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31번’ 수능 ‘괴물’ 문제에 무너진 학생들…“교육 개혁 촉구”
최종수정 2018.11.19 11:10기사입력 2018.11.19 11:10
16일 서울 무학여자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들이 수능 가채점을 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2019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가채점도 마무리 되고 있지만 1교시 최고난도 ‘국어영역’ 쇼크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수많은 학생들과 전문가들은 문제의 ‘31번’ 문항에 혀를 내둘렀고, 이는 교육 개혁을 촉구하는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5일 59만4924명의 수험생이 수능에 응시했다. 1교시부터 역대급 난이도의 문제가 등장했다. ‘구는 무한히 작은 부피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그 구와 동일한 질량을 갖는 질점이 그 구의 중심 O에서 P를 당기는 만유인력과 같다.’ 문제의 31번 문항 지문이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 실재 입증 과정을 적용해 푸는 문제였다. 물리가 아닌 국어영역이었다.

해당 문항을 접한 이들 모두 문제를 이해하는 것조차 어렵다는 반응이다. 명문대에 재학 중인 대학생들은 물론 유명 인터넷강의 강사들과 현직 고교 국어 선생님들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공부의 신’ 강성태는 “이 정도면 학생들에게 괴물이 되란 소리이며,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거다”며 “이 정도 난이도면 기본 실력 싸움이 아니라 멘탈 싸움이 되고, 국어를 풀다가 '재수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수능 국어 1등급 커트라인은 2005년 이후 줄곧 90점대(1~2개 틀린 점수)를 넘겨왔지만, 이번에는 원점수 기준 커트라인이 문제 5~6개를 틀린 점수인 85~86점에 머무를 것으로 예측돼 이번 국어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이런 불수능에도 만점자는 등장했다. 현재까지 수험생 4명이 만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는데, 4명 모두 자연계열 수험생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물리지식을 요구했던 국어영역 31번 문제가 인문계열 수험생들의 발목을 잡았다는 지적까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수능 만점자 가운데 재수생 2명이 해당 지문과 관련된 배경지식을 배우는 물리과목을 선택했다는 점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매 수능마다 ‘킬러문항’으로 불리는 변별력을 갖춘 문제들이 등장한다. 대개 난이도 있게 출제된 수능은 변별력을 확보해 상위권 수험생들의 격차가 뚜렷해져 긍정적으로 평가 받는다. 그럼에도 이번 31번 문항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는 크다. 변별력을 갖추기보단 기본 물리적 지식이 없다면 풀 수 없는 수준의 난이도와 시간 분배가 중요한 영역에서 시간만 빼앗는 문제 출제로 학생들의 부담만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심지어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내년도 국어영역에는 미·적분이 지문으로 제시되고 이를 적용하라는 문제가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출처=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린 한 고3 학생은 “이번 수능 문제는 거의 괴물 수준”이라며 “정시로 가려는 친구들, 최저등급을 맞춰야 하는 친구들 모두 삶을 잃은 표정이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수능이 대학 입시 변별력이 아닌 재수생 양산을 목적으로 하는 것 같다”고 했다.

현재의 대입전형에 대한 불만도 상당하다. 청원자는 “대학마다 전형이 달라 여러 전형에 지원하고 면접 준비, 내신 관리, 생기부 관리, 수능까지 준비해야 한다”며 “현재의 대입전형은 학생들을 스트레스로 죽게 만드는 입시에 불과하며, 교육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번 수능을 통해 느낀 공교육의 개편 필요성’이란 제목의 글을 올린 청원자는 “집안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사설 학원이나 유료 인터넷강의도 듣지 못하고 학교 수업, EBS 인터넷 강의만으로 공부해 온 학생”이라고 밝히며 “EBS 교재와 모의평가 기출문제에 충실하게 열심히 공부해왔지만 공교육에 대한 회의감을 안겨줬다”고 했다. 현재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이의제기가 가장 많았던 사회탐구영역의 생활과 윤리 과목 3번 문제를 꼬집었다.

그는 “사교육 의존도를 줄이겠다며 공교육을 정상화 하겠다는 평가원이 다수의 학생들을 혼란에 빠뜨렸다”며 “근본적인 대한민국의 공교육에 대한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대학 입시 제도는 지금까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변경돼 왔다. 1993년 수능이 도입된 이후 25년 동안 12차례나 바뀌었다. 이에 따라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매번 혼란을 겪으면서 사교육에 매달리는 방식으로 불안감을 해소했다. 수능 자체가 입시경쟁 과열을 불러일으켰고, 주먹구구식 정책으로 사교육 의존도를 높인 셈이다. 교육정책의 일관성과 연속성이 없는 점이 문제다.

또 현재 대입은 정답과 서열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비난도 있다. 교육 자체의 궁극적인 목적이 학생들의 성장과 미래 양성에 있지 않고, 단순히 좋은 대학에 가려는 목적으로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수능을 앞둔 고2, 고3 학생들 절반 이상이 치료가 필요한 수준의 만성 피로에 시달리고 있고, 수능 이후 성적을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수험생들의 안타까운 소식도 매년 이어지는 이유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스크랩 댓글0

프리미엄 인기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