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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골목길]철공소 옆에 핀 예술촌, '문래동'
최종수정 2018.12.07 13:42기사입력 2018.12.07 13:37

영등포구 문래역 7번출구에서 대형마트와 아파트 단지들을 바라보며 죽 걸어가다보면, '문래창작촌'이라고 적힌 팻말과 함께 그 옆에 서있는 괴상한 조형물들과 만날 수 있습니다. 철공소에서 쓰던 기계나 부품들로 만들어진 조형물들은 뭔가 독특한 분위기를 주고 있죠. 여기서 좀더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아주 희한한 골목 하나와 만나게 됩니다. 대단지 아파트촌 사이에 외딴 섬처럼 있는 이 골목에는 낡은 철공소들과 그 바로 옆에 입주한 카페, 식당, 화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한국의 골목길]철공소 옆에 핀 예술촌, '문래동'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옆에서는 용접공이 안전마스크를 쓰고 쇠를 용접하고 있는데, 그 옆에는 오밀조밀 예쁜 벽화와 조형물들을 전시하고 주변을 꽃으로 장식한 카페가 있습니다. 마치 철공소 단지 안에 카페나 화랑을 흩뿌려놓은 듯한 풍경은 이 골목만의 특징입니다. 흔히 재개발 등에서 밀려나 남게 된 낡은 골목에 도시재생사업 등을 통해 새로운 문화시설 등이 들어오면, 이전 단지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발생하지만, 이곳은 현재 모든 곳이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특이한 분위기를 찾는 사진 애호가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사진이 많이 퍼지기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죠.


물론 처음부터 문래동이 이렇게 특이한 동네는 아니었습니다. 조선시대까지는 그저 한강 상류의 모래가 퇴적되는 곳이라 하여 '모래말'이라 불렸고, 이를 조정에서 한자식으로 바꿔 '사촌리(沙村里)'라 기록했었죠. 이곳에 본격적으로 사람이 모여살기 시작한 것은 1936년 일제강점기 때부터였습니다. 이듬해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진 이후부터 이곳은 옆 동네인 당산동과 함께 중국 전선으로 군수물자를 보내기 위한 후방 산업시설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한강 근처에 공장을 세우고, 배를 이용해 곧바로 서해를 통해 산둥이나 상하이 일대로 군수물자를 보내기 위해 이곳에 공장을 지은 것이죠.

[한국의 골목길]철공소 옆에 핀 예술촌, '문래동'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한국의 골목길]철공소 옆에 핀 예술촌, '문래동'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이때 당산동에는 주로 탄약공장들이, 이곳에는 군복을 만들기 위한 방직공장들이 지어졌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실이 많이 나오는 동네라는 이유로 일본인들은 이곳의 이름을 '사옥정(絲屋町)'이라고 바꿔버렸습니다. 해방 직후 1949년까지 사옥동으로 불리던 이곳은 1952년부터 '문래동(文來洞)'이라는 지명을 얻게됐죠. 지명의 어원을 두고 옛날 실을 뽑을 때 쓰던 '물레'가 많은 동네라서 문래동이 됐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와 함께 고려시대 목화 솜을 처음 중국에서 밀수해오셨다는 문익점 선생이 살았다는 전설 때문에 문래동이라 붙었다는 설도 있죠.


두가지 설이 모두 결국 실 뽑던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온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문래창작촌 옆 문래근린공원에는 이 동네를 상징하는 거대한 물레 조형물이 세워져있기도 합니다. 이 문래근린공원은 해방 후 1950~60년대 사이 한국사의 역사적 사건의 장소가 되기도 했던 곳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킬 당시 지휘부로 사용했다는 옛 6군관구 사령부가 위치했던 곳으로 유명하죠. 그래서 지금도 공원 한쪽에 박 전 대통령의 흉상이 남아있고, 공원 곳곳에도 옛 군 기지의 흔적들이 남아있습니다.


[한국의 골목길]철공소 옆에 핀 예술촌, '문래동'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한국의 골목길]철공소 옆에 핀 예술촌, '문래동'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한국의 골목길]철공소 옆에 핀 예술촌, '문래동'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1960년대 이후부터 문래동은 방직공장 단지에서 철강산업 단지로 변모하게 됐습니다. 원래 청계천 일대 있던 철공소들이 이곳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철강단지가 되었습니다. 1980년대까지는 규모가 큰 철강업체들이 줄지어 들어왔고, 철재상들도 넘쳐났다고 하네요. 철판을 실은 화물차들이 끝없이 보일 정도로 호황이었고, 밤낮 기계음과 용접 냄새로 정신없던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철강업체들은 급격히 줄었고, 값싼 중국산 부품에 밀려난 철공소들은 서울에서 밀려서 지방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현재 남은 문래창작촌 일대 철공소를 제외하고 대부분 이 동네에서 철수했습니다. 재개발 열기를 타고 우후죽순 솟아난 아파트 단지나 대형마트들이 들어서며 대규모 주거단지로 변화하게 됐습니다.


버려진 외딴 섬처럼 있던 이곳은 지난 2010년 서울문화재단이 문래 예술공장을 세운 이후 각종 벽화와 조각품이 생겨나면서 또다시 변모하게 됐습니다. 최근에는 사진작가나 블로거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명소로 자리 잡게 됐죠. 예술인 300여명이 모여 작업실 100곳에서 활동하는 문래동은 전국에서 단일지역으로 예술인들이 가장 밀집한 곳으로 손꼽히기도 했습니다. 이곳은 홍대와 합정동 일대의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해 온 예술인에게 새로운 작업공간이 됐죠. 철공소들의 남는 지하공간에 작업실이 들어서면서 철공단지와 예술촌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됐습니다.


낮 동안에는 용접이나 쇠깎는 소리로만 가득하던 이곳은 저녁 6시 이후로는 조명과 음악이 180도 변합니다. 철공소 골목에 옛 공장을 개조해 만든 수제맥주집인 '올드문래' 일대는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손님들로 북적이죠. 퇴근길 직장인들이 회식이나 연인들 데이트장소로 입소문을 타면서 교통이 딱히 편리한 곳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철공소와 예술촌의 어색한 동거가 또다른 매력으로 젊은 층들을 끌어들인다는 것이죠. 젠트리피케이션 우려 속에 언제까지 이 기묘한 공생이 계속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지난 6월부터 서울시와 영등포구가 직접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 상생협약을 노력하기로 밝힌 만큼, 앞으로도 이 기묘한 공생이 오랫동안 보존되면서 이곳만의 독특한 색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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