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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골목길]이태원 앤틱가구거리
최종수정 2019.01.11 16:23기사입력 2019.01.11 11:00

[그림=오성수 화백]

길가에 놓인 고풍스러운 의자와 가구에 이끌려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천사상과 오르골, 동화 속 주인공 모습의 조각상까지 마치 동화 속 세계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동화 속 중세 유럽 골목 속으로…" 원조 골동품 거리
미군이 내놓은 가구 매매로 시작, 유럽·미국 등 골동품상 몰려와


[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서울시내 한 가운데 마치 중세시대 유럽 한 도시의 골목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곳이 있습니다. 골목을 지키는 듯한 사자상과 천사상, 분수대를 구경하다 가게 안으로 이끌려 들어가면 현실을 벗어나 동화 속 세계로 갑자기 워프한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듭니다.


영화에서나 보던 낡은 타자기와 축음기, 회전목마와 오르골 소리를 들으며 한참 동화 속을 거닐다보면 다시 현실로 나가기가 싫어집니다. 이태원역에서 보광동 방면으로 번화한 상가들을 벗어날 만큼 걷다보면 길가에 놓인 고풍스러운 의자와 가구들, 이색적인 장식품들이 하나둘씩 눈에 띕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골동품 가구 매매를 시작했던 이태원 앤틱가구거리입니다.

이태원 엔틱가구거리의 일부 점포는 손님들이 방문하는 것을 꺼리기도 합니다. 신기해하며 돌아보다 값비싼 골동품을 망가지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동화 속 세계로 워프하다=이태원 앤틱가구거리는 1960년대 인근 미군부대에 근무하던 군인들이 본국으로 귀환하면서 사용하던 가구들을 이 곳에 내놓으면서 시작됩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한국에 정착하게 된 미군들은 본국에서 사용하던 가구들을 그대로 가지고 들어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그들의 눈에 들만한 마땅한 가구를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회전목마와 커다란 벽시계, 하늘로 날아 오르려는 자동차도 구경할 수 있는 이태원 엔틱가구거리에서는 금방 동심에 빠져 듭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당시 이태원에서는 미군 부대에서 나온 밀가루나 커피, 통조림 등의 물물교환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는데 그 때 가구들이 함께 시장에 나온 것이지요. 미군들이 떠나면서 내놓은 가구들의 가치를 알게 된 가구상들이 하나둘 점포를 냈고, 외국인들과 앤틱 가구나 소품들의 정보에 대해 교류하면서 유럽과 미주, 아시아 등에서 골동품상들이 모여 들면서 국내 최고의 앤틱가구거리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 곳 상인들은 미주나 유럽에서 '앤틱(Antique)' 가구나 '빈티지(Vintage)' 소품들을 구해옵니다. 유럽의 소도시에서 열리는 경매에 직접 참여해 가구나 그릇, 장식품 등을 사오기도 하고, 벼룩시장에 가서 발품을 팔기도 합니다. 직접 트럭을 몰고 유럽의 한적한 시골을 누비며 낡은 물건을 구매하기도 하고, 버려진 물건을 들여 오기 위해 현지 관공서와 협상도 벌입니다. 또 현지에 고용된 직원이 다양한 방법으로 물건을 입수해 정기적으로 보내주기도 합니다.

낡은 여행가방들과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축음기. 요즘은 이런 소품들이 영화나 광고에 대여해주고 수익을 올리기도 합니다. 김종화 기자 justin@


낡은 타자기·축음기·오르골부터 고풍스러운 의자 등 가구까지
해외 경매·벼룩시장서 발품 등 다양한 경로로 물건 들여와


◆앤틱 100년 넘은 골동품='앤틱'은 사전적인 의미로 골동품이나 고대 유물, 고풍스러운 물건 등을 일컫습니다. 오래도록 소장할 수 있는, 당시대의 희귀하고 아름다운 물품, 특별한 장인이 각별한 의지를 담아 제작한 제품 등 수집할 가치가 있는 물품을 품을 말합니다. 원칙적으로 제작 이후 최소 100년 이상은 지나야 엔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빈티지'는 와인의 생산 연도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다가 패션용어로도 함께 사용되면서 익숙해졌습니다. 원래 25년이 넘지 않는 물건들을 지칭하는 용어인데 주로 1960~79년 사이에 제작된 물품을 빈티지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보다 앞선 1950~1959년 사이 제작된 물품은 빈티지라고도 하지만 '레트로(Retro)'라고 통칭합니다.


요즘은 100년이 안된 물건은 뭉뚱거려서 빈티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다만, 앤틱이 빈티지보다 반드시 가격이나 예술적 가치가 더 높은 것은 아닙니다. 가격이나 가치는 수요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오래된 골동품도 사려는 사람이 없으면 빈티지보다 가격이 낮게 형성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뒷돈 돌던 시절' 전성기 원가 10배 받기도=이 곳의 전성기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였다고 합니다. 이른바 '뒷돈'이 많이 돌던 시절입니다. 당시에는 '부르는 게 값'이었습니다. 인사동에서 도자기와 고미술품 등의 골동품이 유통됐다면, 이태원에서는 외국산 명품이 주된 품목이었던 것이지요.


당시 유럽에서 1000만원에 들여온 작은 장식장이 1억원 넘는 가격에 팔려 나가기도 했고, 몇억 원대 골동품 가구거래는 예사였다고 합니다. 길가는 고급 승용차와 트럭들로 하루종일 북새통을 이뤘고, 트럭 운송조합만 2곳이나 이 곳에 자리잡고 영업할 정도로 번성했습니다.

예전처럼 초고가의 물품이 거래되지는 않지만 나름 규모있는 거래는 여전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빅토리아시대 장식장이 5000여만원, 마이센 접시 하나가 3000여만원에 팔려 나가기도 했습니다. 한창 때는 수억원대 가구 거래도 예사였습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가구는 낡을수록 잘팔렸는데 영국 튜더왕조의 가구를 재현한 '리프러덕스' 등 전통의 유럽 브랜드가 인기를 끌었고, 도자기 중에서는 1709년 독일 작센 마이센가마에서 생산되기 시작한 '마이센' 그릇이나 찻잔은 없어서 못팔 정도였습니다. 그외 1759년 설립된 영국의 웨지우드 자기류 등도 인기가 있었는데 골동품을 자산화하려던 기업가나 정치인, 연예인 등이 주요 고객이었습니다.


한때 수억원대 가구 거래도 됐지만 지금은 빈티지 소품 렌털점이 주류
가끔 굵직한 가래도…충무로 다음으로 영화인들이 많이 찾는 곳


이 곳 점포 중에는 손님이 매장에 불쑥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는 곳도 있습니다. 몇몇 단골손님에게 한 달에 1~2건 정도만 팔아도 수익은 충분한데 구경삼아 들어온 실속없는 손님들이 물건을 구경하면서 만지거나 넘어뜨려 깨거나 망가뜨리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김한구 이태원 앤틱가구협회 회장은 "요즘은 예전 만큼 고가에 물건을 사는 사람이 줄었지만 단골손님은 끊이지 않고 있다"면서 "지금 100여개 점포가 영업하고 있는데 고가의 앤틱가구나 자기를 파는 곳과 빈티지 소품을 렌탈하거나 판매하는 곳으로 나눌 수 있다. 이들은 영업방식이 서로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영화나 광고에 등장했던 소품들은 기억했다가 찾는 손님이 있습니다. 영화나 광고의 장면을 이야기하면서 그 물건을 꼭 찾아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영화·광고 소품으로 인기=사회가 투명해지면서 큰손들이 점차 사라졌습니다. 현금 대신 골동품을 갖고 있어도 필요할 때 음성적인 거래로 현금을 마련하기 어려워진 만큼 예전처럼 초고가의 물품이 거래되지는 않지만 나름 규모있는 거래는 여전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빅토리아시대 장식장이 5000여만원, 마이센 접시 하나가 3000여만원에 팔려 나가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고가 앤틱가구·자기를 파는 점포보다 빈티지 소품을 렌탈하는 점포가 주류입니다. 2003년 '이태원 앤틱가구협회'가 꾸려져 매년 10월 '앤틱 페스티벌'과 매주 '주말 벼룩시장'을 열고 이태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습니다. 소수의 사람들만 영위할 수 있는 고가의 골동품에 대한 수요가 줄고, 저렴한 가격에 인테리어나 애장품으로 빈티지 소품들을 활용·소장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앤틱이나 빈티지 가구·소품을 영화사나 광고대행사에 렌탈해주고 얻는 수익은 짭잘합니다. 가구의 경우 1회 렌탈에 15만~20만원, 찻잔 하나에 2~3만원의 렌탈비용을 받습니다. 2015년 개봉해 관객 1000만명을 돌파했던 영화 '암살'에 사용된 조명과 의자, 그림, 가구 등이 모두 이 곳에서 렌탈해준 것인데 렌탈비용만 3억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태원 앤틱가구거리 지도. 이영우 기자 20wo@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2분만 걸으면 이태원 앤틱가구거리의 초입입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뚜레쥬르나 아웃백 등의 광고촬영 현장에 접시나 나이프, 테이블 등이 렌탈되기도 하는데 광고나 영화에 나왔던 소품들은 기억했다가 이 곳으로 다시 찾으러 오는 손님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 손님들은 상당히 비싼 가격에도 망설임 없이 사갑니다.


충무로 다음으로 영화인이나 광고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 바로 이곳 이태원 엔틱가구거리입니다. 지하철을 타면 6호선 이태원역에 내려서 4번 출구 뒷쪽으로 가면 '앤틱가구거리' 표지판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버스는 100번, 406번, 143번, 740번, 401번을 이용해 '용산구청·크라운호텔'에서 내려 보광동 방면으로 2분만 걸으면 앤틱가구거리 초입입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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