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자크기 설정

뉴스
[외딴섬 고시원⑦]관심도 정책도 無…사각지대에서 독버섯이 자란다
최종수정 2019.03.14 15:22기사입력 2019.03.14 10:30

주거냐 복지냐, 명확한 정책적 판단 없어…주무부처도 오리무중
다중이용업소, 다중생활시설, 준주택…관련법마다 정의·용도 달라
폐쇄적 운영과 은둔형 빈곤 사이, 위험한 고시원은 급증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청계천 판잣집이나 옥수동 달동네는 사라졌지만 도심 속 빈곤 공간은 여전하다. 근본적인 원인인 가난과 주거난을 해결한게 아니라 도시 공간에서 보이지 않도록 밀어내기만 한 탓이다. 이른바 '빈곤의 비가시성' 효과다. 이들이 밀려나 자리 잡은 고시원은 주거 인권마저 떨어뜨리고 있다. 매년 화재 등의 사고로 인명피해가 발생하지만 시설개선이 이뤄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최근 정부와 서울시가 전국 고시원을 대상으로 시설점검 및 리모델링에 나섰지만 이미 한계는 드러나고 있다. 아직도 확인되지 않은 고시원의 부실한 관리 실태와 개선 방향을 미리 짚어본다. <편집자주>


고시원은 간단히 정의하기 어려운 복합적 공간이다. 관련법 또한 그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면서 파악도, 관리도, 개선도 더딘 상태다.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이 분명하지만, 1970년대 마련된 주택기준에 의해 비(非)주택으로 분류된다. 30여년 간의 인구·사회구조 변화는 적절히 반영되지 못했다. 이 곳에 대해 그나마 틀리지 않을 단 하나의 비유를 찾자면 '사각지대'라는 것 정도다. 정부가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못하는 사이 폐쇄적 운영과 은둔형 빈곤의 틈을 빌어 '독버섯'이 자라고 있다.



명칭·정의·용도 제각각…주택이지만 주택이 아니다

고시원의 공식 명칭은 '다중생활시설'이다. 2014년 3월24일 건축법 개정으로 이렇게 개칭됐지만 ▲다중이용업소법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화재안전 및 예방 관리) ▲건축법(입지제한) ▲주택법(융자지원) 등 관련법마다의 정의와 용도 규정은 제각각이다. 이와 별도로 국토교통부는 2015년 12월4일 '다중생활시설 건축기준'을 제정해 휴게시설의 설치나 복도폭, 배연시설 설치 의무화 등 전에 없던 세부 규정을 마련했다. 그러나 제정 이전부터 운영되던 고시원에는 소급 적용이 되지 않아 화재 취약, 지하층, 좁은 복도, 소음, 창문없는 방 등의 열악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집중적으로 관리할 주무부처가 없을 뿐 아니라 고시원 관련 정책을 주거의 영역으로 볼지, 복지의 영역으로 볼지에 대한 중앙정부 및 지자체의 판단이나 철학도 부재한 상황이다. 고시원 거주자들의 개인상황과 공급 유형 수준이 천차만별인 영향이 크다.

실제로 LH 토지주택연구소와 한국도시연구소, 통계청의 조사 결과 고시원 거주자 가운데 월소득이 400만원 이상이라고 답한 경우가 4.4%에 달했다. 이들은 오피스텔 대비 이동성ㆍ편의성을 고려해 자발적으로 시설이 양호한 고시원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크며 정책적 배려 및 관심의 대상이라고 볼 수 없지만 취약계층과 '고시원'이라는 범주에 함께 묶인다.


폐쇄적 운영과 은둔형 빈곤이 만났을 때…높아지는 '벽'

관련 정책 마련을 위해 최근 진행됐던 고시원 주거실태조사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폐쇄성'이었다. 열악한 고시원일수록 불법건축물이거나 불법증축한 공간을 활용해 운영되는 경우가 많고, 대체로 현금으로 임대료를 받으며 세금탈루가 빈번히 일어난다.


관련 조사를 수행했던 LH 토지주택연구원의 진미윤 연구위원은 "사업주는 정부주도 공간개선 사업의 영역에 들어갈 수 없고, 그걸 원하지도 않으며, 당연히 관련 통계조사에도 부정적"이라면서 "계약서 작성과 전입신고, 보증금이 필요없는 음지의 고시원일수록 빚에 쫓기는 사람, 신용불량자 등의 은거자들이 모여들고 이들 역시 주거환경 개선작업을 거부한다"고 설명했다.


진 연구위원은 "빈집과 달리 사람이 살고있는 고시원의 경우 운영 과정에서 정부 규칙이나 관련법에 어긋난다고 해도 강제적인 폐쇄조치나 철거를 진행할 수 없다"면서 "임시 거처를 마련하지 않고서는 퇴거시킬 수 없는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화재사고 성폭력, 도난 등의 범죄까지도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맞춤형 지원과 규제강화 절실…컨트롤 타워 필요

고시원의 열악한 환경은 늘어나는 수요에 비해 양질의 공급을 보장하는 규제 장치의 부재 탓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1인 가구 증가, 청년 실업과 빈곤, 노인 빈곤 등으로 주류에서 벗어난 제3 주택시장을 찾는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에 대응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고시원업의 등록ㆍ허가요건 강화가 꼽힌다. 소방 안전과 예방 차원의 조건들만 승인 대상으로 볼 게 아니라 사람이 살 만한 요건을 갖췄는지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 연구위원은 '고시원의 공급ㆍ운영관리 실태와 향후 정책방향(2018년 8월)' 논문을 통해 ▲1실의 최소 거주면적 ▲실 규모에 따라 거주 가능한 인원수 제한 ▲거주인원수에 따른 화장실 ▲욕실 등 공용공간의 개수 등 기준마련을 제시했다. 등록ㆍ허가 시 건축물관리대장의 등재 및 관리도 행정적으로 병행해야 한다.


정부 주도의 리모델링 사업과 함께 적정 요건을 준수하지 않는 고시원을 퇴출시키는 강력한 조치도 요구된다. 현행 이행강제금 부과는 효력이 크지 않으므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건물주와 사업주에게도 책임을 묻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 부처간, 민관 및 지자체의 협력과 연계, 재정ㆍ인적 지원이 등이 전제다.


파악되는 주거취약계층을 지원ㆍ관리할 컨트롤타워도 필요하다. 현재 유사 역할을 하는 주거복지재단의 역량을 강화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이밖에 주거비 부담으로 고시원에서마저 밀려날 위험의 취약계층을 위해 소득 자산 수준을 고려해 주거비 부담을 경감할 수 있는 자금지원 체계 또한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는 임대료 영수증 발행 문제로 국토부의 전월세 대출 지원대상에서 배제되는 등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임대차 계약서의 효력을 갖추는 입실계약서 등의 표준양식을 배포해 임대 기간 내 강제퇴거, 선불피해 등을 막는 소비자 보호 장치도 요구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통계의 확보가 필요하다. 실효성있는 주거상향 지원과 양질의 주거환경 조성을 위해서는 이들 거처에 대한 체계적이고 정기적인 실태조사가 선행돼야 한다. 현재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주택이외의 거처 상당수가 거처 유형이 불분명한 '기타'로 분류되고 있다. 이를 일부 분리해 구체적인 항목으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는 고시원은 지자체 및 소방청이 고시원업에 대한 등록 자료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별도로 구분해야 한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스크랩 댓글0
좋은번호가 좋은 기운을! 행운의 숫자 확인 GO!

믿고 보는 추천 뉴스

지금 내 번호 행운 숫자일까?

※아시아경제 숫자 운세 서비스입니다.

놓치면 후회하는 무료 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