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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노믹스, 獨서 배운다] 통일경제 살리자, 폭스바겐·벤츠·BMW의 동독 러시

시계아이콘읽는 시간2분 21초

옛 동독 지역 자동차산업단지를 가다

독일정부, 1990년 통일 이후 5개 신연방주에 20년간 2조유로 투입

동독지역 국도·고속도로 320억 유로, 기차선로 290억 유로 지원

BMW 창출 일자리 1개당 2.97개 추가 일자리 생겨난 효과


[피스노믹스, 獨서 배운다] 통일경제 살리자, 폭스바겐·벤츠·BMW의 동독 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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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치히(독일)=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1990년 10월 3일 동독 지역 5개 주가 신연방주로 서독의 자유연방주에 편입되며 독일은 통일됐다. 방송 사고로 인한 베를린 장벽의 붕괴, 무너진 장벽을 넘어 동독 지역 시민들은 서독 주민들과 축제를 벌였다. 잠깐의 기쁨이 지나고 독일은 구 동독 지역의 대량 실업사태로 긴 후유증을 앓아야 했다.

28년이 지난 지금 동과 서는 하나의 독일로 자리잡았고 사회주의 시절의 동독은 먼 추억으로 남았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큰 힘을 보탠 곳은 단연 서독 출신 기업과 기업가들이다. 분단 국가 시절부터 통일을 믿고 경제통합 시대를 준비해왔던 그들이 없었다면 여전히 독일은 통일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독일 연방정부는 구 동독 지역의 5개 신연방주에 막대한 투자를 했다. 지난 1990년부터 매년 서독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을 투자했고 2010년까지 20년 동안 투입된 돈만 2조 유로를 넘어선다.


연방정부의 인프라 투자와 함께 서독 자동차 업계가 동독 지역에 진출한 점은 남북 경제통합에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BMW가 작센주 라이프치히에 최첨단 자동차 생산 공장을 지었고 메르세데스-벤츠는 튀링겐주의 쾰레다와 브란덴부르크주의 루드빅스 펠데로 향했다. 폴크스바겐은 작센주의 드레스덴과 츠비카우에 공장을 세웠다.


서독 출신 자동차 기업들의 동독행은 필연적이었다. 이를 주도한 사람은 당시 폴크스바겐 사장이었던 카를 한 명예회장이 있다. 동독 출신인 그는 2차 세계대전 후 서독으로 이주했다. 그는 분단시절부터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기업들에 동독 재건을 위해 투자해 달라고 요청했다.


통일 이전인 지난 1984년에는 폴크스바겐이 만든 자동차 엔진을 동독에 수출하기도 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그는 동독 지역 작센주 츠비카우에 19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동독 국영 자동차기업과 합작회사를 세우기로 했다. 이후 통일 직전인 1990년 9월 헬무트 콜 당시 서독 총리와 함께 츠비카우를 방문해 투자처를 돌아본 뒤 현재의 츠비카우 공장을 세울 수 있었다.

[피스노믹스, 獨서 배운다] 통일경제 살리자, 폭스바겐·벤츠·BMW의 동독 러시 구 동독지역에 설립된 BMW 라이프치히 공장



BMW 역시 구 동독지역 부활을 이끈 주역 중 하나다. 지난 2001년 7월 BMW는 유럽 전역의 250여개 후보지 중 라이프치히/할레 지역에 새 공장을 설립하겠다고 결정했다. 당초 생산 비용 절감을 위해 체코가 유력한 후보지로 여겨졌지만 구 동독지역 재건을 위해 기업이 나서야 한다는 의견을 따른 것이다. 통일 이후 10년이 지난 2001년에는 구 동독 지역의 실업률 등 독일의 통일 후유증이 가장 극에 달했을때다.


BMW 라이프치히 공장 요헨 뮬러 커뮤니케이션 담당은 "비용면에서는 체코나 다른 해외 지역이 더 효율적인 선택일 수 있었지만 소위 'BMW 업무 공식'을 개발해내 생산성 자체를 높일 수 있다고 판단해 라이프치히를 선택했다"면서 "당시 라이프치히 시, 작센 자유주를 포함한 모든 당국들의 요구사안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작센 주 정부는 초기 투자금 12억 유로의 약 30%를 지원했다. BMW가 받은 투자는 얼마나 환원됐을까? BMW는 공장 개시 이후 관련 효과를 직접 분석했다. 그 결과 지원금 보다 훨씬 많은 자금이 지역 사회로 환원됐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BMW가 창출한 일자리 1개당 2.97개의 추가 일자리가 생겨난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제조업 일자리가 1만개 줄어들면 그 외 다른 산업의 일자리는 1만3700개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말하자면 제조업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야 말로 일자리 늘리기 정책의 핵심인 것이다.


[피스노믹스, 獨서 배운다] 통일경제 살리자, 폭스바겐·벤츠·BMW의 동독 러시 BMW의 라이프치히 공장은 모든 공정이 자동화 돼 있는 초 현대식 공장으로 설계됐다.


통일 초기 구 동독지역과 서독지역의 임금 격차는 이제는 차이가 없어졌다. 뮬러 담당은 "단체 노동협약을 통해 라이프치히 공장 역시 타 독일 주와 동일한 임금 수준을 보장한다"면서 "근로 시간에는 조금 차이가 있다. 바이에른은 주당 35시간, 라이프치히는 주당 38시간을 일한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양보가 있었다. 일자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회사에 근로시간과 임금 조건에 대한 유연성을 갖게 해줄 필요가 있었다.


BMW는 노조와 교대근무 시간 조정, 휴식시간연장 등을 통한 유연근무제와 비정규직 고용 협약 등을 맺었다. 이를 통해 회사 입장서는 단기간에 생산 능력을 늘이거나 줄이고 노동자들은 장기적인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서독 주요 자동차 업체들이 동독으로 향한 뒤 독일 자동차 산업은 번창했다. 통일 당시 독일 연방 정부는 동독 마르크와 서독 마르크의 가치를 무시하고 이를 1:1로 교환했다. 많은 서독 마르크를 갖게된 동독인들이 가장 먼저 눈을 돌린 것은 자동차와 TV, 라디오였다. 오랫 동안 서독 출신 제품들에 대해 갖고 있던 동경을 현실화 했다.


여기에 더해 통일 후 여행의 자유가 부여됐고 정부 차원의 국도, 고속도로 인프라 투자가 본격화 되며 여행 붐이 일었다. 서독제 자동차를 타고 새로 건설된 도로 '아우토반'을 달리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아낌 없이 돈을 쓴 것이다. 연방 정부는 통일 후 20년간 동독 지역 국도와 고속도로에 총 320억 유로, 기차 선로 건설에 290억 유로를 투자했다.


이 같은 동독 지역 주민들의 소비에 힘입어 통일 후 4년만에 동독지역의 자동차 구비율(1994년 말 1000명 당 428대)이 서독 지역 수준(503대)에 접근할 정도로 성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동독 지역 주민들은 이같은 소비 행태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결과를 낫는다. 같은 물건이라도 서독 제품을 선호하다 보니 동독 제품들을 찾는 사람들이 없어졌고 결국 수많은 공장이 문을 닫았다. 대량 실업사태로 이어졌다.


하지만 자동차 업체들에게는 다른 문제였다. 미개척지인 동구권 국가들로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자동차 회사들이 동독으로 향하며 일자리도 다시 생기고 동독 지역의 경제회복도 꾸준하게 진행됐다. 독일 통계청에 따르면 통일 직후 구 동독 지역의 노동인력 3명중 한명은 실업자로 전락했지만 2005~2009년에는 실업자 수가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독일의 전체 실업률도 완전취업에 가까운 지난해 3.6%로 떨어졌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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