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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리포트]출산은 #선택 #포기 #불안 #희생 #자신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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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아이 낳기 두려운 청년
청년 4명 중 1명이 “필요하지 않다”
기성세대가 말한 ‘이기심’보다 이유 훨씬 복잡

[청년리포트]출산은 #선택 #포기 #불안 #희생 #자신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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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설 기자] “우리를 N가지를 포기한 ‘N포 세대’라고 부르면서, 왜 이기적이라고 하나요? 출산도 안 하는 게 아니라 포기한 건데.”
“저는 저의 행복을 위해 선택할 권리가 있고, 지불해야 할 비용이 많은 출산을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에요.”

직장 생활 5년 차에 접어든 송지연(30·여·가명)씨는 “아이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먼저 아이를 낳은 동료들이 겪은 산후 우울증과 육아 스트레스를 겪고 싶지 않아요. 주변 선배들을 보면 아이를 낳은 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떠나는데, 제가 그럴 엄두가 나겠어요? 결혼도 남편과 나의 행복을 위한 선택이었고, 출산도 마찬가지예요.” 송씨가 무심코 고른 ‘필요’라는 단어에는 선택·포기·자신감·불안·권리·행복 등 출산을 둘러싼 복잡한 의미와 시대적 환경 그리고 개인의 생존 전략 등 모든 것이 녹아 있다.


[청년리포트]출산은 #선택 #포기 #불안 #희생 #자신없음

아시아경제는 여론 조사 업체 ‘마크로밀엠브레인’과 지난해 12월21~24일 전국 성인(만 25~34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경제·정치·사회 등 분야에 대한 가치관을 알아보는 여론 조사를 실시했다. 결혼이나 출산과 관련한 설문도 다수 넣었다. 우선 출산을 바라보는 시각을 청년 전체가 공유하고 있는지 혹은 성별에 따라 크게 갈리는지부터 살펴봤다.


‘출산이 필요하지 않다’라고 답한 여성은 1000명 중 332명이었다. 남성은 224명이 그렇게 답했다. ‘출산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라고 응답한 여성도 164명으로 66명인 남성보다 훨씬 많았다. 출산을 '감행'하기 어려운 경제적 장애는 남녀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겠으나, 출산이 가져올 경제적·비경제적 부담이 여성에게 더 집중돼 있음을 알 수 있다. 혹은 최소한 여성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건 이전 세대와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이 출산을 선택하면 양육은 대부분 여성의 몫이고 본인의 경력도 단절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야 한다”며 “여성들은 이에 무의적으로 저항하는 것이고 이는 여성들의 생존 전략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결혼 4년 차를 넘긴 김진호(34·가명)씨도 자녀를 낳을 계획이 없다. 원래 결혼하면서 생긴 빚을 다 갚게 되는 4년6개월 후에 아이를 가질 생각이었지만 이 계획은 ‘무기한’ 연기됐다. 작은 집을 하나 마련하면서 수천만 원의 빚이 다시 생겼기 때문이다. 김씨는 “(아이를 낳아 키우려면) 부부 둘 중 한 명의 월급을 다 쏟아부어야 하는데, 이 상황에서 아이를 낳을 자신이 없다”고 했다. 아이가 생기면 나의, 우리 부부의 그리고 아이의 삶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 생각하기 어렵다고 김씨는 말했다.


같은 조사에서 청년들은 ‘출산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묻는 항목에 32.1%가 ‘남들만큼 잘 키울 자신이 없어서’라고 답했다. 남성 30.4%, 여성 33.5%가 이 답을 꼽았다. 두 번째로 많은 답은 ‘나 자신 또는 부부 간 생활이 더 중요해서’로 24.4%(남 20.3%·여 27.9%)였다. 이어 ‘소득이 적어서’ 21.9%(남 26.1%·여 18.3%), ‘직장이 안정적이지 못해서’ 8.8%(남 12.1%·여 5.9%), ‘아이를 좋아하지 않아서’ 3.5%(남 2.9%·여 3.9%)의 순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돈이 없으면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사회에서 남성이든 여성이든 괜찮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점점 약해지니 ‘잘 키울 자신이 없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


근본적으로 결혼과 출산은 취업의 성공 여부 그리고 고용의 질과 연계된다. 지난 9일 통계청이 내놓은 연간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취업자 수(2682만2000명)는 전년보다 9만7000명 늘어나는 데 그쳐 2009년(-8만7000명) 이후 최저치였다. 소득 수준이 낮거나 복지가 좋지 않은 직장에 다닌다면 결혼과 출산 둘 중 하나 혹은 둘 모두를 포기하기 쉽다. 이런 상황에서 기성세대가 저출산 현상을 놓고 ‘현재를 즐기고 살자’라는 이기심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에 청년들은 큰 반감을 느낀다. 올해 결혼을 앞둔 직장인 이진우(29·가명)씨는 “아이를 낳고 안 낳고는 국가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영역”이라며 “여자친구에게 결혼해도 아이는 낳지 말자고 했다. 둘 중 하나는 무조건 커리어를 희생해야 하는데 나도, 여자친구도 그러고 싶진 않다”고 했다.




이설 기자 sseo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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