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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염전의 진실]①태양이 작열하는 그곳, ‘염전노예’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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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사건 이후 인력수급 어려워지자 ‘염전 자동화’ 이뤄져
지금 신안은 ‘태양광 열풍’…염전 접고 부지 매각하는 염주들 속출


[신안 염전의 진실]①태양이 작열하는 그곳, ‘염전노예’는 없었다 전남 신안군 신의도의 염전에서 직접 확인한 소금 채취 현장은 다수가 자동화 된 모습이었다. 사진 = 최종화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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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최종화 PD] 1004개의 도서로 이뤄졌다 해서 ‘천사의 섬’으로 불리는 전라남도 신안. 하지만 2014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염전 노예 사건 이후, ‘범죄의 온상’이란 인식이 덧씌워진 섬마을 신안에 대한 편견은 무수한 언론 보도를 통해 이내 확신이 되어 대중의 뇌리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신안군은 국내 천일염 생산의 70%가 이뤄지는 최대 생산지로 유명하다. 염전 노예 사건 당시 전문가들은 섬이라는 지역 특수성과 더불어 염부(소금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일컫는 전남 방언)의 혹독한 노동강도를 사건 발생의 원인으로 지적한 바 있다.

사건으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신의도는 어떻게 바뀌었고 염전 일은 누가 하고 있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전남 신안군 신의도의 한 염전을 찾아 직접 염주, 염부와 함께 소금 작업을 하며 현장의 이야기를 청취했다.


[신안 염전의 진실]①태양이 작열하는 그곳, ‘염전노예’는 없었다 묵묵히 대파질에 몰두하는 염주 박래훈씨. 과거 소금값이 높았던 시절엔 인부 여럿을 두고 염전을 운영했지만, 지금은 소금값이 떨어져 가까운 지인의 도움과 부부의 힘으로만 염전을 꾸려가고 있었다. 사진 = 최종화 PD


언론을 꺼리는 염전, 도대체 왜?


염전 취재를 기획하면서 무수한 염전과 접촉했지만 취재를 수락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어렵사리 섭외에 성공했나 싶으면 취재 전날 엎어지기 일쑤. 염전을 운영하는 염주들은 하나같이 언론 노출에 난색을 표했다. 염전 노예 사건, 천일염 논란 등 악재로 작용한 일련의 보도로 인해 노출 자체를 꺼리게 된 상황. 그러던 중 가까스로 연락이 닿은 신안군 신의도의 한 염전에서 취재를 수락해 곧장 짐을 챙겨 현장으로 향했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염전을 운영하는 박현숙(57) 씨가 직접 마중 나와 있었다. 염전은 무슨 일로 취재 왔느냐 묻는 물음에 소금 채취 공정을 직접 확인할 겸 염전 노예가 아직도 있는지를 확인하러 왔다고 밝히자 이내 “노예는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노예 사건 이후 이곳에 와서 일하려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지금은 소금값 자체가 떨어져 사람을 쓸 형편이 안 된다는 것.


현지에서 염주들로부터 확인한 소금의 매매가는 20kg(한 가마)당 2000원 선이었다. 소비자가 한 가마를 구매할 때 가격은 통상 1만5천원 정도로 7배가량 차이가 난다. 천일염 판매량도 급감했고, 값싼 수입 소금의 유입으로 가격이 떨어져 소금을 낼 때만 사람을 쓰고 전반적인 염전 일은 부부가 맡아서 한다고 설명했다.


[신안 염전의 진실]①태양이 작열하는 그곳, ‘염전노예’는 없었다 과거 소금 채취과정 중 가장 고난이도를 자랑한 수레에 싣는 과정은 채염기계(일명 용가리)가 대신하고 있어 노동강도를 낮춰주는 효과를 거둬, 소수의 인원으로도 염전 운영이 가능하게 했다. 사진 = 최종화 PD


직접 염전에서 일 해보니


당초 염전에서 소금 채취 현장을 취재하려 했으나 직접 일을 해보기로 했다. 소금 작업할 때 입는 옷을 빌려 입고 염전에 들어가 대파(소금 알갱이들을 한 곳으로 모을 때 쓰는 고무래)를 들고 소금을 한데 모으기 시작했다. 옆에서 함께 대파를 미는 사람은 염주 박래훈(61) 씨였다.


물기를 머금은 소금은 돌덩이만큼 무거워 대파로 밀 때마다 팔의 힘만으로는 부족해 온몸으로 밀어내야 했다. 멀리서 볼 땐 바둑판만해 보이던 염판이 대파질을 하다 보니 운동장처럼 느껴졌다. 옆에서 함께 대파질을 거들던 분은 소금 낼 때만 와서 돕는 염주의 친척 형님이었다.


머리가 새하얀 영감님이 어쩌다 여기서 대파질을 하고 계시냐 물으니 노예 사건 이후로 염전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결국 농사를 짓는 본인이 와서 소금 내는 일을 돕고, 농번기 때는 염주가 와서 자신의 농사를 돕고 있다고 했다.


박 씨의 염전도 천일염 산업이 활황이었을 때는 숙식하는 인부만 여럿 있던 제법 큰 염전이었다. 두 부부의 집안 곳곳엔 과거 염부들과 함께 지내던 시절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의 삼시 세끼를 해결했을 부엌은 식당 부엌만큼 넓었고, 당시 사용하던 도구들 역시 가득 쌓여있었다. 부인 박현숙 씨는 염전 노예 사건으로 인해 정직하게 일하고 정당한 임금을 지급했던 선량한 염주들까지 도매금으로 매도됐을 땐 정말 가슴이 아팠다고 토로했다.


대파로 한데 모아놓은 소금은 ‘용가리’라 불리는 채염 기계로 차곡차곡 수레에 담기기 시작했다. 100kg에 육박하는 수레를 레일을 따라 밀면 염전 옆 소금창고로 이동할 수 있는데, 이곳에 쌓아 둔 소금은 간수를 빼는 시간을 보낸 뒤 상품으로 출하된다.


[신안 염전의 진실]①태양이 작열하는 그곳, ‘염전노예’는 없었다 햇빛과 바람은 소금을 만들기에도 최적의 요소지만, 태양광 발전소에도 핵심적 요소로 꼽히는 조건이다. 현재 신안의 대다수 염전은 태양광 발전소로의 전환을 고민하고 있는 현실이다. 사진 = 최종화 PD


소금보다 태양광이 낫다는데


염전의 고된 일은 대부분 기계를 통한 자동화가 이루어져 과거 악명 높았던 노동 강도는 소수 인원으로도 해결 가능한 수준이 됐다. 점점 떨어지는 소금 값에 두 부부와 잠깐 일을 돕는 인부 두 명의 인건비를 빼고 나면 지난 몇 년간의 수입은 제로에 가까웠다고 박래훈 염주는 설명했다.


유독 근심이 가득한 그는 최근 염전 운영을 접어야 할지 기로에 서 있다고 했다. 이대로 가다간 적자에 수렴하는 소금 일은 내려놓고, 막대한 돈을 받고 염전을 태양광 발전소 부지로 넘길까 고민하고 있다는 것. 필자가 신의도에서 직접 마주한 주민들의 고민은 더 뜨거웠다. 이미 염전 부지의 땅값은 무섭게 올라 2~3배 이상으로 형성됐고, 발전시설은 마을로부터 1km 떨어져 세워야 한다는 조례가 100m 이내로 개정되면서 많은 염전과 농지가 발전소 부지로 전환, 공사를 앞두고 있었다.


박 씨는 “아무리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이라 해도 발전소 자체는 혐오시설인 데다, 대를 이어 지어온 소금 농사를 단번에 포기하는 일이 쉽지 않다” 면서도, “수익성을 생각하면 앞이 갑갑하다”며 답답한 속내를 털어놨다.


신의도는 현재 250가구가 염전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은 연간 약 8만 톤으로 전국 생산량의 28%를 차지한다. 과거 높은 소금값과 더불어 수요는 다급했지만, 고된 노동으로 인한 인력 부족 현상은 염전 노예 사건으로 비화됐고, 사건의 사회적 파장과 더불어 추락한 소금값과 생산 자동화로 인해 지금 신안 염전에선 고용된 염부를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 됐다. 사건 후 4년, 당시 재발 방지와 사회적 복지망을 약속했던 정부의 약속은 유야무야 사라졌고, 그 사이 염전은 뜨거운 태양열을 머금고 태양광 발전소로의 변화를 앞두고 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최종화 PD fina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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