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문제원 기자] '휴대폰 개통 사기'로 거액의 통신요금이 연체된 피해자들과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진행하는 중에는 빚 독촉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이동통신사들이 뒤로는 계속해 채권추심 행위를 하다가 법원에서 손해배상 책임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유석동 부장판사)는 강모씨 등 232명이 "SK텔레콤과 KT의 위법한 채권추심으로 정신적인 손해를 입었다"는 취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고 26일 밝혔다.
사연은 이렇다. A씨 등은 2011년 휴대폰 개통 사기를 당했다. 이들은 '휴대폰을 개통하고 6개월 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이통사에서 보조금을 받아 일정 부분을 나눠주겠다'는 광고를 보고 휴대폰을 개통했지만 오히려 쓰지도 않은 150만∼3000만원의 요금을 청구받았다.
이 같은 사기를 친 일당은 법원에서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A씨 등 명의로 연체된 요금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2012년 SK텔레콤과 KT를 상대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빌려준 명의로 맺은 부적법한 이동통신 서비스 이용 계약인 만큼 연체금도 무효라는 취지다.
문제는 이 같은 소송이 진행되는 중에도 이통사들이 사기 피해자들을 상대로 계속해 빚 독촉을 했다는 사실이다. 채권추심법에 따르면 채권추심자는 채무자가 채무의 존재를 다투는 소를 제기해 소송이 진행 중인 경우엔 이들을 채무불이행자로 등록해선 안된다.
A씨 등은 이 같은 조항을 근거로 2014년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조정을 통해 "이통사들은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이 확정될 때까지 전화나 문자 및 우편물 등으로 채무 변제를 독촉해서는 안된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A씨 등은 SK텔레콤과 KT가 이 같은 법원 결정 후에도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이 끝난 2016년까지 계속해 빚 변제를 독촉했다며 400만원씩을 배상하라고 소송을 냈다.
법원은 이통사들이 법원 결정에 따라 A씨 등에 대한 일체의 채권추심 행위를 중단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에 반해 위법한 채권추심을 계속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채무 변제 독촉 문자나 통고서 등을 이통사들이 직접 보낸 것은 아니지만 위임을 받은 신용정보회사들이 보낸 것으로 인정된다"며 이를 방지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명확한 증거를 확보한 8명에게 20만원씩을 배상하라고 판단했다.
지금 뜨는 뉴스
원고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청담의 김서인 변호사는 "이통사들이 채권추심을 하지 않기로 합의를 했음에도 위법 행위를 계속해 법원이 위자료를 인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통신사들이 법원의 수차례 독촉에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증거를 제출하지 않아 재판이 길어지고 증거가 부족한 사람들이 패소했다"며 "통신사들의 업무처리 과정상 승소한 8명 뿐 아니라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채권추심을 했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항소심에서 계속 증거를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송에 원고로 참여한 서민민생대책위원회 김순환 사무총장은 "피해자들이 대기업을 상대로 유의미한 승소 판결을 받아 냈다"며 "추후 최종판결에 따라 현재 위법한 채권추심을 당하고 있는 다른 많은 사람들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