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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섬 고시원⑤]청년도 노인도…벽 하나 사이에 둔 '고립된 삶'
최종수정 2019.03.13 16:56기사입력 2019.03.13 11:00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위치한 한 고시원의 복도. 폭이 0.85m에 불과해 마주오는 사람과 어깨가 겹치지 않고 지나가기 힘들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벼운 인사조차 나누지 않는다.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청계천 판잣집이나 옥수동 달동네는 사라졌지만 도심 속 빈곤 공간은 여전하다. 근본적인 원인인 가난과 주거난을 해결한게 아니라 도시 공간에서 보이지 않도록 밀어내기만 한 탓이다. 이른바 '빈곤의 비가시성' 효과다. 이들이 밀려나 자리 잡은 고시원은 주거 인권마저 떨어뜨리고 있다. 매년 화재 등의 사고로 인명피해가 발생하지만 시설개선이 이뤄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최근 정부와 서울시가 전국 고시원을 대상으로 시설점검 및 리모델링에 나섰지만 이미 한계는 드러나고 있다. 아직도 확인되지 않은 고시원의 부실한 관리 실태와 개선 방향을 미리 짚어본다. <편집자주>


#서울 양천구의 한 고시원. 이 곳의 주방에는 쉴 새 없이 사람이 나고 든다. 그러나 두 명이상이 모이는 일은 없다. 릴레이 경주에서 배턴을 주고 받듯, 한 사람이 식사를 마치고 나서야 누군가 배를 채우러 나타난다. 방안에서 잠자코 귀를 귀울이다가, 주방이 조용해지고나서야 문을 연다. 얇은 문과 판넬벽을 사이에 두고, 이들은 이렇게 외딴 섬에 살고있다.


외환위기로 경제사정이 급격히 악화됐던 1990년대 말, 사람들은 고시원으로 모여들었다. 소득이 일정치 않은 불안정한 노동자에서부터 고령자, 취업 전의 학생들은 보증금 없이 약간의 월세만으로도 살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고시공부가 목적인 학생들이 사용하던 공간이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이들의 터전이 된 건 이때부터다. 당장 가격을 올릴 수도, 그를 통해 주거 환경을 크게 개선할 수도 없는 현재의 고시원에서 사람들은 열악하고, 위험한 형태로 무엇보다 '외롭게' 삶을 유지하고 있다. 스무살 청년도, 70세 노인도.





◆"불편한 이웃보다는 혼자가 낫다" 고립되는 청년들= 고시원 거주자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은 '정서적 고립'이다. LH 토지주택연구원과 한국도시연구소가 발표한 '주택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고시원 가구주(15만1553가구)의 72.9%는 이웃과 교류하지 않고 지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사를 나누는 정도는 20.3%, 가끔 만나 얘기를 나누는 경우는 4.8%에 불과했다. 마음을 터놓고 서로 돕는 사이가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1.5% 뿐이었다. 판잣집ㆍ비닐하우스 거주자의 46.1%가 마음을 터놓고 서로 돕는 사이가 있으며, 26.4%가 이웃과 만나 얘기를 나눈다고 답한 것과 비교된다. 심지어 숙박업소에서 지내는 사람들 보다도 주변 거주자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거주자 평균연령 34.6세의 이 젊은 공간에 머무는 거주자들은 불편한 교류보다는 자발적 외로움을 택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국가인권위원회가 한국도시연구소를 통해 최근 진행한 '비주택 주거실태 조사' 연구에서는 "고시원은 이동성이 높은 청년가구 거주 비율이 높으며, 해당 거처를 장기적인 주거로 인식하기 보다는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거나 보증금으로 쓸 수 있는 목돈이 마련되기 전까지의 임시 거처로 생각한다"면서 "시설 상태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특정 거처에 대한 선호나 애착이 많지 않다"고 진단했다.


고시원에 거주중인 20세 김모씨는 "다들 언제 나갈지 모르는 사람이고, 나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아무리 외롭다고 해도 교류하거나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면서 "단지 같은 공간에 살고 있을 뿐"이라고 전했다. 26세 박모씨 역시 "문을 열었을 때 복도에서 마주칠까봐 다른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잠시 기다렸다가 소리가 안 들릴 때 나가기도 한다"면서 "마주치는 상황 자체가 사생활 노출이라는 느낌을 받을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고시원 생활에서 벗어난 29세 기모씨는 "머물렀던 고시원은 학생들이 아니라 대부분 주거를 목적으로 있던 조선족, 빚 때문에 도망 다니며 은거하는 사람, 나이 들고 가족없이 혼자 지내는 독거노인 등 다양했다"면서 "시비나 갈등이 생길까봐 말을 걸지 못하고 조용히 지냈다"고 기억했다.



고시원·고시텔 거주 청년·노인세대의 생활 비교


◆밥도 고시원에서…한 평 방에 갇혀버린 노인세대= 고립 상태에 가장 취약한 집단은 고령의 노인세대다. '잠만 자는' 청년세대와 달리 노인세대는 원에 머무는 시간이 길고, 식사도 혼자 해결하는 생활양상을 보인다.


청년세대(20~34세)의 평균 생활 시간이 평일 10.2시간, 주말 13.5시간인데 반해 65세 이상의 노인세대는 평일 15.5시간, 주말 17.5시간으로 하루 대부분을 고시원에서 보냈다. 외부 활동에 드는 비용을 피해, 고시원에 스스로를 가둬둔 셈이다. 80세의 고시원 거주자 김모씨는 "아내와 이혼하고, 자식들도 연락이 끊기면서 갈 데도 없고 교류할 사람도 없는 상태"라면서 "그나마 건강도우미 선생님이 오셨을때나 입을 뗀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일자리가 없거나 교류하는 이웃이 없는 거주민들은 많은 시간을 좁은 방안에서 지낸다"면서 "우울증과 답답함 등의 정신적 고통도 큰 것으로 나타난다"고 진단했다. 고립된 생활은 '고독사' 등 사회문제로 번지기도 한다. 51세 박모씨는 "과거 지내던 고시원에는 방 안에서 술을 먹고 자주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노숙인 쉼터에 가면 술을 먹지 못하게 하니까 일부러 고시원에서 지내는 사람들"이라면서 "6~7개월을 그 곳에서 살다가 죽은지 이틀 된 시체가 발견된 적이 있는데, 그걸 보고 질겁해서 그대로 나왔다"고 말했다.





노인세대는 끼니도 고시원에서 해결한다. 하루 평균 식사 이용 횟수는 청년세대가 0.4회인데 반해 노인세대는 1.7회로 4배 이상 차이가 났다. 하루 세끼를 모두 고시원에서 먹는 경우는 30세 미만의 3.7%에 불과했지만, 50~59세 14.4%, 60세 이상은 24.8%의 비율로 나타났다. 식사를 이용하는 비율은 좁은 곳에서 살고, 고령가구일 수록 높다. 면적이 넓고 거주자의 연령이 낮을 수록 제공되는 식사를 이용하지 않았다. 24세 김모씨는 "처음에는 고시원에서 밥과 김치가 제공된다고 해 반겼지만, 관리가 되지 않았다"면서 "특히 다른 방 거주자가 본인이 먹던 수저로 밥솥의 밥을 덜어내는 것을 보고는 먹지 않았다. 식기나 밥상을 사용한 뒤 닦으라는 고시원 규칙도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된 이들의 생활이 고착화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진미윤 LH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시원이 고령층, 장기 실업자, 빚 문제 등으로 거처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은신ㆍ은둔처로 기능하는 부분이 있다"면서 "가족 자원의 결여가 결국 사회 양극화로 치닫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므로 고착화 예방을 위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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