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자크기 설정

라이프
[한국의 골목길]슬픈 역사 간직한 서소문
최종수정 2019.02.08 11:00기사입력 2019.02.08 11:00

철길고가 위로는 최신 빌딩숲, 아래로는 감춰져 있는 옛것

소의문·돈의문은 어디가고 서소문·서대문만 남았네

지금도 서울 시내 한복판에 철도건널목이 있습니다. 도심이라 기차는 느릿느릿 지나갑니다. 심지어 화물차와 여객차가 연달아 지나가 출퇴근 시간에 신호에 한번 걸리면 지각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사진=김종화 기자]


[그림=오성수 화백]


[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동동~ 동대문을 열어라~ 남남~ 남대문을 열어라~ 열두시가 되면은 문을 닫는다." 이 동요 기억하시지요? 서대문과 북대문을 빼고 동대문과 남대문을 노래로 불렀던 것은 서대문은 사라졌고, 북대문은 즐겨 다니던 문이 아니어서 일까요?


'서소문(西小門)'은 슬픈 곳입니다. 서소문이란 명칭이 예쁘다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던데 그 말이 더 가슴 아팠습니다. '소의문(昭義門)'이란 원래 이름이 더 예뻤습니다. 1914년 일제강점기 때 도로와 경의선 철도를 놓는다는 명분으로 근처의 성곽과 함께 철거돼 이름만 남은 곳입니다. 이름마저 일제에 의해 임의로 바뀌게 되지요.


◆예쁜 이름과 달리 슬픈 소의문 = 조선시대에 쌓아 올렸던 한양도성은 수도 한양과 지방을 가르는 경계로, 왕실을 보호하는 든든한 성곽의 역할을 충실히 했습니다. 외세의 침략을 방어하는 요새로 활용되지는 못했지만 나름 견고한 성곽이었지요. 한양도성에는 4개의 대문(大門)과 4개의 소문(小門)이 있었는데 흥인지문(興仁之門)과 돈의문(敦義門), 숭례문(崇禮門), 숙정문(肅靖門)이 4대문이었고, 혜화문(惠化門)과 소의문(昭義門), 광희문(光熙門)과 창의문(彰義門)은 4소문이었습니다.


한양도성의 8개 문 가운데 6개를 다시 세웠지만 돈의문과 소의문은 터만 남았습니다. 그 자리에 도로와 철도, 대형건물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제에 의해 멋진 옛이름들은 동서남북 대문과 소문으로 이름이 격하된 것도 모자라 서쪽의 대문과 소문만 잊혀진 것이지요.

서소문밖 처형장 옆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금 서소문역사공원이 조성 중입니다. [사진=강진형 기자]


소의문은 1396년(태조 5년) 다른 성문과 함께 지을 때 소덕문(昭德門)이었지만 1744년(영조 20년) 소의문으로 이름이 바뀝니다. 소의(昭義)란 의로움을 밝힌다는 멋진 뜻을 가졌지만 조선시대 도성에서 사람이 죽으면 소의문과 광희문으로만 관이나 상여가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 때문일까요. 서소문 밖 네거리는 조선시대의 대표적 처형장 중 한 곳이었습니다. 특히 1800년대 중반 이후 천주교 박해가 극심하던 시절에는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지금 '서소문 밖 순교자 현양탑'이 있는 곳에서 처형된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입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곳을 참배해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기도 했습니다.


금융기관·대기업 등 즐비 명실공히 서울 중심가

한편에는 처형장의 역사 순교자 현양탑 있어


◆철도건널목과 옛 것 = 서소문은 서울의 중심가입니다. 유명 언론사들과 금융기관과 공공기관, 대기업의 높다란 사옥들이 큰길가에 줄줄이 늘어서 있습니다. 큰길을 벗어나 후줄근한 골목길로 접어들어 다닥다닥 이어진 주택들 사이로 미로찾기를 해야 하지요.

유명 언론사와 금융 기관, 공공 기관, 대기업의 높다란 사옥들이 줄줄이 늘어선 큰길을 벗어나면 후줄근한 서소문의 뒷골목이 나옵니다. 겉보기와 달리 주택가 미로 속에는 알짜 맛집들이 꼭꼭 숨어 있습니다. [사진= 김종화 기자]


그러다보면 어느 새 즐비한 빌딩숲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과거와 현재, 낡은 것과 새 것이 함께 어우러진 곳입니다. 서울 도심에 몇 개 남지 않은 고가도로인 서소문 고가도로는 그 경계입니다. 고가 아래로는 낡은 것과 옛 것의 상처가 감춰져 있고, 위로는 새 것과 현재의 자부심이 드러납니다.


고가 아래에는 지방의 소도시에서도 보기 힘든 철도건널목이 있습니다. 신호에 한 번 걸리면 느릿느릿 지나가는 기차를 쳐다 보면서 '때엥때엥~' 쉬지 않고 울리는 신호를 한참이나 들어야 합니다. 빨리빨리에 익숙해 신호 바뀐지 5초가 되기도 전에 뒷차가 빵빵거리는 것이 당연한 서울살이에서 10분이 다 되도록 기나긴 열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도 색다른 경험입니다.


철길 건너 서울역 쪽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했던 순교자 현양탑이 있고, 서소문 역사공원이 한창 조성되고 있습니다. 거기서 중림시장 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언덕 위에 약현성당이 있습니다. 약현성당은 조선 최초의 서양식 성당입니다. 천주교 박해 때 가장 많은 순교자를 낸 서소문 밖 처형장을 굽어보는 약현 언덕 위에 성당이 세워진 것도 인상적입니다.

서울 중구 서소문역사공원 내 천주교 순교성지탑.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녀간 곳입니다. [사진=강진형 기자]


성당에서 내려오면 약현성당의 신자들을 위해 지은 성요셉아파트가 있는데 지금도 성직자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1971년 준공했다고 하니 길 건너 서소문아파트와 동갑내기입니다. 성요셉아파트가 60가구 규모이니 덩치는 서소문아파트가 2배 정도 큰 편입니다. 철도건널목을 사이에 두고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두 아파트가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장수를 뽐내고 있는 것이지요.


소의문에서 서소문으로 이름도 일제에 의해 바뀌어

서울의 최고 아파트 두 곳과 숨은 골목길 맛집도 찾을 수 있어


◆낡은 것과 새 것의 어울림 = 철길을 건너 독립문 쪽으로 방향을 틀면 지은지 48년된 서소문아파트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은색으로 반짝거리는 경찰청과 딱붙어 있어 유달리 낡아 보입니다. 서소문아파트는 8동까지 있지만 실제로는 건물 전체가 쭉 이어진 한 동짜리 건물입니다. 1971년 주상복합 아파트로 지을 때 무악재에서 시작해 서소문과 서울역, 원효로를 거쳐 용산 하구로 흘러가는 만조천을 덮고 그 위에 지었기 때문에 건물이 물길을 따라 곡선 형태로 굽었습니다.


1990년대 들어 하천부지 위에는 더 이상 건축물 세울 수 없도록 건축법 개정돼 재개발·재건축은 이 아파트와 인연이 없습니다. 철거되는 그날까지 꿋꿋하게 버티는 것만이 희망인 낡은 건물이지만 인기는 절정입니다. 4층이 없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7층짜리 건물로 130가구 12평(39.7㎡)짜리 적은 규모의 아파트인데 의외로 젊은층으로부터 인기가 높습니다.


서소문아파트 전문 부동산중개업소인 D부동산 관계자는 "재건축이 안되는 낡은 아파트지만 투룸 구조로 생활하기 편하게 돼 있다"면서 "주변에 대기업과 공공기관 등 회사가 많기도 하고, 서대문역도 코앞이라 출퇴근이 편해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전세나 월세는 내놓기 무섭게 나간다"고 말했습니다.


고가차도가 연결된 동서방향에는 초고층 빌딩들의 숲이 이어집니다. 동으로는 광화문, 서로는 마포와 통하지요. 큰길에는 자태를 뽐내는 인텔리전스 빌딩들이, 미로처럼 연결된 골목안 주택에는 내공있는 맛집들이 여럿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직장인들은 밥 때면 먹이를 찾아 서소문 뒷골목을 어슬렁거립니다.


◆사라진 새문과 강제로 지어준 이름 = 숭례문(남대문)과 흥인지문(동대문), 숙정문(북대문)은 어디에 있는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돈의문(서대문)과 소의문(서소문)은 정확한 위치가 어디였을까요. 소의문터는 호암미술관(코웨이빌딩) 옆 주차장 입구에 표지석만 남아 있습니다. 돈의문터는 강북삼성병원로 들어가기 직전 큰 도로변에 새로 조성돼 있습니다.

4대문 중 한 곳인 서대문의 원래 이름은 돈의문입니다. 서소문도 소의문이란 예쁜 이름이었지만 일제에 의해 이름이 바뀝니다. [사진=김종화 기자]


돈의문은 1396년에 최초로 다른 대문들과 함께 세워지지만 1422년(세종 4년) 새로 만듭니다. 신문(新門)로, 새문안길이라는 명칭이 유래한 것은 이 때부터 입니다. 새문이 생긴 곳이라는 뜻이었지요. 1915년 3월 일제가 도로를 확장하기 위해 철거하는 바람에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굳이 서대문이라는 동네이름을 사용하도록 한 것이지요.


우리 역사를 생각하면 가슴 아프지 않은 때가 있었겠습니까. 서소문이란 동네이름은 예쁘지 않습니다. 서소문은 소의문으로, 서대문은 돈의문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요. 그나마 신문로, 새문안길이라는 이름이 남은 것에 감사해야 하나요. 서소문 뒷골목을 걸으면서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되새겨 봅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스크랩 댓글0

SNS에서 반응 좋은 뉴스

프리미엄 인기정보

믿고 보는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