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범죄혐의 중 상당부분 피의자 관여범위 등 의문 여지”
검찰 “대단히 부당…상급자에 큰 책임 묻는 게 상식”
[아시아경제 이설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에 연루된 혐의를 받는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동시에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임민성·명재권 영장전담부장판사는 6일 오전 두 전 대법관을 상대로 각각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한 뒤 7일 오전 0시38분께 이들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임 부장판사는 박 전 대법관에 대해 “범죄혐의 중 상당부분에 관해 피의자의 관여 범위 및 그 정도 등 공모관계의 성립에 대해 의문의 여지가 있다”며 사유를 밝혔다.
또 “이미 다수의 관련 증거자료가 수집되어 있는 점, 피의자가 수사에 임하는 태도 및 현재까지 수사경과 등에 비추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명 부장판사도 고 전 대법관에 대해 “피의자의 관여 정도 및 행태, 일부 범죄사실에 있어서 공모 여부에 대한 소명 정도, 피의자의 주거지 압수수색을 포함하여 광범위한 증거수집이 이루어진 점,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경과 등에 비추어 현 단계에서 피의자에 대한 구속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검찰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혐의를 받는 전직 대법관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지난 3일 박 전 대법관에게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직무유기 등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 전 대법관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시절인 2014년 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장을 지냈다. 그는 ▲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일본 전범 기업 상대 민사소송 ▲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관련 행정 소송 ▲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 사건 형사재판 ▲ 옛 통합진보당 국회·지방의회 의원 지위확인 소송 등에 개입하는 등 30여 개 혐의를 받고 있다.
고 전 대법관은 박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2016년 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법원행정처장을 지냈다. 그는 2016년 ‘정운호 게이트’ 사건 당시 판사들을 상대로 한 수사 확대를 차단하기 위해 수사 정보를 빼내고 영장 재판 가이드라인을 내려보낸 혐의 등 20여개 사건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그러나 두 전직 대법관은 검찰 조사 단계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후배 판사들이 알아서 한 일”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다만 박 전 대법관은 전날 영장실질심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서 국무총리 제안을 받은 적이 있지만 제안을 거절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고 전 대법관은 “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나 차한성·박병대 전 대법관과 달리 청와대를 상대로 한 재판 거래 혐의가 없지 않냐”며 불구속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같이 두 전직 대법관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음에도 구속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철저한 상하 명령체계에 따른 범죄로서, 큰 권한을 행사한 상급자에게 더 큰 형사책임을 묻는 것이 법이고 상식”이라며 “하급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된 상태에서 직근 상급자들인 박·고 전 처장 모두의 영장을 기각한 것은 재판의 독립을 훼손한 반헌법적 중범죄 전모의 규명을 막는 것으로서 대단히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검찰의 향후 수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직접 조사하는 쪽으로 직행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설 기자 sseo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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