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만리]돌계단 용 밟고 서면 절집 풍경소리에 봄바람 실려온다

청도 운문사, 대적사, 대비사, 적천사 등 보물 찾아가는 산사여정

최종수정 2018.12.06 09:43기사입력 2018.03.07 11:00
대적사 극락전 기단에는 다른 절집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거북, 연꽃, 게, 태극 등 조각들이 새겨져 있다. 특히 돌계단 옆면의 용비어천도는 화려하고 아름답다.


극락전 기단에 새겨진 용, 거북이, 게, 연꽃 등 문양

운문사 솔바람길

청도 운강고택
운문사 새벽예불

북대암에서 내려다본 운문사 모습

청도의 봄을 알리는 한재미나리. 삼겹살과 함께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어느 고장마다 절집 한 두군데는 꼭 있습니다. 하지만 유독 경북 청도에는 절집이 많습니다. 비구니 승가대학 운문사가 가장 먼저 떠오르겠지만 대적사, 대비사, 적천사 등도 그 못지않게 알려진 곳입니다. 이들 절집에는 특별한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보물입니다. 대비사 대웅전(제834호), 운문사 대웅보전(제835호), 대적사 극락전(제836호)이 그 주인공들입니다. 절집에 보물이나 국보를 가진 사찰은 전국에도 많습니다. 그러나 사찰의 가장 중심 건물인 대웅전(극락전)이 모두 보물인 것은 드물겠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운문사 절집으로 드는 1.2km 숲길은 이름도 예쁜 솔바람길입니다. 구불구불 춤추듯 굽은 소나무들 사이에 서면 봄바람이 가득입니다. 대적사 극락전 돌계단에는 여의주를 문 용 한마리가 화려한 날갯짓을 하고 있습니다. 또 있습니다. 운강고택, 임당리 김씨고택, 자계선원 등 대대로 내려오는 올곧은 선비정신이 살아 있기도 합니다. 봄맛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물 맑은 한재골에서 자라는 한재미나리의 아삭한 맛도 잊지 못할 풍경중 하나입니다. 경칩도 지나고 이제 봄기운이 물씬 풍깁니다. 고즈넉한 봄바람을 따라 청도로 떠나봅니다.

경칩을 앞두고 남부지방에 비가 왔다. 강원도 산간에는 폭설이 내렸다. 청도로 가는길에 만난 변덕스런 날씨, 먼 산에 눈비 자욱해도 불어오는 건 봄바람이다. 반짝 춥거나 말거나 목덜미로는 스멀스멀 봄기운이 스치고 지나간다. 나뭇가지마다 푸른 실핏줄이 돌고 돈다.

청도 운문사로 먼저 간다. 예전 같으면 매표소부터 솔숲 옆길을 차로 달려 주차장까지 5분도 채 안 걸렸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렇게 내달리는 것은 무지한 짓이다. 매표소에서 운문사까지 구간에는 소나무 숲길이 1.2㎞남짓 나 있다. 이 숲길을 운문사 솔바람길이라고 부른다. 수백 년은 됨직한 노송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서로를 끌어안거나 키 재기를 한다. 숲길에 들면 구불구불 춤추는 듯 굽은 소나무들 사이로 봄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에 향긋한 솔내음이 잔뜩 묻어있다. 일행들과 발걸음 맞춰 걷다보면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이름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더해지니 발걸음은 느릿느릿 더디다.

솔바람길을 지나자 운문사 담장을 따라 줄지어 선 나무들이 봄을 품기 시작했다. 운문사 담장은 경내 전체를 둘러놓아 폐쇄적인 느낌이 들지만 그것을 보완해주는 것이 낮은 담장이다. 입구인 2층 종루의 좌우를 길게 이어 감싼 담장인데, 경내를 눈으로 담을 수 있어 개방적이다.

절집에는 천연기념물 180호인 500년 된 '운문사 처진 소나무'가 우산을 펼친 듯 둥그렇게 내려 앉아있다. 임진왜란(1592년) 당시 이미 다 자란 나무가 됐다고 한다.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봄, 가을이면 막걸리를 보시해 아직도 싱싱하고 푸르다. 게다가 그리 무거울 것도 없는 가지가 하늘을 우러르지 않고 땅으로 향하는 모습은 자못 경건함마저 들게 한다.

운문사는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는 비구니들의 요람이다. 이른 새벽, 예불이 시작되면 비구니들의 청아한 목소리가 맑은 공기를 타고 퍼져 나간다. 청명한 새벽기운을 물리치며 퍼지는 예불 소리는 가슴 한가운데로부터 조용히 울리어 몸 구석구석으로 퍼진다. 예불을 바라보면 스스로 몸가짐이 가지런해지며 경건해진다.

운문사 전경을 보고 싶다면 지룡산 암봉 아래 자리한 암자인 북대암에 오르면 된다. 북대암은 운문산에 최초로 세워진 암자다. 운문사를 나와 오른쪽 샛길로 빠져 가파른 도로를 오르면 북대암이 있다. 산신각 뒤 산비탈을 조금 오르면 운문사 전경이 발아래로 펼쳐지는데 장관이다. 햇살이 따사롭게 내려앉은 암자를 나와 다시 내려가는 솔바람길이 유난히 상쾌하고 싱그럽다. 그 길 끝에서 만난 행낭을 진 비구니스님의 발걸음이 사뿐사뿐하다.

대적사로 간다. 신라 제49대 헌강왕 2년에 보조선사 체징이 창건했다. 보물 제836호로 지정된 극락전이 볼거리다. 건물도 잘 보존되어 있지만 이곳에선 극락전 오르는 기단이 더 유명하다. 띠를 두른 듯 넓은 선이 공간을 나누고 곳곳에 국화, 자라, 물고기, 태극문양 등을 조각해 넣었다. 하나하나의 조각에서 소박한 정겨움을 찾을 수 있다. 이중 가장 예술적가치와 아름다운 것이 계단 오른편에 조각된 용비어천도(龍飛漁天圖)다.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오르려는 모습이 생생하게 실감난다.

오갑사 중의 하나인 대비사로 향한다.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바람은 싱그럽고 길은 아름답다. 농촌 풍경이 그대로 엿보이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큰 저수지가 나타난다. 대비지라 불리는 저수지를 따라 난 길은 산속으로 인도한다. 얼음 녹아 흐르는 물가에선 촉촉해진 버들강아지가 한들거린다. 대웅전 옆에선 푸른빛을 잃지 않은 동백나무와 매화ㆍ목련 꽃봉오리들이 실눈 뜨고 봄볕을 기다리고 있다.

대비사는 오갑사 즉 대작갑사, 가슬갑사, 천문갑사, 소보갑사, 대비갑사 등 '갑'자가 들어가는 5개의 사찰을 말한다. 대작갑사는 현재 운문사이고 대비갑사는 지금 대비사로 남아 있다. 그 외 나머지 세 갑사는 폐사되어 없어졌다고 한다. 대비사는 보물 834호로 지정된 대웅전과 몇 개의 전각만이 옛 대비갑사의 흔적을 지탱해 주고 있다.

옛 청도 양반들의 터전도 살펴보자. 신지리는 중요민속자료 106호로 지정된 운강고택 외에 오래된 고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다. 밀양 박씨의 주거지였던 이곳은 조선 선조 때 박숙이란 사람이 처음으로 자리를 잡았다. 동창천의 암벽 위에는 운강 박시묵 선생이 19세기 초에 지은 운강고택의 별서 만화정이 예쁘게 앉아 있다.

운강고택 주변엔 운강의 아들들이 살던 운암고택ㆍ명중고택ㆍ섬암고택과 그의 동생이 살던 도일고택 등이 있다. 운강고택을 제외한 나머지 집들은 1990년 도로확장공사 때 사랑채 등 일부 건물을 헐어냈다고 한다. 이들 고택뿐 아니라 골목마다 줄을 잇는 돌담 안에는 일부나마 옛 모습을 간직한 한옥들이 수두룩하다.

봄맛도 빼놓을 수 없다. 봄은 파릇파릇 물오른 한재미나리에 잔뜩 묻어있다. 한재 마을에는 맑은 물에서 자란 한재미나리가 은은한 향기로 특유의 풍미를 자랑하고 있다. 미나리의 맛과 향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봄철명물인 '미나리 삼겹살'을 추천한다. 흔히 미나리 삼겹살이라고 하면 삼겹살과 구운 미나리를 생각하기 쉬운데, 향이 좋고 부드러운 한재미나리는 삼겹살에 돌돌 말아 쌈처럼 싸먹는다. 미나리 하우스가 즐비한 한재로 인근에 맛볼 수 있는 식당들이 여럿 있다.

청도=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여행정보

△가는길=경부나 중부고속도로에서 영동고속도로 타고 가다 여주JC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간다. 신대구에서 부산간고속도로로 갈아타고 가다 청도IC를 나오면 읍내다.


△볼거리=보물 제323호로 지정된 청도석빙고는 돌무더기를 아치형으로 표현한 솜씨가 일품. 적천사 목조사천왕상, 은행나무도 장관이다. 이밖에 청도읍성, 운문댐, 와인터널(사진), 청도레일바이크, 청도소싸움축제 등도 볼만 하다.

△먹거리=돼지수육과 돼지국밥(7천원)으로 유명한 코보식당은 전국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수육은 쫀득하고 부드럽다. 청도역 주변에는 추어탕집이 즐비하다. 다들 원조라고 내걸었지만 맛은 비슷비슷하다. 한재미나리를 맛보려면 삼겹살을 준비해 가면 즉석에서 미나리를 사 불판에 고기를 구워서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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