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사람]영화만을 위해 살았던 사람의 80주기

'아리랑' 만든 우리나라 영화의 선구자 나운규, 1937년 8월9일 세상 떠나

최종수정 2017.08.09 15:52기사입력 2017.08.09 15:52 김철현 기자
나운규와 '아리랑'

"나는 이제 무엇을 위하여 살며 무엇을 위하여 죽으리까. 오로지 영화만을 위하여 살았고 영화만을 위하여 돌아가신 거룩한 당신의 영혼이 영원히 행복함을, 눈뜬 잠을 자고 있는 나는 속마음으로 축원하나이다." 80년 전인 1937년 월간지 '삼천리'에 실린 글이다. 여배우 신일선은 서른다섯의 젊은 나이에 춘사 나운규가 세상을 떠나자 절절한 안타까움이 담긴 이 글을 기고했다고 한다.

9일은 한국 영화의 효시로 평가받는 나운규의 80주기다. 1937년 8월9일 그는 생활고와 과로에 지병인 폐결핵이 겹쳐 요절했다. '나운규'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품은 '아리랑'이다. 그는 이 영화의 감독, 각본, 주연으로 활약했다. 신일선도 이 영화에서 나운규의 여동생으로 출연했다.

'오직 영화만을 위해 살았던' 나운규의 대표작 '아리랑'은 어떤 영화일까. 일제강점기였던 1926년 10월1일 서울의 단성사에서 개봉된 '아리랑'은 흑백의 무성 영화였지만 끝나면 관객들은 목 놓아 울며 아리랑을 따라 부를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나운규는 이 영화에서 실성한 대학생 영진으로 출연한다. 극중 그의 친구 현구와 영진의 여동생은 사랑에 빠지지만 친일파 기호가 여동생을 겁탈하려고 하고 이 과정에서 영진이 낫으로 기호를 죽이고 일본 경찰에 잡혀가는 것이 대략의 줄거리다. 잡혀가는 영진을 보내며 사람들은 아리랑을 부른다.
내용은 일견 단순하지만 일제강점기에 핍박받던 민중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고 전해진다. 주인공이 실성한 채 등장하는 것은 나라를 잃어 제 정신일 수 없는 우리 민족을 상징한다고 해석됐다. 이 영화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워낙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 항일 정신을 고취시키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주제곡으로 사용된 아리랑도 저항 의식과 민족혼을 일깨웠다.

당시 한 일본어 영화잡지는 "그 작품 안에는 어떤 꿈이 깃들어 있었다. 그 소중한 꿈에 감동을 받았다"는 평을 소개하기도 했다. 1946년 발행된 '예술통신'이라는 잡지에는 미국서 영화를 전공한 전문가가 "20년 전 작품이라는 '아리랑'을 봤는데, 세계적으로 내놓을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에 따르면 해방 직후 국내에 '아리랑' 필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기존에는 국내에는 원본 필름이 남아 있지 않고 일본의 영상수집가 아베 요시시게가 원본 필름을 소장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두용 감독은 나운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현대적 감각으로 '아리랑'을 만들어 2003년 개봉하기도 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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