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외곽 지층으로 만나는 오래된 미래

해움미술관 '외곽의 지층들'

최종수정 2018.06.09 12:35기사입력 2018.06.09 12:35
정상곤 '창덕궁 회화나무'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판화는 틈의 흔적을 활용한 예술이다. 표현의 층위에 새겨지거나 남겨진 이미지로서 도시풍경의 흔적 또는 층의 개념을 확장한다. 판화에서 서로 다른 층의 작용하는 힘이 다르듯 도시도 장소와 시대에 따라 다른 과거의 지층을 가리킨다. 장소성과 역사성이다. 자본주의 도시화로 층들이 균질하게 재편되면서 이런 흔적은 점점 사라진다. 도시화를 빗겨간 외곽의 지층에서나 겨우 엿볼 수 있다.

해움미술관이 지난 8일 시작한 전시 '외곽의 지층들'은 판화의 다양한 방법론적 시도를 통해 도시의 오래된 미래를 조명한다. 켜켜이 쌓인 도시 외곽의 지층들을 제각각의 방식으로 판에 새기고 기록한 작가들의 작품을 대거 소개한다. 이상국, 김홍식, 배남경, 정상곤, 차민영 등이다. 전통 목판화는 물론 판화의 다양한 방법론적 시도를 통해 도시 풍경과 판화 사이의 미적 가능성을 제기하고 변증법적 사유를 제시한다.

이상국 '산동네'
이상국은 정치적 불안과 급격한 도시개발 속에서 질긴 삶의 표현들을 포착해 산동네 풍경화에 담아낸다. 다닥다닥 모인 변두리의 삶이 견고한 형상성만 남긴 채로 산의 모양을 이룬다. 배남경은 일상에서 배회하는 도시인의 삶에 주목한다. 평면성이 강한 목판화에 한국 고유의 질감을 가진 한지, 한국화 물감, 먹을 사용한다. 흑백사진 같은 이미지들의 스며듦과 번짐 효과가 수차례 인쇄를 통해 회화적 깊이를 품는다.

배남경 '베란다Ⅱ'

김홍식은 카메라로 기록된 도시 이미지를 스테인리스스틸 판에 안착해 금속을 부식시킨다. 이를 다시 종이에 인쇄하는데, 이때 부식되고 마모돼 가는 물질성이 사라진 공간에서 기억 속에 현존하는 도시 이미지로 나타난다. 관조적 시선으로 도시를 관찰하며 남긴 흔적 읽기의 형상이다. 정상곤은 집단적 기억을 상기시키는 기념물에 천착한다. 역사문화적 맥락으로 읽혀진 기념물의 흔적을 지우며 '결핍된 풍경'을 이끌어낸다. 이는 기념물이 가진 역사적 사건과 무관한 비장소적 풍경 속에서 소멸된다. 감각적 실재만 남긴 채 개인적 일상과 만나 혼재된다. 차민영은 자본주의 체계를 이루는 구성요소들을 가방 속 미니어처로 나타낸다. 이동하는 가방은 표류하는 도시인의 삶이자 자본주의 흐름의 표상이지만, 자유로운 삶을 위한 탈주와 장소에 대한 애정이기도 하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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