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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출판'이 이 시대 미술을 바라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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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출판'이 이 시대 미술을 바라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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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지희 수습기자] ‘나무가 되는 법’, ‘문이 되는 법’ 김범 작가가 1996년 출간한 ‘변신술’에는 이렇듯 각 페이지마다 무언가로 변신하는 방법에 대한 작가의 비법이 담겨있다. 내용도 신선하지만 더욱 흥미로운 점은 책이 구성된 방식이다. 책장을 앞에서부터 넘기면 국어와 영어로 진행되지만 뒤에서부터 읽으면 일본어와 중국어 책이 된다. 각 언어는 점차 섞이다 결국 가운데 지점에서 마주치게 된다.

서울 종로의 인사문화공간에서 다음 달 5일까지 열리는 ‘픽션-툴: 아티스트 퍼블리싱과 능동적 아카이브’ 전은 책의 물성에 참신하게 접근한 김범 작가의 변신술에서 착안해 기획됐다. 전시를 기획한 이한범 큐레이터는 “이 책은 김범 작가의 다른 전반적인 미술 작업과 비슷한 전략을 사용했다. 그런데도 책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다른 이들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예술가의 출판’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3개층으로 이뤄진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작품은 단연 ‘책’이다. 허구적 세계를 구축하는 도구로서의 출판물을 경유해 동시대 미술을 바라보려는 의도다.

전시의 의미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공간은 지하 1층이다. 도서관을 연상시키는 지하층 전시장은 좌측의 ‘책을 통해 정보 등을 보여주는 작업’과 우측의 ‘책을 경험하는 것 자체로 종결되는 작업’ 등 두 가지 카테고리로 구성돼 있다. 좌측 카테고리에서 출판은 완전한 허구를 구성하기보다는 일정한 현실에 대한 매개적 역할을 수행한다. 세 개의 책자가 만들어지고 그와 연동되는 영상, 회화 등이 함께 전시되는 임영주 작가의 ‘돌과 요정’ 프로젝트가 단적인 사례다.


'예술가의 출판'이 이 시대 미술을 바라보는 방법



2층 전시장은 콜렉티브, 잡지, 퍼블리셔 등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돼 있다. 콜렉티브는 2000년대 이후 활동해오며 주로 도시사회와 정치 문제에 반응하는 미술 집단을 의미한다. 콜렉티브 섹션은 이들이 사회정치적 문제에 개입하는 과정에서 나온 시각 인쇄물이 전시돼 있다. 이 큐레이터는 “현실을 재현하는 전략으로서 출판이 얼마나 중요한 도구인지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덧붙였다.


아예 출판물을 만든 콜렉티브도 있다. 두 번째 섹션은 출판이라는 행위 그 자체를 예술적 실천의 한 가능성으로 여긴 결과물을 모아 구성했다. 퍼블리셔 섹션에서는 ‘AC퍼블리싱’의 작업을 만나볼 수 있다. 직접 인쇄기까지 구입해 출판을 고민했던 이들은 콘텐츠보다 책이 만들어지는 제작의 문제에 특히 몰입했다.


마지막으로 잡지 섹션에는 인사미술공간에서 10호까지 출간된 시각예술비평지 ‘볼(BOL)’이 소개된다. 2000년대 초 기관이나 단체를 중심으로 작가들이 모여 잡지를 만들고자 했던 모습을 보여주는 ‘포럼A’도 진열돼 있다. 잡지는 이를 정기적으로 만드는 네트워크와 받아보는 네트워크를 일시적 공동체로 만드는 매체라는 설명이다.


1층 전시장에 설치된 큰 TV 화면은 이번 전시가 프로젝트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화면에는 예술가들이 만든 출판물의 사진과 정보들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다. 이 큐레이터는 “이번 프로젝트는 전시 조직에 더해 아카이브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며 “미술에서의 출판이 도록뿐 아니라 다양한 방식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약 250개 리서치 결과물 가운데 현재까지 80개 가량이 업데이트된 상태다. 아카이브 목록이 완성되면 앞으로 ‘2000년대의 웹 작업’ 등 보다 구체적인 주제를 설정해 전시를 구성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시각예술분야에 참여한 큐레이터 가운데 전시지원 대상자로 최종 선정된 이한범 큐레이터가 기획했다.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2016년부터 차세대예술가육성사업을 확대 개편하며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번 전시는 아카데미의 시각예술분야 성과보고전이다.




김지희 수습기자 way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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