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火요일에 읽는 전쟁사]몽골군부터 중공군까지 동서고금의 전투식량, '미숫가루'
최종수정 2017.11.14 16:23기사입력 2017.11.14 16:23 이현우 디지털뉴스부 기자
(사진=위메프 홈페이지)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임진왜란이 끝난지 10여년 지났던 1611년 음력 3월, 당시 조선의 전라도는 '미숫가루'로 인해 큰 소동이 벌어졌다. 전라도 병마사였던 유승서(柳承瑞) 장군이 봄철 정기 군사훈련을 맞아 각 군영에 미숫가루와 짚신 등을 넉넉히 준비하라고 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 공문이 전라도 전체로 퍼지면서 백성들이 놀라 피난을 준비하는 등 소란이 벌어진 것.

조선시대 미숫가루와 짚신은 지금으로 치면 라면과 건전지와 같이 전시에 사재기가 발생하는 전략물자였기 때문에 군영에서 이를 준비하라는 소문은 전쟁이 재발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과 합쳐지면서 빠른 속도로 퍼져났다. 이에 놀란 백성들은 너도나도 피난을 준비했다.

몽골기병 모습. 유목민들이 사는 스텝지역은 곡물 생산량이 적어 미숫가루는 13세기 이후 점령된 중국이나 고려와 교역이 확대된 이후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있다.(사진=영화 '몽골' 장면 중 캡쳐)
결국 이 일로 사간원에서 탄핵을 받은 유승서 장군은 파직해야한다는 상소가 빗발쳤으나 광해군은 이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수로서 책무를 다하기 위해 한 것이고 다만 당시 민간에서 유행하던 왜구의 재침공 소문과 합쳐져서 이런 일이 발생했기 때문에 유 장군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계속 상소가 쏟아지면서 결국 유장군은 전라도 병마사에서 물러나게 됐다. 미숫가루가 만든 오해 때문에 지역 사령관이 교체된 셈이다.

미숫가루는 이런 헤프닝을 일으킬 정도로 전 근대시기는 물론 현대까지도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전투식량이었다. 언제, 어디서 처음 먹기 시작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미숫가루는 중동부터 동아시아까지 거의 모든 아시아 지역 문명권들이 전투식량이나 여행용, 수련용 음식으로 애용됐다.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선식(禪食)'이라고도 불렸으며 예로부터 신선들이 먹던 음식이라고도 알려졌다. 중국에서는 고대 주(周)나라 초기인 기원전 12세기 이전부터 먹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삼국시대와 중국 수당시기에는 인도로 불경을 찾으러 떠난 승려들의 장거리 원행이 늘면서 미숫가루의 활용도도 커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불가에서는 수련용으로 먹던 미숫가루를 주로 선식이라고 불렀다.(사진=영화 '현장법사: 서유기의 시작' 스틸컷)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부터 '미식'이라 불리며 먹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미식이 미수로, 다시 미숫가루로 형태가 변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것이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몽골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되는데, 몽골의 전통 음식 중 하나인 '미스가라'라는 음식이 몽골판 미숫가루로 알려져있다. 미스가라는 곡물가루에 우유나 물, 버터 등을 조금 넣어 떡처럼 뭉쳐먹는 음식으로 몽골에서도 예로부터 전투식량으로 쓰였던 음식이라고 한다.

인도와 티베트에서도 불교 승려들이 장거리 여행이나 수련 도중 먹던 '미디'라는 음식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곡물가루를 물에 타먹거나 살짝 반죽해 먹는 음식이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음식이 실크로드를 타고 중동까지 건너가면서 '사위크'란 음식의 탄생과 연결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위크는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모래 한줌을 음식으로 바꿨다는 메카 지역의 전설에 따라 알려진 음식으로 역시 곡물가루를 갈아만든 음식이다.

명나라 말기 명장인 척계광의 초상. 그가 이끌었던 척가군은 미숫가루를 소지해 별도 보급부대 없이 빠른 속도의 기동력을 자랑했으며 이를 이용해 왜구를 격파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사진=위키피디아)
미숫가루가 크게 활약한 것은 중국 명나라 시대 강남지역의 전설적인 명장인 척계광(戚繼光)이 왜구를 토벌할 때로 알려져있다. 이때 척 장군은 수시로 중국 해안에 출몰하던 왜구를 토벌하고자 병사들에게 미숫가루를 휴대시켜 기동력을 크게 늘렸고, 주로 치고 빠지는 식으로 약탈을 자행하던 왜구를 토벌하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이후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군사들의 전투식량 뿐만 아니라 피난민들의 주요 식량으로 가장 먼저 챙기던 음식이 됐다.

미숫가루는 6.25 전쟁에서도 매우 긴요한 전투식량 역할을 했는데, 전쟁에 개입한 중공군에게 지급된 식량으로 쓰였다고 전해진다. 당시 중국에서는 밀가루와 잡곡을 7:3으로 섞고 여기에 소금을 넣은 가루를 주식으로 썼으며 전시에 대비해 동북3성에서만 2만톤(t) 이상의 미숫가루를 비축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지자 다른 지역에서도 미숫가루를 차출해 공급했다고 한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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