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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 17시간 폐지 주워도 1만3000원…"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15초

전국 폐지 수거 노인 150만명 추정
생계 위해 폭염경보에도 하루 15시간 이상 폐지 수거
대부분 70대, 재난문자 못 받는 2G폰 사용해 폭염경보도 몰라

폭염 속 17시간 폐지 주워도 1만3000원…"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서옥자(77) 할머니는 서울 청량리시장에서 30년째 폐지를 수거하고 있다. 폭염경보가 발효된 지난 16일 서 할머니는 생계를 위해 새벽 5시에 집을 나서 밤 10시까지 폐지를 수거했다. (사진=이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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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승진 기자] #동트기 전 새벽 5시 집을 나섭니다. 시장 상인들이 물건을 싣고 내리는 시간에 맞춰 나가야 폐지를 하나라도 더 얻을 수 있습니다. 서울 청량리 시장에서 폐지를 수거해 생활을 이어간 지 어느덧 30년째. 남편은 몇 년 전부터 치매증상이 생겨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생활비는 폐지를 모아서 판 돈에 의지합니다.

큰일이네요. 평소보다 수거한 폐지가 적습니다. 오후 3시까지 모은 폐지가 200kg이 안됩니다. 중국에서 폐지 수입을 끊은 뒤로 폐지 가격이 뚝 떨어졌습니다. 요즘엔 kg당 30원이어서 오늘 하루 종일 모은 걸 팔아도 6000원 어치가 안됩니다. 좀 더 부지런히 모아야 할 텐데 날이 너무 더워서 땡볕 아래에선 순간 하늘이 핑글핑글 돕니다. 재작년 여름 시장 한 복판에서 쓰러졌던 때를 생각을 하면 아찔합니다. 119에 실려가 병원에 입원까지 했지 뭡니까. 그래도 먹고 살 생각하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저녁 8시가 돼서야 하루 종일 모은 폐지를 팔러 갑니다. 얼마 전 시장 근처에 있던 폐지 수거상이 월세 인상으로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이젠 손수레를 끌고 한 시간을 걸어가야 합니다. 사람들은 노인네가 그 무거운 걸 어떻게 끌고 가냐고 묻습니다. 햇볕에 바싹 말리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런 땡볕보단 장마철이 두렵습니다. 젖은 폐지는 돈도 안 되고 몸을 정말 힘들게 합니다. 그래도 오늘은 다행입니다. 1만3000원을 벌었습니다. 이제 다시 시장으로 돌아갑니다. 시장 한 켠에 폐지를 쌓아두는 조건으로 주변을 청소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밤 10시가 훌쩍 넘어 집으로 돌아갑니다.

서울 낮 최고기온이 34도를 기록하며 폭염경보가 내린 지난 16일. 청량리 시장에서 만난 서옥자(77) 할머니는 굽은 허리로 연신 몸을 움직였다. 가벼운 가방만 둘러메고 할머니를 따라 걸어도 땀범벅이 되는 날씨 속에서 서 할머니는 자신의 몸보다 무거운 손수레를 끌고 있었다.

폭염 속 17시간 폐지 주워도 1만3000원…"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효 중인 16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한 어르신이 폐지를 가득 실은 손수레를 끌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전국고물상협회는 폐지를 주워 생활하는 노인을 150만명 가량으로 추정한다. 이들 대부분은 고령으로 기초연금 20만원 이외의 마땅한 생계 수단이 없는 상황이다. 이들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폭염이 지속되는 날씨에도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다. 하루 15시간 이상의 길거리 노동으로 손에 쥐는 돈은 단 돈 1만원 안팎이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시가 24개 자치구(강남구 제외)에서 만 65세 이상 폐지 수집 노인 2417명에 대한 실태를 조사한 결과 월 10만원 미만을 버는 응답자가 51.9%에 달했다.


폐지 수거 노인들의 건강도 문제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폐지 수거 노인 중 74.5%가 만 76세로 건강관리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는 게 서울시 조사 결과다. 이날 서울엔 폭염경보가 발효되며 오전 11시 안전 안내문자가 시민들에게 발송됐다. 하지만 서 할머니는 긴급재난문자 수신이 불가능한 2G폰 사용자로 폭염경보 발효 사실을 전혀 몰랐다. 물론 알았다고 하더라도 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서 할머니는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일하면 된다"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지난 주에만 온열질환으로 노인 2명이 사망했다.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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