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백년가게]"망하든 흥하든 싸고 맛있게…그게 내 신조"
최종수정 2018.09.21 09:20기사입력 2018.09.20 11:30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30년 이상 도소매·음식업을 영위하는 소상인들 중 전문성, 제품·서비스, 마케팅 차별성 등 일정 수준의 혁신성을 가진 기업을 발굴해 '백년가게'로 육성하기로 했다. 대(代)를 이어가며 100년 전통을 자랑할 한국의 백년가게를 소개한다.<편집자주>

[한국의 백년가게]②대림동 삼거리 먼지막 순대국
1959년 개업…가업승계 후 25년간 가격인상 단 네차례
순댓국 5000원 고집…"퍼주기 바빴던 부모님 뜻 이을 것"

서울 대림동 삼거리 먼지막 순대국 김운창 사장


[아시아경제 이은결 기자] "500원 올렸는데 아니다 싶었어. 돈 벌자고 하는 장사가 아니라 '아들이 그래도 잘 지켰네' 소리 들으려고 하는 거지. 솔직히 장사꾼은 못 돼."
서울 대림동에서 1959년 개업해 2대째 이어온 '삼거리 먼지막 순대국'의 김운창 사장(66·사진)은 잇속을 포기한 장사꾼이다. 푸짐한 순댓국 한 그릇에 5000원을 고집한다. 이조차 가게를 물려받은 25년 동안 네 차례 올린 가격이다. 장사 신조는 싸고 맛있게. "망하든 흥하든 그건 우리 문제"라고 한다.

김 사장의 부친은 1957년 대림시장에서 국수를 팔다 동네 사람들의 제안으로 지금의 삼거리에서 순댓국집을 시작했다. 당시 한 그릇 가격은 150환. 1962년 화폐개혁으로 환에서 원 단위로 바뀌면서 30원이 됐다. 한 세대가 흘러 2011년부터 현재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착한 가격이 다가 아니다. 순대, 머리 고기, 내장은 모두 당일 떼어 오는 생고기를 직접 손질해 준비한다. 육수는 사골로만 끓이지 않고 고기와 함께 끓여 깊은 맛을 낸다. 김 사장은 "다른 순댓국집과 달리 고기를 같이 삶아서 국물에 콜라겐이 많다. 포장해가면 하루 만에 응고된다"고 말했다.

먼지막 순대국 식당의 푸짐한 순댓국과 안주

가게에서 담그는 겉절이와 깍두기에도 김 사장의 자부심이 녹아있다. 중국산 고춧가루는 색깔도, 맛도 잘 안 난다며 경기도 방앗간에서 고춧가루를 공수해온다.

안주에는 흔히 볼 수 없는 '새끼보'까지 들어간다. 돼지의 태반에 해당하는 새끼보는 영양가가 많지만 고가라 잘 쓰지 않는 부위라고 한다. 도축 사정에 따라 구하기 어려워 안주 대(大)자에만 제공하고 있다. 역시 푸짐한 안주 대자의 가격은 1만2000원.

남는 게 있을까 싶지만 김 사장의 사전에 가격인상은 없다. "가격을 올릴 바에는 가게 문을 닫겠다"는 각오다. 종업원도 먹여 살려야 한다. 먼지막 순대국 집에서 최저임금, 물가 상승은 다른 세상 이야기다. 그러다 보니 내 집, 내 건물도 없단다. 가게도 세 들어 하는 장사다.

김 사장은 사실 가업승계를 크게 바라진 않았다. 그는 "노인네가 칠순돼서 못 한다고 손드니 어쩌겠나. 그때부터 25년째 꽉 잡혀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참으면 화목이 찾아온다'는 '인중유화(忍中有和)' 넉자를 큼지막이 걸어놓았다. 김 사장은 "5000원을 사수하는 건 계산적으로 따지면 장사가 아니다. 아내와 늘 그만두자고 얘기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래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부모가 닦아놓은 가게이기 때문. 60년 명맥을 이어온 것도 춥고 배고픈 시절 '퍼주기 바빴던' 모친과 부친의 손님들 덕분이다. 걸어둔 글귀 말마따나 참아서 좋은 일이 오는지 2013년에는 서울시 미래문화유산으로, 올해에는 백년가게로 선정됐다.

먼지막 순대국 식당의 가격변동표와 차림표. 김운창 사장의 부친이 1959년 개업했지만 공증서가 남아있지 않아 이번 백년가게 사업에서는 1976년 구청에서 받은 식품업객업소등록증에 따라 41년 업력만 인정받았다.

가게 나이가 환갑에 가까운 만큼 희로애락도 많다. 자식들 부축받아 온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순댓국 한 그릇 잡수고 나갈 때면 허리를 펴고 간단다. 부모님 손잡고 왔던 아이들은 중년이 돼서도 찾아 온다. 김 사장은 "부모 시절 손님들이 '지켜줘서 고맙다'고 한다. 그런데 문을 닫아버리면 나를 욕하지 않겠나. 그 각오로 하는 거"라고 소탈하게 말한다.

방송을 타다 보니 이제는 소문날 만치 난 유명 맛집이다. 지난해 한 인기 프로그램에 나온 뒤에는 '호되게' 당했다. 다음 날 여느 때와 같이 하루 물량만 준비해놨다가 아침 11시에 고기가 다 떨어진 것. 김 사장은 "이튿날에는 김치가 떨어져 문을 닫았다. 수m 줄을 서는데, 삼일째에는 주방 양쪽에서 고기를 삶아도 밀려오는 손님을 받기 부족했다"고 돌이켰다.

김 사장은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아들이 그래도 잘 지키더라' 이 소리 듣고 싶은 거지 그 외엔 바라는 게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미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았지만 김 사장은 "대물림한 가게를 먹칠하지 않도록, 몸이 허락할 때까지 가게를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먼지막 순대국 식당 외관. 목재 조각상은 모두 김운창 사장의 작품이다.


이은결 기자 le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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