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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권 교육 밖 만학도들 "스승의 은혜 고맙습니다"

시계아이콘읽는 시간55초

2년제 학력인정 평생학교 일성여중고의 정선숙 지도부장
경제적 이유로 못 배운 여성들 위해 24년 간 교편 잡아
지식 전달 넘어 사제의 연(緣)… 어려울 땐 가장 먼저 찾는 '우리 선생님'

제도권 교육 밖 만학도들 "스승의 은혜 고맙습니다" 정선숙 일성여자중고등학교 지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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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민우 기자] "빚 때문에 종적을 감춘 제자도 스승의 날에는 전화오더라고요. 고맙다고."

24년째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정선숙(61·사진) 지도부장의 말이다. 과거 출판사에서 근무했던 그는 우연히 알게 된 이곳에서 목격한 여성들의 배움에 대한 한(恨)과 열정에 감동해 이곳에 발을 디뎠다. 정씨는 "과거 가부장적인, 가난하던 시대에 여자라는 이유로 학업을 접어야했던 아픔과 열정에 깊이 감동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일성여자중고등학교는 2년제 학력인정 평생학교다. 개인 사정으로 학업을 마치지 못한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중·고등학교 과정을 배우고 있다. 지난 1952년 야학으로 시작한 이래 일성고등공민학교를 거쳐 지난 2000년 공인 학력인정 기관의 형태를 갖췄다. 현재 중학교 과정 15개반, 고등학교 과정 11개반에서 총 1000여명의 학생들이 배움의 열정을 쏟고 있다. 누적 졸업생은 5만4000여명에 달한다.

정씨는 "경제 성장으로 물질적인 여유가 생기고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도 발전했지만 국민학교밖에 못 나온 여성들은 발전한 사회 속에서 더욱 소외감을 느끼고 학력이 들통날까 움츠러들었다"며 "이들이 공부를 하며 어깨를 펴고 자신감을 갖는 모습은 언제나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매년 스승의 날이면 여러 학생들이 정씨를 찾지만 유달리 기억에 남는 학생들이 있다. 남편이 사업에 실패해 빚 독촉을 받으며 종적을 감추고 이리저리 떠도는 와중에도 스승의 날마다 꼬박 연락을 했다는 A씨다. 정씨는 "노출될 위험을 무릅쓰고 공중전화에서 걸어온 전화 한 통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상담교사로 근무하는 한 졸업생은 업무상 어려움에 부딪칠 경우 동료나 사수가 아닌 정씨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민다. 남들 앞에서는 '모른다'라고 대답하기 어렵지만 선생님 앞에선 언제나 모르는 것을 질문할 수 있는 '제자'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지식 습득과 학력 획득을 넘어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사제의 연(緣)'을 맺은 셈이다.


정씨는 "그동안 맺은 수많은 인연들이 다 소중하다"며 "앞으로도 그들의 배움에 대한 한을 해소하고 공부에 대한 열정을 함께 현실로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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