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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낙태죄 위헌]"여성 건강권 향상" 의료계가 본 판결(종합)
최종수정 2019.04.11 17:19기사입력 2019.04.11 15:43

-의료적 측면에서 여성 건강권 높일 수 있는 계기

-WHO도 "낙태 합법화하면 모성사망률 낮아질 것"이라고 밝혀

-낙태 절차·장소·시술자 등에 대한 규정부터 전후 모니터링, 건강보험 적용 등 논의과제 산더미

지난 1953년 제정된 이후 66년간 유지돼 온 낙태죄 헌법 위헌 여부 판결을 앞둔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청년학생단체 소속 관계자들이 낙태죄 위헌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아시아경제 박혜정 기자] 헌법재판소가 11일 낙태를 처벌하도록 한 형법 조항에 헌법불합치를 선고하면서 내년 12월 말까지 관련 법을 개정하라고 결정했다. 66년 만에 사라지게 된 낙태죄를 두고 의료계에서는 태아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이분법적 대결을 넘어 여성 건강권 측면에서 합당한 결정이라고 보고 있다.


◆낙태 합법화해야 여성 건강권 향상=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법제이사는 "의료적인 측면에서는 여성의 건강권을 더 높일 수 있는 결정"이라면서 "낙태가 합법화되면 시술과정 교육, 낙태 전후의 정부 모니터링 등 안전한 환경에서 의료행위가 이뤄질 수 있어 그동안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김동석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의사들이 의학적인 관점을 떠나 낙태 찬반을 논할 수는 없다"면서도 "기존 모자보건법은 의학적으로 타당하지도 않았고 여성 건강권을 보호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모자보건법은 '낙태가 불법'이라는 전제 아래, 임신 24주 이내의 예외적인 5가지 사유에 한해 낙태 수술을 허용하고 있다. 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또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등이 예외로 허용된다. 1973년 이후 46년간 단 한 번도 개정되지 않은 데다 너무 제한적이라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낙태는 표준 지침대로 이뤄질 경우 위험한 수술이 아니다. 낙태를 불법으로 막아놓은 국가일수록 '안전하지 못한' 낙태수술로 인한 모성사망률이나 합병증 발생률이 높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안전한 인공임신중절(낙태)에 관한 가이드라인'에서 "낙태는 숙련된 의료진이 올바른 방법으로 수행한다면 매우 안전하다. 낙태 합법화는 결과적으로 안전하지 않은 낙태로 인한 모성사망률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낙태를 엄격히 금지할수록 법적인 보호나 표준지침이 없는 상황에서 '안전하지 못한' 약물적ㆍ수술적 낙태를 실시하기 때문이다.


루마니아가 낙태 규제와 모성사망률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루마니아는 지난 1966년 낙태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모성사망률이 1983년 7배 높아졌다. 이 기간 10만명의 여성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989년 낙태금지법이 폐지되자 한 해 만에 모성사망률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일각에서는 낙태가 합법화되면 낙태가 더 쉽게, 더 많이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낙태를 합법화한 해외 사례를 보면 그렇지 않다.


임신 12주 이내 임부 결정에 따라 낙태가 가능한 프랑스와 독일, 오스트리아의 낙태율은 각각 15.0%(2015년), 7.2%(2012년), 1.4%(2000년)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사회ㆍ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 및 임부 요청에 의한 낙태를 금지한 뉴질랜드 12.0%(2015년), 이스라엘 12.5%(2012년)로 낮지 않다. 낙태 합법화와 낙태율간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


◆내년 말까지 법 개정 과제 수두룩=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내년 12월31일까지 낙태죄 관련 법 조항을 고쳐야 한다. 이 기한까지 법이 개정되지 않을 경우 낙태죄 규정은 전면 폐지된다.


낙태죄 조항에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유남석ㆍ서기석ㆍ이선애ㆍ이영진 재판은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인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이면서, 동시에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대해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까지의 낙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과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산부인과 학계에 의하면 현시점에서 최선의 의료기술과 의료 인력이 뒷받침될 경우 태아는 임신 22주 내외부터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하다고 한다"며 "이렇게 독자적인 생존을 할 수 있는 경우에는 훨씬 인간에 근접한 상태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낙태가 가능한 기간을 22주라고 판단한 것은 아니고 일종의 데드라인으로 임신 22주를 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감안해 구체적인 허용 기간을 정하라고 권고한 것이다.


법 개정은 임신 후 일정기간 내 낙태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임신 초기에는 낙태를 전면 허용하되, 일정 기간 이후에는 여러 사정을 감안해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식이다. 낙태를 허용하는 '임신 주수'를 명확히 규정할 경우 뒤늦게 태아나 임부의 생명을 위협할 의학적 문제가 발견돼도 수술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국회 입법조사처는 "임신 12주의 범위에서는 임부의 의사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는 것을 고려해볼 가치가 있다. 다만 태아가 독립생존할 수 있는 시기(22~24주) 이후에는 임부의 생명·건강에 현저한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없는 한 낙태를 금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의료계에서는 낙태를 허용한 외국 사례를 참고해 임신 초기인 12~16주 이내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 오스트리아는 임신 12주를 기준으로 삼고 영국은 24주 이내 낙태를 허용한다.


김동석 산부인과의사회장은 "12~16주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이 시기 태아가 모체 밖으로 나와도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점과 임부의 건강상 안전을 고려했기 때문"이라며 "초음파 기술 발달 등으로 이 시기에는 무뇌아 등 의학적으로 생존 불가능한 태아나 기형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생명에 위협이 되는 질환이 늦게 발견될 수도 있는 만큼 일률적으로 허용 시기를 정하기 보다는 의학적 판단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낙태 절차와 장소, 방법, 시술자 등 제반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외국은 낙태의 절차·장소·시술자 등에 대한 상세한 규정을 둬 임부가 안전한 환경에서 시술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이혼 숙려제도와 같은 낙태 전 상담제도도 있다. WHO도 안전한 낙태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로 상담을 제시하고 있다.


이 밖에 의사 개인 신념에 따른 진료거부권, 낙태약 처방 방식, 건강보험 적용 여부와 비용 산정, 낙태 사전 및 사후 조치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다.



박혜정 기자 park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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