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초동여담] 투명인간

시계아이콘읽는 시간57초

[초동여담] 투명인간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영결식이 진행된 가운데 국회 청소 노동자들이 손을 모으고 도열해 고인을 애도하는 모습.
AD


[아시아경제 서소정 기자] 데이비드 즈와이그는 저서 '인비저블'을 통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주목했다. 미국 주간 잡지 '뉴요커'에서 사실검증 전문가로 활동했던 자신의 경험을 통해 '보이지 않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존재'의 중요성을 역설한 이 책은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화제가 된 바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뉴요커 등 해외 유수 언론에는 사실검증팀이 별도로 존재한다. 이들은 기자가 쓴 기사를 꼼꼼히 검토하고 사실에 적확한지를 세밀히 점검하는 일종의 '팩트체커'다. 이들의 검증을 통해 기사의 완성도는 높아진다. 하지만 기사에는 기자의 이름만 있을 뿐 이들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 인비저블은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기 전까지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하면서 조직이나 사회에 '소금 같은 존재'가 되는 이들이다. 결국 '숨은 공로자'인 인비저블의 역할이 조직과 사회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투명인간'이 화두다. 고(故)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어록이 회자되면서다. 노 원내대표는 2012년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연설에서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투명인간'에게 손을 내미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대한민국 진보정당이 투명인간처럼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는 정당'에 불과했다고 반성하면서 앞으로는 우리 사회의 투명인간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노 원내대표의 마지막 길에는 우리사회의 투명인간들이 함께했다. 국회에서 노 원내대표의 영결식이 진행된 가운데 국회 청소 노동자들은 손을 모으고 도열해 고인을 애도했다. 국회에서 청소 노동자로 일하며 처음으로 '인간 대접'을 받았다는 한 청소부는 깊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2016년 국회사무처가 업무 공간이 부족하다며 청소 노동자들의 휴게실을 비워달라고 하자 "만약 일이 잘 안 되면 정의당 사무실을 같이 쓰자"고 말했던 노 원내대표의 얼굴이 떠올라서다. 평소 노 원내대표의 열렬한 지지자가 아니었던 소시민들도 그의 급작스러운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노회찬의 죽음이 우리 정치에 새로운 숙제를 남기고 있다. 정의당은 못다 이룬 진보정당의 꿈을 이루기 위해 쇄신해야 하고, 절체정명의 위기에 빠진 보수 야당은 민심을 되돌릴 지표를 다시 세워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ㆍ주 52시간' 역풍을 맞은 문재인 정부도 '현명한' 속도 조절을 요구받고 있다. 우리 사회는 수많은 투명인간의 힘으로 굴러간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투명인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정치를 기대해본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