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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슈끄지 죽음의 진실을 알고 있다"…터키가 쥔 '꽃놀이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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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정현진 기자]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죽음을 계기로 터키가 '꽃놀이패'를 쥐게 됐다. 자국 영토에서 발생한 외국 언론인의 실종이라는 악재가, 도리어 사우디는 물론 미국과도 협상할 수 있는 카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카슈끄지 실종 사건이 발생한 직후 터키는 입장이 곤혹스러웠다. 환율 가치가 폭락하고, 미국의 경제 제재가 이어지는 등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대형 악재가 터졌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것처럼 사우디 정부가 카슈끄지의 신변에 해를 끼치기라도 했다면 터키 역시 체면이 구겨질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만만하게 봤기에, 사우디 정부가 터키 영토 안에서 유력 언론인을 납치 또는 위해를 끼칠 수 있겠냐 하는 것이었다.

"카슈끄지 죽음의 진실을 알고 있다"…터키가 쥔 '꽃놀이패'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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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터키가 잇따라 새로운 뉴스를 제공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카슈끄지가 비참하게 살해됐으며, 용의자들은 사우디 영사관에 방문한 15명의 암살팀이라고 지목했다. 이후 이번 사건을 발뺌만 했던 사우디는 터키 정부의 대응 조치를 기다려야만 했다. 마찬가지로 사우디를 지원했던 미국 역시 터키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결국 이례적으로 터키는 사우디 영토에 해당하는 영사관까지 밤샘 수색할 수 있었다. 이번 사건의 진상을 밝힐 수 있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는 터키가 유일한 나라가 된 것이다. 미국도 진상 규명에 협조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 터키는 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카슈끄지가 살해됐을 당시 상황을 모두 확인한 듯한 태도를 취하며 이번 사건을 다루고 있다. 어떻게 살해됐는지, 무슨 대화가 이뤄졌는지를 공개하는 것이다. 터키 정부 관계자들은 이미 음성과 동영상을 갖고 있다고 외국 언론들에게 밝히고 있다. 다만 이 동영상을 공개할 경우 첩보활동에 악영향을 줄 수 있어 공개하지 못한다고 밝히고 있다.


"카슈끄지 죽음의 진실을 알고 있다"…터키가 쥔 '꽃놀이패'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사우디를 들른 뒤 곧바로 터키를 방문한 것에서도 이번 사건에서 터키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인지를 알 수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을 만난 데 이어, 메를뷔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교장관과 회견했다. 미 국무부는 폼페이오 장관이 카슈끄지 실종에 대한 우려를 전하며, 수사를 지원하겠다고 소개했다. 터키를 떠난 뒤 폼페이오 장관은 "조만간 미국인 앤드루 브런슨 목사와 직접 연관돼 부과했던 제재 가운데 일부를 곧 해제하는 결정을 할 것"이라면서 "이제 제재를 제거하는 논리적 근거가 생겼다"고 언급했다.


터키 경제를 수렁으로 몰고 갔던, 미국의 제재가 곧 풀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단 외형상으로는 터키가 억류중인 브런슨 목사를 석방해, 터키에 대한 제재가 풀리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 터키에 대한 제재는 브런슨 목사 문제 외에도 정치, 외교적 측면이 고려된 측면이 강했다. 따라서 브런슨 목사 문제만으로 제재가 곧바로 풀리기 어려웠다. 양국사이의 표면적 이견만 해소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제재 해제가 논의된 것은 결국 터키 쪽이 카슈끄지 죽임의 진실이라는 유리한 패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번 사건이 불거진 뒤, 사우디에 대한 응징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시종일관 사우디와의 관계 자체는 깰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브렛 캐버노 미국 대법관 인사청문회까지 거론하며 '무죄추정의 법칙'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사우디를 감싸고 도는 것은 중동에서의 미국의 이해를 위해서는 사우디와 잡은 손을 놓을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이 곧 시작할 대이란 제재를 위해서도, 사우디의 협조가 절실하다. 이란의 석유 수출을 막으면서, 국제 유가가 오르지 않으려면 사우디가 원유를 더 많이 수출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미국으로서는 지금 사우디 손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가치가 떨어지기만 하던 터키 환율은 비로소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달러당 7리라를 기록할 때도 있었지만, 현재는 달러당 5.6리라로 내렸다. 환율 가치가 크게 회복된 것이다.


워싱턴근동연구소의 터키 전문가인 소너 카가프테이는 트위터에 "터키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계속 새로운 사실을 흘림으로써 사우디가 이번 사건에서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카슈끄지 죽음의 진실을 알고 있다"…터키가 쥔 '꽃놀이패'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실제 터키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사우디의 목줄을 조여오고 있다. 그동안 터키는 사우디가 보낸 15인의 암살팀의 신상을 공개하는가 하면, 살해 방법의 잔인성을 상세히 소개했다. 이 때문에 딱 잡아떼려 했던 사우디로서는 번번이 곤혹스러운 상황에 내몰렸다. 국제 여론까지 점차 사우디 등을 돌리고 있다. 터키로서는 자국 영토에서, 공공연하게 사우디 암살팀이 유력 언론인을 암살하는 것에 대한 응징에 나설 수 있었다. 터키 정부의 최종 목적이 사우디 왕가에 치명타를 안겨주는 것이 목적인지, 아니면 사우디나 미국으로부터 거대한 무엇인가를 양보를 받으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방향타는 터키 정부가 쥐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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