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환의 지리산별곡 27] 큰 바위 얼굴 지리산 천왕봉을 향하여!

(성삼재~천왕봉)

최종수정 2017.11.27 08:09기사입력 2017.11.27 08:09
[아시아경제]


지난 1년간 지리산둘레길을 돌면서도 내 머리에는 늘 천왕봉이 자리 잡고 있었다.
둘레길 칠 백리 사방팔방을 돌고 돌아도 북극성처럼 늘 그 자리에서 나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언뜻 한 번씩 그 모습이 나타날 때면 내 가슴은 설레었었다.
둘레길을 돌 때만이 아니었다.
지리산 주변을 여행을 하다가도 한 번씩 보일 때면 나도 모르게 “어, 저기 천왕봉이 보인다 천왕봉”라고 외쳤었다.



대한민국 사람치고 천왕봉에 올라 보지 못한 사람 몇 안 되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천왕봉은 큰 바위 얼굴,
늘 말없이 나를 참아 주고 기다려 주는 큰 형님이자 아버지처럼 여겨졌었다.
그동안 몇 차례 천왕봉 정상을 올랐었지만 피상적으로 그 봉우리만 밟고 왔었다.
이번에는 늘 꿈꾸어 왔던 주능선을 따라 걸어 보고 싶었다.

벽소령 어디쯤엔가 우두커니 서서 한참 능선을 응시하다가도
북쪽의 함양으로, 금산으로 뻗어 있는 산줄기를 바라보고 싶었고
그 너머로 더 올라가 소백산, 설악산, 금강산, 그리고 백두산 까지 내 마음을 보내 보고 싶었었다.

또 남쪽으로 고개를 돌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작은 동네에서
저녁밥을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그 가슴 시린 모습을 내 손으로 잡아 보고 싶었으며
누나들이 고무줄놀이 하는 그 서정적 모습을 내 눈으로 그려보고 싶었었다.




새벽 세시 반에 맞춰 놓은 알람이 깨웠다.
구례까지는 아내가 차를 태워 주고 거기서 부터는 미리 예약해 놓은 택시를 타고 성삼재로 올라가
네 시 반부터는 등반을 할 계획이었다.

양력으로 오월 구일, 봄기운이 향긋하다.
구례터미널에 도착하여 개인택시를 타고 성삼재로 올랐다.

이미 동쪽 하늘은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다소 바람이 싸늘하다.
아무도 없는 등산로를 홀로 걸어갔다.
바람소리, 새 소리,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 뿐 이었다.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 내내 택시 기사가 해 주었던 말이 자꾸 되뇌어졌다.
“빨리 걷지 말어요. 노략질 허면서 걷는 거여요 노략질”
그의 말은 처음 지리산 종주에 나서는 나에겐 대 선배의 기막힌 원포인트 레슨과도 같았다.

“그래 노략질 하면서 걷는 거야, 놀면서, 즐기면서 걸어가자”
기사 아저씨의 그 한 마디 충고는 이틀 내내 내 산행의 중심을 잡아 준 교훈이 되었다.



노고단에 서서 내가 걸어왔던 길과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번갈아 보았다.
남원과 구례 쪽 산 아래에서는 섬진강이 만들어 낸 안개가 계곡의 아랫부분부터 채워 오고 있었다.

내가 걸어가야 할 지리산 주능선 너머 천왕봉이 저 멀리 아스라이 손에 잡힐 듯 하고
그 중간 즈음에서는 반야봉이 지남철처럼 나를 잡아당긴다.

등산로에는 이제야 버들강아지가 피어나고
고목나무는 아직도 이파리가 피어나려면 달포는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반야봉까지 가는 등산로에는 수백 년 묵은 나무들이 뿌리를 하늘로 향한 채 쓰러져 있었다.
지난여름에 폭풍우에 휩쓸려 쓰러진 것들이리라.

이들은 세월의 흐름에 스스로를 맡기고 바람이 되고 흙이 되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틀간의 지리산 종주 내내 눈에서 떠나지 않았던 봉우리 반야봉은
그 생김새가 뭉텅하고 너무 편안하여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노고단 고개에서 약 5킬로미터를 걸어와 노루목에서 반야봉 삼거리를 지나 반야봉에 올랐다.
처음 맞이하는 가파른 등산로다.

반야봉에 홀로 앉아 겹겹이 쌓인 산들을 바라보았다.
대양에서 만들어 낸 파도처럼, 산들의 능선이 만들어 낸 파도가 쉼 없이 밀려왔다.

목포에서, 마산에서 밀려오고 밀려오기를 쉬지 않는다.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산줄기 파도를 타고 반야봉으로 넘실거리며 올라오는 듯하다.


봉우리 정상부위의 철쭉은 지난 주 내렸던 눈으로 채 피어 보지도 못하고 얼어 버린 채 말라 버렸다.
이대로 여름을 맞이하고 또 가을을 지나 겨울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삼도봉 아래 산비탈면은 마치 비단을 깔아 놓은 듯 태양빛에 반사되어 빛이 피어올랐다.
이제 막 움이 트는 이파리들과 태양빛의 만남이 이루어 낸 판타지와도 같았다.
저 비단길을 타고 내려가면 구례의 어느 작은 산자락 마을에 도착하지 않을까 싶다.



삼도봉은 지리산이 얼마나 광대한 지역을 포함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점이다.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경상남도가 시작되고 모이는 장소다.

주물로 만들어진 삼도봉 표지석에 배낭을 쉬게 하고 삼도를 두루 살펴보았다.
내가 올랐었던 반야봉이 바로 내 머리 위에 있어 보인다.
지리산이 하나이듯 전라도와 경상도가 둘이 아닌 하나로 묶여지기를 소망한다.


새벽에는 싸늘했던 공기가 점심 무렵에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때에 맞춰 연하대피소에는 등산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높은 봉우리에 둘러싸여서 좁디좁은 하늘을 가진 연하대피소의 고목나무에서는 새 순이 돋아나고
이제야 제대로 된 봄기운이 도는 듯하였다.



오늘은 형제봉을 지나 벽소령에서 하룻밤을 묵을 작정이다.
벽소령은 하동과 함양의 경계 지점에 있다.
벽소령 아래 첫 마을은 하동의 의신마을로서 이 마을에서는 한 눈에 형제봉과 벽소령을 조망할 수 있다.

한 번씩 의신마을에서 형제봉과 벽소령 쪽을 바라보면 이들이 바로 삶의 지척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개인택시 기사의 조언대로 노략질 하듯이 해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산행을 즐겼다.
덕분에 지리산 능선의 작은 꽃들과 참 귀한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얼레지는 보랏빛을 선명하게 분출하고 고목 아래와 언덕 빼기에 군락을 지어 나를 기쁘게 해 주었다.

공원을 관리하는 직원에게 물어서 그 이름을 알게 된 하얀 개별꽃도 한창이었다.
나무들의 생김생김, 들풀들의 나부낌 까지 관찰하고 이들과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구상나무는 그 홀로 온갖 자연 풍상을 다 겪은 나무처럼 고고하였다.
주능선 정상에서 만나는 구상나무들을 볼 때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그 나무에서 겨울 눈보라 소리들이, 여름 폭풍과 천둥번개 소리들이 들리고 보이는 듯하다.

불멸의 나무로 알려져 있는 구상나무가 왜 지리산에서 유독 많이 자생을 하는지 알듯하다.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그 뿌리를 함께 해 온 지리산과 구상나무는 맥을 같이 하지 않을까?

지리산의 나무들을 가만 보면 굽어지고 뒤틀린 나무들이 많아 보인다.
고목이 되어 기둥 부위에 구멍이 나고 그 구멍 사이로 기생 식물들이 또 서식하는 기형적인 모습들도
지리산에서 볼 수 있는 진귀한 풍경이다.

죽은 나무에 터를 잡고 피어나는 개별꽃은 차라리 앙증맞은 모습이다.
자연은 죽지만 결코 영원히 죽지 않는 그 영속적인 모습에 끈기와 인내가 느껴진다.

부러지고 잘려 나간 나무가 남겨 놓은 옹이도 지리산에서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상처 입었기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상처 입은 자 만이 상처 입은 자를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그에게 다가가 만져 본다.
그 움푹 파인 곳에 손을 얹어 보고 귀를 대고 소리를 들어 보기도 한다.

부스럼 같은 촉감, 하지만 귀를 대어 가만 들어 보면 그에게서 “널 사랑 한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분명 그렇다.




벽소령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6시 무렵이었다.
좁은 공간의 대피소는 사람으로 만원이다.
저녁 시간에 할 일이 만무한 대피소는 밤이 일찍 찾아온다.
아니 일찍 밤을 청해야만 하는 곳이다.

새벽 다섯 시에 맞춰 놓은 알람에 깨어 조심스럽게 짐을 꾸리고 천왕봉을 향했다.

지리산의 첫 공기를 맛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잠에서 갓 깨어난 산새들의 노래 소리를 들어 보고 싶었고
남해 저 멀리에서 용솟음치는 태양빛이 처음 발하는 그 기상 넘치는 빛을 만져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리산에서는 생각보다 태양이 일찍 떠올랐다.
다섯 시가 되자마자 생기가 돌고 산이 동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봉우리부터 조명이 비춰지고 점점 그 조명이 밝아지면서 아래로 내려갔다.

어쩌면 산행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바로 이 순간이 아닐까 싶다.
태양으로부터 시작된 기운이 산을 깨우고 우주 만물에 생동감을 더해 주는 바로 이 시간,
그래서 나도 그 가운데 하나의 자연이 되어 같이 깨어나는 것이다.

살아 있음에 대하여, 지금 이 자리에 있음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리산은 늘 천지창조와 종말이 함께 일어나는 곳이다.
이제 막 움을 틔우며 태어나는 작은 나무들,
어느 곳에든지 움이 트고 생명이 약동한다.

바로 그 자리에 천년 묵은 고목이 쓰러져 있고 그 나무가 먼지가 되고 바람이 되어 사라져 간다.

내가 살아가는 한적한 작은 동네 그곳도 이곳 지리산과 다름없으리라.
누군가 떠난 자리에 또 누군가 태어나고
그래서 지금의 나와 내 아들이 있고 그들의 후손들이 이 땅을 또 지켜 나갈 것이다.


촛대봉에서니 바람이 강했다.
아래에서는 느끼지 못할 바람이 온통 몸을 휩쓸어 갈 지경이다.
저 아래 세석대피소가 마치 병아리처럼 작아져 보이고 드디어 천왕봉이 손에 잡힌다.

여전히 나의 큰 형님처럼 든든히 서 있는 반야봉,
내가 지나온 길을 그는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내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반야봉 뒤를 지키고 서 있는 또 다른 작은 거인 노고단,
늘 노고단은 나서기 보다는 기다려 주고 맞이해 주는 베이스캠프였다.
보이지 않은 곳에서 모든 이들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해 준 숨은 조력자다.

나도 누군가에게 반야봉으로 서 있어 주고 싶다.
말없이 기도 해 주는 영원한 베이스캠프 노고단이 되고 싶다.



세상에 하찮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지리산에 와서야 깨달았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땅,
그 주변에 작은 산들, 작다고, 이름 없다고 하찮게 여겼던 산들과 봉우리들과 계곡과 재들이
천왕봉을 향하는 주능선에서 보면 어쩌면 그렇게 늠름하고 당당하게 서 있는지,
그 생김새 하나하나가 얼마나 또렷하고 구김 없고 잘생기고 아름다운지 모른다.

천왕봉을 향하는 지리산 주능선에 서고서야 깨달은 선물이다.


내가 사는 집에서 손잡을 듯 보이는 백운산,
마음만 먹으면 단번에 올라가 세상을 향해 소리 지를 수 있는 형제봉,
아침마다 눈만 뜨면 바라보이는 구재봉,

지난 달 바람이 몰아치는 날 아침에 올랐던 백운산 계곡의 한재,
남해바다를 지키고 서 있는 금오산,
내 어릴 적 뛰어 놀았던 동네의 이름 없는 작은 산과 계곡들도
지리산 능선에서 보면 내 손의 지문들처럼 그렇게 선명할 수 없다.

이들은 늘 언제나 지리산과 대화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지리산을 사모하고 천왕봉을 그리워하듯 말이다.

사랑 한다 너희들아,
내가 너희들로 인하여 이만큼 자랐음에 감사한다.

제석봉에서 나의 지나온 길들과 또 남은 길들을 바라보면서 새 힘을 얻었다.
지리산은 멀리서 보면 오히려 가깝고 가까이에서 보면 멀어지는 느낌을 받은 것은 나만의 일일까?

제석봉에서 본 천왕봉은 또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는 듯하였다.
하지만 이제 고지가 바로 저기다.

저 아래 장터목 대피소가 보인다.
저 고개만 올라서면 바로 천왕봉이다.
성삼재에서 30킬로미터, 그리 멀지도, 그렇다고 그리 가깝지도 않은 묘한 거리다.
그는 나의 활동 반경 속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나의 큰 바위 얼굴이다.

늘 그 자리에 있었음에도 없는 듯 있었고 높은 산임에도 낮은 자처럼,
유명함에도 무명한 것처럼 서 있는 천왕봉,
그 모습 속에서 사람을 살리며 변화시키며 오래 기다려 주는 큰 바위 얼굴이 보였다.

영겁의 세월 속에서도, 마르고 닳도록 기나긴 시간 속에서도
그렇게 큰 바위 얼굴로 오늘의 나를 지켜 주었듯이 내일의 누군가를 또 지켜 주리라.

큰 바위 얼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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