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백년가게]"정육점 아니라 '사랑방'입니다"…업력 40년 제천식육점
최종수정 2018.11.20 14:05기사입력 2018.11.20 14:00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30년 이상 도ㆍ소매, 음식업을 영위하는 소상인 중 전문성, 제품ㆍ서비스, 마케팅 차별성 등 일정 수준의 혁신성이 있는 기업을 발굴해 '백년가게'로 육성하기로 했다. 대(代)를 이어가며 100년 전통을 자랑할 한국의 백년가게를 소개한다.

[한국의 백년가게] ⑪제천식육점
2대째 40년 넘게 고기 장사

오래된 신뢰로 90%가 단골손님

이윤 덜 남기고 직거래 해 마트보다 가격 저렴

박용준 제천식육점 사장과 부인 김춘자 씨가 가게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제천=아시아경제 이은결 기자] "우리 집은 정육점이 아니라 '사랑방'이에요. '고기 한 근 주세요, 얼마예요' 하고 가는 게 아니라 앉아서 차도 마시고, 집안 얘기도 하다 가고. 마트는 깎아주는 맛도 없고 삭막하잖아요."
충북 제천 중앙로에 위치한 제천중앙시장에서 '정(情)'으로 40년 넘게 고기 장사를 해온 박용준 제천식육점 사장(59). 그는 고기만 팔지 않고 마음을 나눈 덕에 2대째 손님들로부터 '우리 집' 같은 믿음을 얻고 있다.

제천식육점을 찾아오는 손님은 90% 이상이 단골이다. 1970년대 선친이 차린 정육점 때부터 이어진 손님들이다. 박 사장은 '전통시장은 다 그렇다'라고 하지만 제천식육점만의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사람 냄새가 가득하다. 가게를 함께 운영하는 부인 김춘자(58)씨 덕이 크다. 창밖으로 손님이 보이자마자 어찌나 살가운지, 단골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김씨는 "손님들 만나서 떠드는 게 정말 재밌다"며 "저를 보고 많이들 오신다"고 너스레를 떤다.

제천식육점에서만 고기를 산다는 한 손님은 "이 집이 냄새도 안 나고 맛있다"고 치켜세웠다. '사랑방'답게 가게 한편에는 뜨듯한 마루가, 한가운데에는 둘러서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넓은 탁자가 있다.

대형마트와의 가격 경쟁에서도 뒤지지 않는다. 제천식육점은 신선한 한우를 일반 마트보다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고 있다. 1등급 암소 등심의 경우 한 근(600g)에 대형마트에서는 5만원을 호가하지만 제천식육점에서는 3만5000~4만원대로 싸다. 일반 불고기도 마트에서는 한 근에 2만5000원가량, 제천식육점에서는 2만2000원 정도로 3000~4000원 차이가 난다.



고기를 낮은 가격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직거래를 통해 중간 유통비를 절감하기 때문이다. 박 사장은 인근 농촌에서 소를 직접 구입해 도축을 맡기고 있다. 대량 구입되는 돼지의 경우 소매상이 직거래하기 어려워 유통업자를 통해 가공육으로 떼 온다.

유통비를 절감하고 인건비가 안 든다 하더라도 이익을 덜 남기기에 가능한 일이다. 박 사장은 "모든 전통시장이 어렵다. 품질과 신뢰를 무기로 삼아야 그나마 숨 쉬고 살 수 있다"며 "그러려면 내게 남는 이윤을 줄여서라도 고객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직하게 장사하다 보니 대형마트의 골목상권 잠식에도 부침 없이 견뎌올 수 있었다. 배송 주문도 많아 명절 때 선물용으로 600만원어치를 주문하는 손님도 있다.

박 사장은 "선친이 운영하실 적부터 오셨던 분들이 다른 건 다 마트에서 구입해도 정육만큼은 따로 구입하러 여기까지 온다. 오래된 만큼 신뢰가 쌓인 것"이라며 "그렇게 찾아오는 고객들이 가게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정육점만 해서 자녀 셋을 모두 대학원에 보내고 출가시킨 것이 박 사장의 큰 자부심이다.

하지만 잘나가던 정육점도 7년 전 시장의 화재로 주저앉을 뻔했다. 박 사장은 "가게 근처에서 화재가 시작돼 우리 집이 가장 큰 피해를 봤다. 영수증 한 장 남김 없이 전소됐다"고 돌이켰다. 설을 앞둔 1월 말 화재가 나 장사는커녕 1억원이 넘는 손해를 봤다고 한다.

가게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까지 두 달이 걸렸다. 그래도 손님들의 발길은 끊기지 않았다. 소문을 내 새 손님을 데려오고, 직접 짜온 들기름이며 담근 김치며 바리바리 갖다주는 손님들도 있다. 한 지인은 화재 때 불타버린 목재 금고를 비슷하게 만들어다 주기도 했다. 주인장 내외가 좋은 고기를 주고, 깎아주고, 더 주며 '진심 장사'를 하니 손님들도 마음으로 답례해온 것이다.

명맥을 이어오고는 있지만 여건은 나날이 어렵다. 박 사장은 "전통시장이 너무 침체했다. 대형마트에 고객을 빼앗겨 아무리 열심히 해도 간신히 먹고산다"고 토로했다. 그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어떻게든 장사가 되려면 정직하게 품질과 신뢰로 경쟁력을 찾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백년가게 사업이 어려운 소상공인들에게 보탬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은결 기자 le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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