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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사람]앤디 워홀은 왜 스프 깡통을 그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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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8월6일 태어난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의 작품 세계

[오늘 그사람]앤디 워홀은 왜 스프 깡통을 그렸나 앤디 워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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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은 89년 전 오늘인 1928년 8월6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에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장 영향력 있는 20세기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그는 캠벨 수프 깡통과 코카콜라 등 상업 제품을 소재로 삼아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영역을 구축했다. 특히 캠벨 수프 연작은 그의 팝 아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캠벨 수프 시리즈 첫 작품을 내놓은 때는 1962년이었다. 서른네 살의 그는 만화를 회화로 그린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전시회를 보고 자극을 받아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당시 미국에서 캠벨 수프는 대량생산 상품의 전형이었다. 가격은 저렴했고 1년에 100억 개 이상이 팔릴 정도로 인기였다.


그는 처음에는 손으로 수프 깡통을 그렸다. 하지만 6년 뒤인 1968년에는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이 작품을 인쇄했다.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만들어 예술과 대량생산 제품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 것이다. 이는 산업사회의 대량생산과 소비를 그만의 방법으로 풍자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를 통해 워홀은 예술이 더 이상 근엄하지 않고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쉽고 평등한 것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워홀이 캠벨 수프 깡통을 그린 지 55년이 지나는 동안 캠벨 수프는 대중의 바뀐 입맛에 맞추기 위해 전통의 조리법을 바꿨다. 치킨 수프에서 화학 첨가물을 제외하고 물과 양파를 늘리기로 했다. 대중에게 익숙해진 대량생산의 맛을 지우고 있는 셈이다.


수프의 맛은 변했지만 워홀이 이를 통해 전하려 했던 메시지의 가치는 여전하다. 캠벨 수프 깡통 시리즈는 지금도 고가에 거래된다. 도난당하기도 했다. 지난해 미국 미주리주 스프링필드 미술관에 도둑이 들어 캠벨 수프 연작 10점 중 7점을 훔쳐가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 연작의 가치는 약 50만 달러였다고 한다.


예술의 경계를 낮추기 위해 대량으로 찍어낸 작품의 가치에 대해 그는 '앤디 워홀의 철학'이라는 책을 통해 이렇게 고백한 바 있다. "최근 몇몇 회사에서 내 '아우라' 구입에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내 상품은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는 당신의 아우라를 원합니다"라는 말을 계속했다. 나는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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