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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백년가게]꽃돗자리 결 따라 40년 버틴 고려화문석…"한 점 한 점이 작품"
최종수정 2019.04.09 10:10기사입력 2019.04.08 14:48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30년 이상 도ㆍ소매, 음식업을 영위하는 소상인 중 전문성, 제품ㆍ서비스, 마케팅 차별성 등 일정 수준의 혁신성이 있는 기업을 발굴해 '백년가게'로 육성하기로 했다. 대(代)를 이어가며 100년 전통을 자랑할 한국의 백년가게를 소개한다.


[한국의 백년가게]<25> 인천 강화 고려화문석


고려화문석 이경옥 대표가 남편인 고(故) 정택용씨의 유작 '도약 96'을 펼쳐 소개하고 있다. 이 작품은 1996년 '전국공예품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화문석(花紋席)은 한 점 한 점이 모두 작품이에요. 이리로 와서 잘 좀 살펴보세요."


지난 2일 인천 강화군 강화풍물시장에서 만난 이경옥 고려화문석 대표(59)가 기자를 잡아끌었다. 얼마전 주문한 새 화문석 한 점을 받아 어깨에 짊어지고 가게로 막 들어온 참이다.

이 대표가 화문석을 진열대에 쫙 펼치자 매끈하게 다듬어진 왕골 한 가닥 한 가닥이 그야말로 생생하게 빛났다. 왕골을 일일이 말리고 손질해서 오로지 수작업으로 곱게 엮어 완성하는 꽃돗자리. 이렇게 귀한 걸 어떻게 깔고 앉고 어떻게 이 위에 드러누울까 싶었다.


고려화문석은 1980년에 강화 중앙시장에서 문을 열었다. 화문석 가게 수 십 곳이 강화 곳곳에서 성업하던 시절이다.


"5일장이 열리던 때는 장날마다 새 화문석이 3000점도 넘게 쏟아져나왔어요. 한 달에 2만 점 가까운 화문석이 시장에 풀린 셈이죠. 소매상들이 좋은 상품 차지하려고 경쟁을 심하게 하다보니 경매까지 열렸어요. 오래된 이야기네요."


고려화문석이 버텨온 40년 동안 강화 화문석의 공급량은 '정말인가' 할 만큼 크게 줄었다. 지금은 가게별로 한 달에 몇 점, 많아야 십 수 점밖에 공급을 못 받는다. 1980~1990년대를 풍미한 장인(匠人)들이 대부분 60~70대로 연로해 생산성이 많이 떨어지고 후진 양성이 쉽지 않은데다 찾는이도 줄어 시장이 오그라들었다.


풍물시장에 터잡은 화문석 가게는 고려화문석을 포함해 5곳 뿐이다. "수요가 줄어든 만큼 공급도 줄어서 가격이 유지된다"는 이 대표의 설명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십 년 이십 년 전에 저희 가게에서 화문석을 구입한 손님이 연락을 주시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아직도 장사를 하고 있을까' 싶어서 번호를 수소문해 전화를 걸어보시는 거죠. 그런 분들은 반가운 마음에 며칠 안 지나서 가게로 찾아와 화문석을 사 가시는데, 그럴 때면 '그래도 이렇게 버티길 잘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보람도 느끼고 그럽니다."


구성진 말투로 옛이야기를 들려주던 이 대표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저 깊숙한 곳에서 비닐로 한 번, 천으로 또 한 번 포장한 화문석 한 점을 꺼내와 펼쳤다. 용이 날아오르려 하는 형상을 수놓아 만든 것으로, 1996년 '전국공예품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역작이다.


작품명은 '도약 96'. 어느 한 귀퉁이도 허투루 내버려두지 않았다. 표구만 하면 어디에 걸어둬도 손색없는 예술품으로 순식간에 탈바꿈할 것 같았다.


제작자는 이 대표의 남편이자 고려화문석 창업자인 정택용씨다. 젊어서부터 강화 화문석계를 주름잡았다고 한다. 그는 11년 전에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정택용씨의 유작(遺作)이다. 크기가 다른 1점을 포함해 모두 2점이 남아있다.


이 대표는 "유작이니까 제가 오래오래 간직하는 것도 좋겠지만, 화문석의 예술적인 가치를 알릴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면서 "작품을 귀하게 여길 수 있는 분이 계시면 판매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펼쳤던 작품을 도로 마는 동안 흠집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싶어 불안했다. 가게를 지나던 이들 서넛이 발길을 멈추고 작품을 한참 구경했다.


강화군은 화문석의 명맥을 잇고자 '화문석 후진양성 프로그램' 등이 담긴 조례를 만들어 지원하고 있다. 이 대표는 "생산 규모는 줄었어도 강화 화문석은 건재한다는 걸 많은 소비자가 인식해주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려화문석 이경옥 대표가 1996년 8월30일자 강화신문 지면(왼쪽)을 펼쳐 소개하고 있다. 남편인 고(故) 정택용씨의 작품 '도약 96'이 전국공예품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담겨있다. 그 해 발간된 전국공예품경진대회 안내책자(오른쪽)에도 작품이 담겨있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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