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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21년…이번엔 ‘실물위기’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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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지표 크게 나아졌지만 투자부진·소득격차 심화…개혁도 지지부진
외부 강한 충격보다 서서히 나빠지는 일본식 장기불황 진입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지 오는 21일로 꼬박 21년을 맞이한다. 외환위기는 2001년 8월 195억달러를 IMF에 상환하면서 공식적으로 종료됐지만 ‘언제든 위기는 올 수 있다’는 우려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떠나지 않고 있다.


외환위기를 겪은 후 한국 경제에서 눈에 띄게 개선된 지표는 거시건전성이다. 경상수지는 흑자기조를 유지하고 있고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 보다 낮다. 단기외채 의존도도 낮췄고 외환보유고도 IMF 이전보다 12배 이상 증가했다. 2014년부터는 순채권국 지위를 회복했다. 국가신용등급도 1997년 12월 BBB-에서 2016년 8월 AA(S&P 기준)로 올랐다.

하지만 이를 제외한 나머지 평가는 지지부진하다.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 주력산업은 IMF 위기 이전과 거의 다르지 않고 기업들은 내실을 기한다는 이유로 투자에 소극적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격차는 커졌고 실업률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그 결과 경제성장률은 2%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도 2만달러대에 정체중이다. 가계부채는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우리 경제에 외환위기와 같은 강한 충격파 대신, 성격이 다른 위기가 우리 경제에 엄습하고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체력이 서서히 떨어져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무력감이 경제를 좀먹을 것이라는 견해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IMF 위기 당시에는 금융과 대외건전성이 취약해 외부 충격이 컸던 것”이라며 “지금은 연구개발과 기업 투자가 부진해 서서히 늪에 빠지는 양상”이라고 평가했다.


조장옥 서강대 명예교수는 “과거 위기의 기억은 다 잊은 것 같다”며 “우리 경제는 일본식 장기불황의 초입에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를 무기력에 빠뜨리는 가장 큰 요인은 투자부진이다. 통계청이 매달 발표하는 산업동향에서도 투자부진은 두드러진다. 전문가들은 투자 위축에 대해 외환위기 이후 구조화된 측면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투자위축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 20년 이상 동안 이어져왔다는 얘기다. 이는 가계와 기업간 소득분배 불균형을 확대하고 저소득층 비중을 늘리는데 일조했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2008년 서울대가 발간한 ‘외환위기 10년, 한국사회 얼마나 달라졌나’라는 책에서 “투자부진은 한국경제의 장단기 성장능력 증대를 저해하는 핵심문제”라고 지적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해 ‘외환위기 20년, 한국경제의 공과’ 보고서에서 “투자부문 증가율은 20년 전의 절반 수준이고 GDP에서 투자부문 비중은 축소되고 있다”며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재무건전성 확보를 강조하는 내실경영과 보수적인 투자행태가 성장 둔화를 불렀다”고 평가했다.


산업구조도 20년 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자동차, 조선, 철강, 반도체는 여전히 우리 경제의 핵심축을 이루고 있다.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 품목은 위기를 겪고 있다. 우리 경제의 유일한 희망인 반도체마저도 내년부터는 경기가 꺾일 것이라는 전망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수출의 부가가치 유발 효과도 하락해 이들 산업 업황과 수출 대상 국가의 경기에 크게 좌우되는 상황에 내몰렸다.


지난 20여 년 간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각종 개혁과제가 제시됐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매 정권마다 개혁을 지상과제로 외쳤지만 반대논리에 무력화됐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은 “단언컨대 지난 20년간 한국에서 근본적인 개혁은 없었다”고 일갈했다. 그는 “노동개혁, 교육, 공공, 입지규제 개혁에서 거의 성과 거두지 못했고 하는 시늉만 하다 세월을 보냈다”고 주장했다. 조장옥 교수는 “한국의 노동운동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보다 강력히 말했다.


IMF외환위기 당시 정부에 몸담았던 경제관료들이 몇 년 전 내놓았던 조언은 우리 경제에 여전히 유효하다. 김대중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를 맡았던 이규성 전 부총리는 ‘외환위기 파고를 넘어’라는 증언집에서 “1993~1997년 성장, 고용, 물가, 재정, 경상수지 등 거시경제 기초 조건이 양호했다”면서 “우리 정부가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정세판단이 안이했다”고 평가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회고록에서 “IMF 부채를 상환하면서 국내외에 한국의 외환위기는 끝났다고 선언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참 아쉬웠다”고 밝혔다. 이어 “위기만큼 좋은 개혁 타이밍이 없다”며 “그 때 구조개혁을 강도있게 밀고 나갔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요즘 우리 경제의 문제점을 예견한 듯 “이 사회의 역동성을 죽이지만 말라”고 조언했다. 뒤집어 보면 역동성이 우리 경제의 핵심 과제라는 의미로 본 것이다.


홍준표 연구위원은 “과거와 달리 앞으로 우리 경제가 늪에 빠지는 형태라면 IMF 등의 외부 도움을 받아서 일어설 수는 없을 것”이라며 “스스로 체질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세종=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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