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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친족 성폭력 피해자 두 번 울리는 ‘공소시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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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친족 성폭력 피해자 두 번 울리는 ‘공소시효’ 매년 발생하는 성범죄 피해 중 10건 중 1건이 친족 또는 친인척이 가해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러스트 = 오성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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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벌써 38년 전 일이지만 A씨(여·45)는 그날의 끔찍한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1980년 여름, 가족 모두가 집을 비워 혼자 놀고 있던 A씨(당시 7세)는 갑자기 집에 놀러 온 사촌오빠 B씨(당시 29세)의 방문이 반가웠다. 부모님과 언니들은 어디 갔느냐 물은 B씨는 집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이내 A씨를 작은방으로 끌고 들어가 성폭행했다. 본능적으로 이 일을 수치스럽게 여긴 A씨는 부모님, 언니들, 친구 그 누구에게도 이날의 일을 말하지 못했고, 얼마 뒤 B씨는 일본으로 떠나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최근 A씨는 서지현 검사의 고백을 계기로 촉발된 ‘미투’ 운동을 지켜보며 고민 끝에 가족들에게 용기 내 38년 전의 일을 고백했다. 그리고 지난 4월 부산 해운대에서 오뎅집을 운영하는 B씨를 직접 찾아가 사과를 요구했지만, B씨는 사과 대신 “(그때 일을) 작은아버지께서 아셨다면 나는 그 손에 죽었겠지”라는 변명만 늘어놓고 A씨를 돌려보냈다.


이후 B씨는 과거 자신의 범행이 친족 성범죄 공소시효가 지난 사안임을 인지한 뒤 태도를 바꿔 A씨를 협박과 무고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A씨와 가족들은 B씨의 가게 인근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고, B씨는 경찰에 A씨를 협박죄로 고소한 상태다.

사회 각계각층으로 확산된 미투 운동에도 불모지가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매년 발생하는 성범죄 피해 10건 중 1건이 친족 또는 친인척이 가해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 중 법적 대응에 나서는 숫자는 100명 중 4명도 채 안 된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발표한 ‘2017 한국성폭력상담소상담통계’에 따르면 친족에 의한 강간피해가(15.6%) 전체 친족에 의한 피해(9%)보다 높게 나타났고 유아-청소년 강간피해의 경우 성인보다 친족이 가해자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피해자가 어렵사리 법적대응에 나서도 처벌이 낮은 경우가 다수. 특히 피해자가 장기간 피해사실을 숨기고 있다가 이를 밝힌 경우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할 수 없는 사례가 많다.


청소년성보호법에 따라 13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 범죄는 공소시효가 없어졌으나, 해당 법은 2011년부터 시행돼 그 이전에 공소시효가 만료된 A씨의 경우 법적 대응에 나설 수 없었다.


A씨는 자신의 피해사실을 밝히기 전 수년간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 여성의 상담을 도와왔다. 상담 봉사를 통해 과거 자신의 끔찍한 기억을 서서히 덜어내고자 했던 그녀는 더 이상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발생해선 안 되며, 이를 위해선 친족관계에 의한 성범죄 공효시효가 폐지돼야 한다고 강하게 말했다.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와 뉘우침을 기대했던 A씨의 용기는 이내 B씨가 그를 협박죄로 고소하고 욕설과 폭언을 퍼붓는 상황이 되자 공포로 바뀌었다. 그녀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돌아가신 아버지께선 생전에 조카인 가해자를 아들처럼 아끼고 좋아하셨다. 당신의 일곱 살 난 딸을 성폭행한 짐승을 마지막까지 아들처럼 아끼셨다는 걸 생각하면 왜 그때 말하지 못 했나 너무도 슬프고 억울하다. 나는 그가 지금이라도 진심으로 반성하고 나와 우리 가족에게 속죄하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친족 성폭력 피해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고 엄중한 처벌을 가능하게 하려면 공소시효 폐지가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법무법인 한올 변현숙 변호사는 “친족 성폭력에 대한 공소시효 규정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 적용하는 성폭력처벌법상의 규정의 경우 13세 미만 또는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은 공소시효가 없고 13세 이상의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범죄는 성년에 달한 날부터 진행이 된다”며 “친족 간 성폭력의 경우에는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부터도 도움을 받기 힘든 경우가 많고 고소까지 하는데 피해자에게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도록 별도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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