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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재판이 남기는 것②] 정치권력에 멍든 재계 흑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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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전형적인 정경유착에 따른 부패범죄로 국민주권의 원칙과 경제 민주화라고 하는 헌법적 가치를 크게 훼손했다. 하루 빨리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고, 훼손된 헌법적 가치를 재확립해야 한다."


박영수 특검이 지난 7일 이재용 부회장 결심공판에서 이번 사건을 '전형적인 정경유착에 따른 범죄'로 판단한 것은 정치권력에 멍든 재계 흑역사의 단면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기업을 향한 '정경유착'의 비난은 기업 스스로 자초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그 같은 비판의 잣대가 지금도 유효하냐는 다른 문제다. 과거에는 기업이 돈을 건네고 권력자가 사업 이권을 챙겨주는 '상호수혜'의 범죄적 혐의가 짙었지만, 이후에는 정권의 요구에 기업이 어쩔 수 없이 협조한 측면이 크다. 따라서 과거의 잣대로 복잡다단한 지금 상황을 재단하는 것은 자칫 정상적인 기업경영마저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건국에서 6공까지 이어진 정경유착, 관(官) 주도의 성장시기= 196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은 빠른 속도로 해외 기업들을 따라잡기 위해선 대기업 위주의 경제성장정책이 필요하다고 결론내린 뒤 막대한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현대는 무주택 사원에게 분양한다는 명목으로 압구정 현대아파트 건설 허가를 받은 뒤 국회의원, 고위공직자, 언론인 등에게 분양하며 막대한 돈을 챙겼고 삼성 역시 박 전 대통령의 묵인하에 사카린 밀수사건이 드러나 곤욕을 치렀다.


5공화국, 6공화국의 정경유착 사례는 더 노골적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아예 청와대로 기업인을 불러 개인 비자금을 조성했고 그 대가로 고속도로 건설, 차세대 전투기, 율곡사업(군 전력증강 사업) 등의 이권을 대기업들에게 줬다.


말을 듣지 않는 기업은 아예 재계 역사상에서 지워버렸다. 이처럼 당시의 정경유착 사례는 각종 사업권을 손에 든 정부가 기업에게 돈을 요구하고 이권을 매매하는 방식으로 거래됐다.


◆문민정부의 적폐 청산, 새롭게 변모한 정경유착= 1995년 김영삼 정부는 처음으로 정경유착에 대한 사법적 처벌을 내렸다.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비자금을 제공한 기업인들 모두 유죄를 선고 받았다.


과거 정경유착에 대한 적폐청산은 이때 이미 정리된 셈이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 이후도 정경유착은 이어졌다. 새로운 정책을 펼치기 위해선 기업들의 힘이 필요했고 기업 입장서는 말을 듣지 않을 경우 온갖 불이익을 입게 되는 만큼 정부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5공 이후 정경유착 사례는 종전과 완전히 다르다"면서 "삼성과 현대는 이미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고 해외 사업에 집중하며 국내 시장서의 이권은 별반 중요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재계는 일자리 만들기, 상생 등에 적극 호응해야 했다. 시장 상황과는 관계없이 정부 요청에 따라 각종 재단에 준조세격으로 돈을 내왔던 이유다.


◆대통령 앞에서 작아지는 기업들, 밉보일때 마다 불이익= 재판 과정에서도 변모한 정경유착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김진동 부장 판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대통령에게 잘 보이거나 혹은 밉보이거나 했을 때 피고인 혹은 삼성이 입을 이익이나 불이익은 어떤 것이 있나"라고 물었다.


이에 이 부회장은 "JTBC건 갖고 질책을 할때(3차 독대)는 사실 불이익 정도가 아니라 보복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다"고 답했다. 재계는 이 부회장의 이같은 답변에 공감을 표명한다. 특히 삼성의 경우 대통령의 보복은 일종의 트라우마에 가깝다.


김영삼 정부 시절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북경에서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경쟁력은 2류"라는 발언을 했다. 이후 영광원자력 5, 6호기 입찰 자격에서 이유 없이 탈락했고 자동차 사업을 위한 부산 신호공단 땅 매입도 차일피일 미뤄졌다.


이 회장이 김 전 대통령에게 직접 사과한 뒤 문제가 일시에 해결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이익공유제에 대한 비판과 당시 정부의 경제정책을 "낙제는 면했다"고 평가한 뒤 고초를 겪었다. 국세청 세무조사가 진행됐고 이는 CJ와의 상속소송까지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재계 관계자는 "특검이 이번 사건을 전형적인 정경유착으로 표현한 점은 심히 유감"이라며 "과거 고도성장기의 전형적 정경유착 사례를 이번 사건과도 연결시키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말했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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