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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리포트] "'열심히'로는 미래 못 바꿔"…벼랑끝 탈출구 찾는 청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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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비트코인은 서글픈 탈출구였다

25~34세 남녀 51% "현 상황 벗어날 수 없다"
'노력→성공' 신뢰 붕괴…낙담과 한탕주의만 늘어나

[청년리포트] "'열심히'로는 미래 못 바꿔"…벼랑끝 탈출구 찾는 청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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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민우 기자] "내 미래를 내 힘으로 바꿀 수 없을 것 같은데, 이 방법 말고는 뭐가 있겠어요."

경기도 수원시에서 휴대폰을 팔고 있는 이진서(34ㆍ가명)씨. 적성에 맞지 않는 대학을 중퇴하고 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컴퓨터부품 도매상, 요식업, 보험영업 등 가리지 않고 일했다. 10년 가까이 모은 돈으로 작은 휴대폰 대리점 하나를 차렸다. 가정을 꾸려 금쪽같은 딸도 얻었다. 가족이 주는 행복도 컸지만 가장이라는 책임감은 무거웠다. 손님이 뜸할 땐 새벽까지 대리운전도 했다. 아내와 딸을 위해서라면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지인으로부터 '비트코인' 이야기를 들었다. 단 번에 수천, 수억원을 벌었다는 소문에 마음이 혹했다. "학벌도 기술도 없는데, 지금 같은 돈벌이으로는 나중에 딸이 하고 싶은 것도 지원해주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불법도 아니고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에 솔깃할 수 밖에 없었죠." 대리운전으로 힘겹게 모아둔 500만원이 공중분해 되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청년리포트] "'열심히'로는 미래 못 바꿔"…벼랑끝 탈출구 찾는 청춘들


지난해 한국 사회를 뒤흔든 가상통화(암호화폐) 투자 열풍은 현실 도피를 꿈꾸는 한국 청년들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한국금융투자보호재단이 2017년12월 서울과 6대 광역시 및 경기지역 신도시 등에 거주하는 25~64세 25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상통화 투자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20대 22.7%, 30대 19.3%였다. 청년 다섯 명 중 한 명이 이른바 '도박판'에 자신의 인생을 걸어본 것이다.


간간이 들려오는 성공 소식은 더욱 많은 이들이 꿈에 부풀게 만들었다. 경남의 한 초등학교 전산실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던 김진호(29ㆍ가명)씨는 비트코인 복권에 당첨된 '드문' 주인공이다. 남들보다 조금 이른 2017년 5월, 수중에 있던 300만원을 가상통화 몇 종에 투자했다. 이 돈은 단 5개월만에 17억원이 됐다. 김 씨는 이 돈으로 고급 자동차를 장만하고 아파트도 한 채 구입했다. 그는 "나조차 나를 믿지 않으며 시간을 보내는 둥 마는 둥 살고 있었는데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앞으로도 이런 기회는 다시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물론 일확천금을 노리는 세태가 지금 청년들만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비트코인'에 승부수를 던진 청년들의 심리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1990년대 청년층(1966~1975년생)보다 현재의 청년층(1987~1994년생)은 부모보다 소득이 많은 직업을 얻는 '상승이동' 비율이 12% 포인트가량 줄었다. 반면 부모보다 소득이 적은 직업을 얻는 '하강이동' 비율은 약 8% 포인트 늘었다.


아시아경제가 직접 물어봤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마크로밀엠브레인'을 통해 지난해 12월21~24일 전국 만25~34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절반이 넘는 51.1%가 '아무리 노력해도 현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고 인정했다. 결국 가상통화 광풍은 '더 이상 노력으로 현실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벼랑끝 탈출구였던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를 정치ㆍ경제적으로 혼란스러운 사회의 불안감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곽 교수는 "청년들 사이에서 무엇보다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있다'는 믿음과 희망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싶다"며 "신뢰를 되살려줄 사회구조적 변화가 없다면 우리 청년들의 한탕주의 혹은 자포자기 분위기는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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