호태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고구려 고분벽화는 당시 생활문화사의 입체적 이해는 물론 원형을 추적하게 한다. 특히 초기 벽화들은 중심 주제가 생활풍속이기 때문에 고구려인의 의식주 및 풍속을 비교적 상세히 들여다보게 해준다"고 했다.

장천1호무덤 앞방 남벽 들놀이벽화[사진=한성백제박물관 제공]
단군신화를 연상하게 하는 각저총 벽화에서는 씨름 장면이 꽤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다. 씨름에 열중하는 두 역사(力士) 가운데 한 사람은 보통의 고구려인.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눈이 크고 코가 높은 서역계 인물이다. 이러한 배치는 안악3호분 앞방 남벽 서쪽 위편의 수박희(택견) 장면과 무용총의 널방 서북벽 천장고임에 그려진 수박희 모습에서도 나타난다. 유래는 한대의 장의미술에서 찾을 수 있다. 전호태 교수는 저서 '고구려 고분벽화의 세계'에서 "전통적으로 동아시아에서 서역계 인물이 힘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점, 내륙아시아의 제 민족에게 장례 때에 씨름을 행하는 풍습이 있다는 민족지적 자료에 관한 보고, '일본서기' 중의 씨름기사가 장의행사의 하나로 이해되고 있는 점 등을 함께 고려하면 고구려 고분벽화에 표현된 씨름, 수박희 등은 일상생활 장면의 표현이라는 측면 외에도 장의행사의 일환으로 행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 배경으로 거대한 나무의 검은 새들과 밑동의 의인화된 호랑이, 곰 등을 함께 감상함으로써 실제 행해졌던 놀이로서의 씨름뿐 아니라 장의적 요소, 종교신앙적 기능까지 한꺼번에 읽을 수 있는 셈이다.

장천1호무덤 불공 앞방 동쪽 천장[사진=한성백제박물관 제공]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는 예술 제재의 개성적 재해석과 재구성 과정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불교적 제재인 연꽃이다. 정토(淨土) 탄생의 그릇이라는 측면이 부각되면서 벽화의 주제로까지 자리를 잡았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이다. 특히 장천1호분 앞방 천장고임에 있는 벽화 '남녀쌍인 연화화생'은 고구려 나름의 방식으로 그려진 외래종교 관념의 구체적 표현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사로잡는다. 불교에서 연화화생이란 업과 인연의 매듭을 풀지 못하고 전생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중생이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 불교의 이상세계인 정토에서 태어나는 방식이다. 완전히 새로우며 자유로운 삶이 열리는 상태를 뜻한다. 하늘연꽃이라는 이상적인 매체를 통한 정토에서의 새 삶이 모든 불교도들의 꿈이었기에 인도로부터 동아시아로의 불교 전파 경로에 자리를 잡은 불교 유적들에서 곧잘 발견된다. 그런데 남녀쌍인 연화화생에서 연꽃 안에는 어린 남녀가 있다. 여성의 깨달음과 정토왕생에 회의적이던 고대 불교의 관념세계와 거리가 느껴질 뿐 아니라, 모든 인연에서 자유로워야 하는 정토 삶의 원리에 위배되는 표현이다. 이혼을 금기시하고 부부합장의 전통을 강하게 유지하던 고구려적 사고방식과 관습이 불교 특유의 논리와 관념을 넘어선 것이다. 현실에서의 부부 인연을 죽은 뒤에도 유지하겠다는 의지와 소망이 그만큼 강했던 것은 아닐까.

장천1호무덤 앞방 남벽 들놀이벽화[사진=한성백제박물관 제공]

파격적인 표현은 사회구성원들의 묘사에서도 나타난다. 장천1호분 벽화에서 인물들은 실물 크기로 그려졌다. 특히 널방 안벽 좌우에 있는 문지기 두 사람은 얼굴뿐 아니라 자세에서도 개성을 드러낸다. 북벽의 인물은 군살이 없는 둥근 얼굴에 부드러운 눈매를 가졌다. 두 손을 가슴 앞에서 모아 쥔 공손한 자세 때문에 문인이 떠오른다. 남벽의 인물은 길고 각진 얼굴에서 날카로운 눈매가 돋보인다. 두 손을 배 앞에 대고 상대를 위압하는 듯한 자세를 취해 무인적 기질이 전해진다. 이런 개성 표현은 초기에 거의 나타나지 않다가 각저총과 무용총 벽화에서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다. 인물을 실물 크기로 묘사하는 변화를 동반하면서 한층 구체화된 셈이다. 이는 사회구성원의 개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현상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각각의 개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신분과 지위 등에 따라 인간을 차별하고, 이를 개별 인격과 연관시켜 이해하던 고대적 사고와 배치된다. 사회구성원의 개성은 인격의 본질적인 동등성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구려 고분벽화는 대상에 부여한 비중에 따라 크기를 조절하던 위계적 표현 방식마저 장천1호분 벽화에 이르러 그 적용 정도를 현저히 누그러뜨렸다. 널방 전체가 연꽃 문으로 장식된 벽화에 무덤 주인의 초상을 생략할 정도다. 사람이 죽으면 조상신의 일원이 된다는 기존의 인식이 윤회적 전생이나 정토왕생을 상정하는 불교적 내세관으로 대체돼 나타난 현상은 아닐까. 이런 새로운 경향이야말로 고분벽화라는 장의미술의 고구려적인 소화의 결과이자 양식의 성립이기 때문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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