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준의 여행만리]먹빛 뒤에 가려진 바닷길, 슬프도록 아름답다

강릉 바우길 8코스-바다와 산을 동시에 즐기는 낭만여정

최종수정 2018.11.07 11:00기사입력 2018.11.07 11:00
강릉 바우길 8구간은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걷는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신발이 바다에 빠질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바람부는 보리밭의 이랑을 바라보듯 산 위에서 바다 물결을 바라보는 풍경은 장관이다.






괘방산을 걷고 있는 산행객들

임해자연휴양림에서 활공장전망대를 오르는 여행객





바우길 8코스에서 바라본 동해의 일출

동해바다를 따라 강릉에서 정동진으로 향하는 바다열차길이 놓여있다

강릉통일공원에 전시된 퇴역함정

바다열차가 정동진역으로 향하고 있다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강릉 바우길은 백두대간에서 주문진과 경포, 정동진해변, 옥계까지 산맥과 바다를 아우르며 걷는 총 400km의 길입니다.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과 함께 전국 3대 트레킹 코스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구간은 하늘을 찌를 듯한 금강소나무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해안을 따라 길게 늘어선 소나무 숲길이나 대관령 깊은 계곡, 어디에서도 그윽한 솔향기가 온 몸을 감싸주는 길입니다. 그 중에서도 이번 여정을 함께할 바우길 8구간은 푸른 동해 바다와 숲, 가을 하늘을 옆에 두고 걸을 수 있는 곳입니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신발이 바다에 빠질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바람부는 보리밭의 이랑을 바라보듯 산 위에서 바다의 물결 이랑을 바라보며 걷습니다. 그래서 이 길의 별칭도 '산 우(위)에 바닷길'입니다. 산과 바다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것이지요. 산정에서 맛보는 장엄한 일출은 물론이고 먹빛 바다 한 쪽을 온통 하얗게 물들이며 떠오른 월출의 장관은 가슴이 먹먹해지도록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핏빛 아픔도 간직한 길이기도 합니다. 1996년 9월 잠수정을 타고 침투한 북한 무장공비 26명이 도주한 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안보체험등산로'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습니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바다의 정경이 있는 그곳으로 갑니다.

강원도 속살을 엿볼 수 있는 소박하고 작은 안인항이 바우길 8구간의 들머리다. 차량은 안인삼거리 무료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산행거리는 안인에서 출발, 활공장, 삼우봉, 정동진역까지 9.4㎞다. 조금 거리가 길지만 중간에 임해자연휴양림이나 등명낙가사 방향으로 하산도 가능해 체력에 맞게 걸을 수 있다.

바다를 뒤로 하고 나무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이내 능선이다. 울창한 소나무 숲길은 한 두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만큼 좁다랗다. 숲길을 빠져 나오면 곧 왼쪽으로 탁 트인 동해 바다와 파란 하늘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파도는 바위에 부닥치며 철써덕 소리를 낸다. 바다 바로 옆에서 출발할 때 보다 산등성이를 걸을 때 동해의 파도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바다를 옆으로 두고 1시간 쯤 걷다 보면 넓은 나무데크 쉼터와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나온다. 강릉시에서 시산제나 풍년기원제 등을 여는 장소다. 주변을 둘러보면 왼쪽엔 쪽빛 동해바다와 괘방산(掛膀山) 정상이 오른쪽엔 백두대간 주봉들이 장쾌하게 뻗어 있다. 멀리 설악산 대청봉을 비롯해 오대산, 대관령 선자령, 강릉시내, 경포대 등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불어오는 늦가을 바람 끝에 차가움이 실려 있다. 그럼에도 백두대간과 동해바다에서 오는 바람이 싫지만은 않다. 철썩 철썩 파도가 토해내는 소리도 심장을 요동치게 한다.

괘방산은 옛날 과거에 급제하면 커다란 두루마기에 이름을 써서 방을 걸어놓던 산이라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고도가 높거나 산세가 빼어난 곳은 아니지만 산에서 달이 뜬 동해바다의 장관을 또 일출의 장엄함을 맞으려는 백패커들이 즐겨 찾는 장소다. 그만큼 바우길 8구간 중 가장 전망이 좋다. 왜 산 우(위)에 바닷길이란 별칭이 붙었는지 알만하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운 풍광 내면에는 민족의 비극이 존재한다. 6ㆍ25 최초 남침지역이자 북한 잠수정 및 무장공비 침투 등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활공장에서 내려다보면 안보 교육장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강릉통일공원(함정전시관ㆍ안보전시관)이 보인다. 안보전시관에는 무장공비침투 사건 때 공비들의 소지품 등 각종 적 장비 252점 등을 전시하고 있다. 야외전시장에는 전차를 비롯해 장갑차, 곡사포 등 대형 전투장비들이 도열해 있다. 특히 해안 매립지에 건립한 함정전시관은 강릉에서 정동진으로 가는 왼쪽 바다 가장자리에 자리 잡고 있다. 1999년 해군에서 퇴역한 구축함(전북함)과 1996년 무장공비가 침투했던 그 자리에 북한 잠수정을 전시해 놓고 있다.

다시 발길을 재촉한다. 활공장에서 100여m 내려오면 임해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가림길이다. 산행의 여유가 없는 이라면 이쪽 코스로 내려서면 통일공원으로 바로 갈 수 있다.

휴양림 갈림길에서 600m 정도 오르면 삼우봉에 닿는다. 이 구간에서는 짧지만 산성 길을 걸을 수 있다. 여진족과 왜구를 막기 위해 고려 초기에 쌓은 산성은 1970년대 초 많이 훼손되어 서벽 25m, 남벽 55m 정도만 남아 있다.

산성을 지나면 삼각형 바위가 이정표 역할을 대신하는 삼우봉이다. 정원에서나 볼 법한 멋진 소나무 사이로 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다. 괘방산은 크고 작은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 산행 내내 솔향과 같이한다.

삼우봉에서 정동진까지는 6.1㎞다. 눈앞에 커다란 철탑이 보이는 곳이 괘방산 정상이다. 곧 '등산로 폐쇄' 안내판이 나타나고 왼쪽으로 우회한다. 괘방산 정상은 송신탑 등 군사 시설물 때문에 접근하지 못하고 정상 표지석도 없다. 정상을 지나면서 정동진 해변과 썬크루즈리조트, 예술가들이 언덕에 아름답게 꾸민 정원 하슬라아트월드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하슬라'는 강릉의 옛 지명이다.

길 중간에 등명낙가사 쪽으로 하산하는 길이 보인다. 등명낙가사는 정동진과 더불어 강릉 최고의 일출 명소로 알려져 있다. 서울의 정동 쪽에 자리한 사찰로 일주문에 대형 나침반이 설치돼 방향을 일러준다. 절 입구의 등명감로약수는 톡 쏘는 맛이 독특해 유명하다.

조금은 지루한 산길을 걷다 183고지를 넘어서면 저 멀리 정동진의 보석 같은 백사장과 썬크루즈리조트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제 종착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나무계단을 내려와서 임도를 만나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오리나무가 싱그러운 숲길이다. 이곳을 지나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해돋이 명소 정동진 1리' 표석이 길가에서 반긴다.

예전의 정동진은 아주 작은 포구였지만 드라마 모래시계가 방영된 후 관광객이 인산인해를 이룬 곳이다. 강릉에서 출발한 바다열차가 정동진역으로 들어선다. 한 무리의 관광객이 우르르 내린다. 이 곳을 지날 때면 언제나 한가하고 여유롭던 옛 정동진의 모습이 그리워진다.

강릉=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여행메모

△가는길=수도권에서 가면 영동이나 제2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강릉 IC를 나와 우회전해서 정동진방향으로 가다 안인삼거리에 주차. 산행은 원점 회귀코스가 아니라 도착한 정동진역 버스정류장에서 안인삼거리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출발점으로 쉽게 돌아갈 수 있다.

△볼거리=8코스 인근에 해안절벽을 걸을 수 있는 심곡 바다부채길을 비롯해 모래시계공원, 주문진항, 경포대, 오죽헌, 선교장, 참소리 측음기 박물관, 안목커피거리 등 볼거리가 넘쳐난다.

△먹거리=강릉하면 초당순두부를 빼놓을 수 없다.경포호수 옆에 초당순두부마을이 있다. 주문진항에선 싱싱한 생선회를 즐길 수 있다. 전국 5대짬뽕으로 불리는 교동반점의 짬뽕국물도 일품이다. 강릉감자옹심이, 점봉산산채산나물천국, 강릉파불고기 등이 유명하다.

△잠자리=바우길 탐방객이라면 (사)바우길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바우길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보는것도 좋다. 숙박은 물론 트레킹코스, 동행자 등 여럿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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